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색의 크레파스
어릴 적, 크레파스 중에는 살색이 있었다. 당당하게 살의 색이라 명명된 이 크레파스는 사람을 즐겨 그리던 친구들에게는 금세 소모되어 버리는 귀중한 아이템이었다. 얼마나 편리한가. '살'이라는 너무나 명확한 사용처를 지정해 준 덕분에 순수한 우리 어린이들은 자신감 있게 채색을 하는 것이다. 하여 미술시간임에도, 동시에 낱말퀴즈를 푸는 효율적 교육이 이루어진다. 만약 그 살색과 자신의 피부색이 같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선생님께 이의를 제기한 친구가 있었다면, 그 아이의 타고난 시각예술적 기질이란 도저히 무엇으로도 표현이 불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색의 연함과 짙음을 스스로 판단하여 적재적소에 하늘색이나 레몬색을 선택하는 응용력을 곧잘 보이곤 하였다. 하지만 유독 살색만큼은 사람 피부에만 국한하여 사용했던 것 같다, 살색의 불필요한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살색이라는 색명이 인종차별과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 하여 현재는 연황색이란 이름으로 생산되고 있다고.
살색 크레파스에 관한 추억이 떠오른 때는, 아내와 휴(hue)와 컬러(color)에 대해 이야기하던 어느 밤이다. 아내의 그림 공부를 돕는답시고 함께 외국 서적을 펼쳐보았다. 책의 서두에, 미술 용어에 관한 챕터에서 휴와 컬러에 관해 보게 되었고 궁금하여 검색도 조금 해보았다. 휴는 특히 생소했는데 시각예술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며, 상황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어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찾아내거나 유추한 정보들을 조합하여 우리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강제 이해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실상 여기서 더 이상의 휴와 컬러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논한다면 나의 무식함이 탄로 날 것은 명백하다.
잘 익은 바나나는 흔히 노란색으로 인지된다. 우리는 직접 보지 않고도 그 바바나가 분명히 노란색일 것이라는데 의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노을빛이 스며든 바나나는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휴가 아닌 컬러를 관찰하고 있다는 확실한 목적을 심어두기 위한 도구로서 두 용어를 굳이 구분함에 그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당연한 듯 인지하고 있는 사물의 고유색을 휴로 정의한다면, 거기에 채도와 명도를 고려하면 바로 컬러를 다루게 되는 것이다. 이 컬러란 단순히 HSV 색공간의 정의쯤 되겠다. 추가로 회화에서 색온도와 광휘 등의 영향을 고려하면 컬러는 더욱 풍성해진다. 즉, 빛을 표현함에 있어, 바나나의 노란색 같은 기억 속의 고유한 인지는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이 두 가지 용어들을 활용하여 나의 행위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려는 의도이다.
먼 과거 어떤 화가들은 대상마다 진리의 고유색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사과보다 더 사과 같은 색과 질감을 발견하여 궁극의 사과를 표현하길 소망했으며, 이 과정에서 변화무쌍한 빛이란 오히려 고유색을 발견하는데 방해 요소로 여겨졌을 것이다. 살색의 크레파스가 탄생한 것은, 단순히 물감처럼 서로 섞어서 색을 만드는(조색) 소재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탄생 배경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그림 안의 시간, 날씨, 계절, 분위기, 감정에 관계없이 치트키처럼 사용할 수 있을 듯한 색이름이었음은 분명하다. 살색 크레파스가 존재했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우리 부부에게 역설적인 깨달음을 주었다.
어른용 크레파스라 할만한 오일파스텔은 아내도 제법 좋아하는 재료이다. 제한된 몇 가지의 파스텔 스틱들로 그림을 완성해 보는 행위는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나에게 살색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면 색에 현혹되지 않고 단지 명도에만 집중하여 그림을 그려보는 흥미로운 훈련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파스텔들의 고유한 명도를 고려하여 그림의 전체적인 명암을 적절하게 만들어 볼 수 있겠다. 빽빽하거나 성기게 칠함으로써 한 가지 색의 면 안에서도 명암을 조절해 보는 행위는 어쩌면 흰색만으로 색을 조절하는 틴트(tint)의 개념을 응용하는 훈련이 될 수도 있겠다. 엉뚱한 색들의 조합임에도 봐줄 만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 결과물의 전체적인 명암 구성이 어느 정도 적절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엉터리 같은 미술 지식을 굳이 거창한 듯 설명함은 아마도 그림 감상의 즐거움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휴와 컬러의 관점에서, 내가 보고 있는 그림이 무엇을 더 중시했는지 유추해 보는 것이다. 분석가가 될 필요는 전혀 없으며, 단순히 그러한 차이를 느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느긋한 마음으로 몇 번을 꺼내보면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어떤 것이 느껴질 수 있으니 그것이 재미고 기쁨일 뿐이다. 빛의 화가라 불리는 모네는 그 명성에 걸맞게 일생동안 빛에 의한 효과들을 관찰하고 표현했다고 한다. 모네의 그림에서, 그림자에 입혀진 차가운 하늘색과 대지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빛과 하얀 드레스에 스며든 꽃들의 광휘 등을 발견한다면 잠시나마 모네의 눈과 마음에 비친 컬러들의 세상을 공감하게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