<A클럽 친구들에게> 소은성 작가
작년 프랑스에 머물 때, 뜻밖의 인터뷰 제의를 받았습니다. ADHD당사자 3분으로 이뤄진 ‘양가감정’ 팀에서 온 연락이었는데요, 제 책 <A클럽 친구들에게>를 보시고 에세이 모음집에 실릴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ADHD당사자로서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대를 만들고, 고립된 이들에게 연대를 전하고 싶다는 취지에 흔쾌히 수락을 하고 줌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결과물인 에세이집 <산 만한 산만> 에 실린 제 인터뷰를 올려봅니다. 전국의 ADHD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으면 좋겠어요!
<A클럽 친구들에게> 소은성 작가 인터뷰
<A클럽 친구들에게>경쾌하게 읽히는 책이다. 작가가 소개한 본인의 일상은 우리가 겪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마치 ADHD인 옆집 언니의 일상 이야기를 듣는 듯 때로는 소란스럽도록 웃으며, 때로는 세밀히 공감하며 책장을 넘겼다. 반복되는 실수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일구어 온 소은성 작가를 만났다. 역시나 책처럼 경쾌하되,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 기록을 읽고 나면, 저 먼 프랑스에 있는 소은성 작가에게 우리 언니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Q. 작가님께서는 ADHD 커뮤니티를 운영하시고 계시잖아요. 그 이유를 작가님이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A. 결과적으로는 그런데요. 처음에는 너무 외로워서 이메일을 보내기 시 작했어요. 소속감, 연결감에 대한 갈증을 크게 느꼈어요. 제가 있는 곳이 프랑스의 지방 소도시라 한국인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프랑스는 ADHD에 관한 인식이 낮아서 확진을 받기도 되게 어려워요.
그때는 제가 다른 ADHD 당사자들을 못 만나서 외로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의 외로움이 나 혼자만 ADHD여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ADHD를 확진받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혼란의 틈바구니일 텐데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ADHD인들이 다 함께 모여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오픈카톡방 ‘A클럽 친구들’을 만들고 성인여성 ADHD인들을 초대했어요.
Q. 책에는 “나는 이제 유아처럼 새로 배워가는 중이다. ‘A클럽의 정체성을 가진 나’라는 새로운 인간으로서”라고 쓰여 있었는데,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정체성을 많이 찾으셨을 것 같아요.
A. 자아가 새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저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ADHD의 장점을 많이 봤어요. 사람들이 다들 서포터로 타고난 것처럼 격려나 응원을 창의적으로 해요. 남을 격려하고 보듬어주는 데서 본인도 에너지를 가져가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노력해서 하는 것도 아니에요. 본인도 다른 사람을 힘내게 하는 데서 의미를 찾아요. 어떤 사람이 “내가 면접을 가는데 실수할 것 같아요”라고 불안해하면 “지난번에도 많이 불안해하셨 는데 결국 잘하고 돌아오셨어요! 불안해해도 괜찮아요. 이번에도 잘 될 거예요”라고 조언을 해줘요. 당사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몇 달 전의 그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복기해 주는 것과 같아요! 서로가 서로의 기억력이 되는 거예요.
그런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ADHD인들 사이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가 느껴져요. “나는 우당탕탕하지만 회복 탄력성 겁나 좋아”를 혼자 생각하는 거랑 다른 사람들이 함께 지지해주는 건 너무 다르더라고요. ADHD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실수도 많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고, 우울해 할 일이 너무 많은 인생인데도 저기 예쁜 색 보면 다시 태평해져요.
예전 어머니들이 ‘정신이 나갔나. 태평해 보이네’ 그런 말씀들 하시잖아요. 그런 말들이 저는 상처였어요. 실수나 실패 때문에 불안하지만, 타인에게까지 불안을 전가하지 않으려고 여유롭게 행동한 적도 많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불안, 우울에서 금세 벗어나는 습관도 있긴 했고요. 한껏 우울했다 가도 금세 즐거운 일에 웃을 수 있는 태도를 수용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다른 분들하고 얘기를 나누면 ‘나도 그랬다’거나, 반대 양상으로 부모님한테 ‘감정이 많아. 너무 약하다’ 같은 말들을 들었대요. 이런 경험들을 서로 나누면서 치유되는 게 제일 좋았어요. 지금 이 방이 2년째 유지되고 있어요. 하루에도 여러 일, 가족, 인간관계, 약 복용, 공부, 운동, 명상, 병원 찾기, 하 다못해 오늘 뭘 먹고 뭘 입을지까지 크고 작은 주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요. ADHD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진짜 나에 대해 가족, 친구에게도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없다고 느끼지만, 이 방에서는 가장 솔직할 수 있어요.
Q. ADHD에서 파생된 불안이 영향을 미친 다른 부분들도 있으셨나요?
A. 엄청나죠. 저는 2~3년 동안 책을 보고 얘기도 하면서, ADHD가 있는데 우울이나 불안이 안 생기는 게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저도 이 불안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했던 퍼포먼스를 믿지 못했던 게 되게 재밌어요. 내가 어느 정도를 했더라도 ‘이건 운이 좋았던 거야. 기량이 좀 떨어지면 진짜 실력이 티가 날 거야’ 이런 면이 되게 심했어요. 컨디션에 따라 생산성 차이가 컸어요. 지금은 약물 복용과 인지치료 등을 통해 많이 조정한 편이지만, 당시에는 내가 체력이 약한 줄로만 알았어요. 꼭 신체적 에너지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썼을 때도 그래요.
저는 강연을 다니는 직업이에요. 예컨대 기업에 가서 2시간 동안 글쓰기 강연을 해요. 반응은 너무 좋은데 하고 나와서 저는 눈이 막 감겨요. 몰입에서 빠져나왔을 때, 탈력 상태가 되고 집에 갈 때 차를 잘못 탄다든가 하는 실수를 한다는 게 오랫동안 저만의 비밀이었어요. 지하철을 반대로 타고, 내릴 역을 놓치고...... 그럴 때는 어디론가 들어가서 딱 10분이라도 바깥의 자극을 차단하고 눈을 감고 쉬어야 한다는 걸 나중에 ADHD 지침서를 보고 알았어요. 노캔 헤드폰을 끼면 더 좋고요.
한번은 의학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가 놀라며 “너는 매 순간 그렇게 집중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거냐”고 묻더라고요. 아니 난 평생 남들도 그런 줄 알았지! 집중을 위한 노력, 일에 대한 과몰입 때문에 순간순간 ‘까부라지곤’ 했어요. 그때는 일에 과몰입을 해서 하루에도 재부팅이 필요한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러니까 불안한 거예요. 만약에 제가 오전 일정이 너무 힘들면 ‘뒷 일정을 망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너무 심했어요.
저는 프리랜서 잡지기자로 오래 일했어요. 자극받을 일이 많고 다이내믹한 건 적성에 맞았지만, 매순간 꼼꼼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하루 종일 극도로 긴장하고 살았어요. 돌아보면 기자 일할 때 마스크를 두껍게 쓰고 있었나 봐요. 같이 일했던 사람은 제가 J인 줄 알았대요. 지금은 ADHD 책까지 냈잖아요. 그때의 동료들은 지금도 그 사실을 자꾸 잊어버려요. 그건 또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생산성을 포기하는 게 옛날에는 안 됐어요. ‘안 돼. 하루에 8시간 일해야 돼.’ 이게 심해서 스케줄을 촘촘하게 해놓으니까 당연히 중간에 애가 고장나는 거죠. 어이없는 실수도 많이 했어요. 여행 잡지를 할 때는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일을 했어요. ADHD인에게 수면은 정말 중요해요. 수면의 질과 양에 따라 컨디션 차이가 커요. 하지만 직업 특성 상 잠을 못 자니까 카페인을 들이 부어가며 버텼어요. 그러다가 체력적으로 너무 지친 날에는 아무리 긴장해도 실수가 났어요.
ADHD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이런 실수의 기억이 스스로 용서가 되고, 그때의 내가 얼마나 항상 각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는지를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렇게 나를 몰아붙이며 살지는 말자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게 됐어요.
Q. 유럽이나 프랑스에서는 ADHD나 정신과적 진단을 잘 안 내려준다는 내용을 책에서 봤는데요. 그럼 사회가 비정형적인 면들을 수용해주는 분위기인가요?
A. 저는 한국에서 진단을 받고 와서 천만다행이에요. 프랑스에서는 정신과 의사를 한 번 만나서 약 처방전을 받으면, 1년 정도는 제 주치의가 그 처방전에 근거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컨펌해줘요. 그러면 약국에 그 처방전을 가지고 가서 1달치 약을 사는 시스템이에요.
제 주치의는 알고 보니 ‘ADHD는 없다’고 생각하는 의사였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처방전을 프랑스 정신과 의사에게 보여줘서 받은 처방전이 있었어요. 그래서 주치의에게 그걸 보여주고 약을 계속 탔는데 한번은 불어를 잘하는 제 파트너랑 갔더니 둘이서 막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어봤더니 ‘이거 말하면 너 기분 나쁠 텐데’ 라며 말을 안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해달라고 괜찮다고 그랬더니 ‘정신과에서 콘서타 처방전을 타왔으니 주치의로서 컨펌을 하고는 있지만, 자기가 은성의 정신과 의사라면 약을 안 주고 싶대’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왜?’ 했더니 ‘의사가 네가 너무 차분하게 경청하고 있다고 말했어. 진짜 ADHD는 남의 말을 들으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데, 너는 너무 상대방 눈을 보면서 차분하게 듣는대’ 라는 거예요.
너무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왜냐면 ADHD로 확진을 받기까지 내 마음이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ADHD일 리가 없다는 오해에도 반박해야 하다니, 싶어 힘이 빠졌어요. 평생을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다가 확진을 받은 거잖아요. 또 약을 먹어서 나를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약을 먹는 게 너무 즐거워서 먹는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ADHD인에 대한 전형적인 고정관념을 의사가 말한 거잖아요. ‘내가 병원 의사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눈 못 마주치고, 의사 말 안 듣고 말 자르고...... 그러면 ADHD라고 컨펌해 줄 건가?’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어요. 그리고 제가 아는 많은 ADHD 인들은 경청의 달인이에요!
아직 유럽에 오래 살지 않아 확언할 순 없지만, 제가 느낀 걸 말해보자면요. 유럽 전반은 모르겠고 제가 사는 프랑스만 보면, 비정형적인 면을 많이 수용해 주는 편이라고 느껴요. 우선은 어디에서건 다양한 신체 장애를 가진 사람 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 가시화돼 있다고 느끼게 돼요. 또한 오히려 너무 전형적인, 사회의 규범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거나 남이 하는 대로 하는 사람을 '자기만의 기준이 없다', '비판의식이 없다'고 보는 면이 강하죠.
하나의 유행을 따르거나, 주변인들의 눈치를 보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확실히 정도가 덜한 것 같아요. 물론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고, 서로서로 눈치도 보고 소외시키기도 하지만요! 또한 사회 전반적으로 속도가 느린 게 저에게는 무척 도움이 돼요. 일을 할 때 사소한 실수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라고 느끼기도 하고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사자를 대상화를 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내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스러워요. 그런 면에서도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A. ADHD를 가진 개인으로서 말을 하면 내가 대표성을 가지게 되잖아요. 그럴 때 주저하게 되고요. 말을 하면 사람은 분명히 실수를 해요. 콘텐츠를 만들면 실수가 나올 텐데 그 실수가 미치는 나쁜 영향의 크기를 생각해 보세요. 내가 말을 안 해서 사람들이 ADHD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건 너무 큰 손해잖아요. 아주 좋은 콘텐츠 99개를 만들어도 하나는 오류가 있을 거예요. 그럼 그때 가서 해결하면 돼요. '이건 우리의 실수다. 나아지겠다'고 하면 되는데, 너무 고민하는 건 추진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그런 염려가 있는 사람들은 큰 실수를 안 해요. 실수하더라도 작아요. 그래서 많이 말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저는 말을 잘하는 분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이 분들이 또 한 면에는 자기 말에 대해 '너무 많이 말했나', '너무 과한가' 하는 수치심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을 계속 고민해 보고 싶어요. 본인의 기질에 대해서 지지받지 못한 경험이 있어서 수치심이 생기지만, 또 나아지려는 마음. 이걸 뭐라고 해야 될까요? 기준에 맞추려는 마음이 되게 큰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ADHD 책에 인간관계, 업무, 생활 관리 지침이 쭉 나와 있는데 저는 '이걸 한 인간이 어떻게 다 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에 트위터나 유튜브에 'ADHD는 이렇게 해야 되고 저렇게 해야 되고' 이런 게 많은데 잘못하면 번아웃 오거든요.
저도 ADHD 진단받고 제일 먼저한 게 애플워치 사서 시간 계속 맞추는 거였어요. 밥 먹는 시간 매일 재고. '옷 입고 추리는데 15분이야. 절대로 늦으면 안 돼' 했죠. ADHD를 가지신 분들이 속도가 되게 빨라요. 또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봤을 때는 다 장점이에요. 이런 장점이 너무 좋은데, 지침을 다 따라해서 나를 개선하고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하는 마음이 크고. 그래서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세상의 모든 메시지를 받아들여서 나를 너무 싫어하게 될 수도 있어요.
나는 나이고, 내가 ADHD인 건 아니에요.
ADHD인들이 모두 같지도 않고요.
가끔은 내가 ADHD인 것을 잊어도 좋아요.
매일 매일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를 고치고 노력하고 보완하는 만큼, 나의 좋은 점을 열심히 알아주고 칭찬해 봤으면 좋겠어요. 단점으로 보이는 게 곧 장점이에요. 충동성은 추진력이고,
산만함은 다채로운 열정이고, 과몰입은 열정과 몰두이기도 하잖아요!
누가 뭐라든 상관없이요. 내가 나를 좋아하면 좋겠어요.
어차피 남들이 나를 속속들이 다 이해 못해요. 그리고 나는 모든 단점의 총합이 아니라는 점, 내가 고칠 점 투성이인 인간이 아니란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우리가 세상 모든 노하우대로 살아도,
내가 나를 싫어한다면 행복하지 않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