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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과자중독자의 이야기 2

과자와 죄책감

by BH

과자는 왜 이렇게 중독적인가

지난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과자중독자임을 커밍아웃했다. 중독의 의학적 조건을 따질 필요는 없다. 커피를 마시면 불안과 초조로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고, 어떤 과자를 먹을지 고민하느라 일상에 집중하지 못한다. 문제라는걸 알면서도 다음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무엇이 되었든 주도권을 잃고 끌려다니는 중독이다.


커피는 카페인이라는 에너지 부스터가 중독의 핵심요소다. 그럼 과자는 대체 무슨 무기로 나를 굴복시킨건가. 단순하게도 과자의 중독성은 '맛있다'에 있다. 이 맛있다라는 속성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효능효과이다. 한입먹었을때 달달하고 고소한 고밀도 에너지원이 빠르게 피속으로 전달되면 뇌가 이를 맛있고 기분좋음으로 인지한다. 이런 효과를 내려면 한입에도 높은 에너지를 가지며 순식간에 분해되어 흡수되어야한다.


자연의 재료가 이런 '맛있음의 속성'을 얻기위해서 가공이 필요하다. 곡식은 껍질을 날려 가루를 내고, 당분을 순도를 높여 정제하고 (설탕, 원당, 메이플시럽) 섬유질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팜유, 현미유, 버터) 과정들이 모두 가공에 포함된다. 그 결과 몸이 음식의 에너지를 얻으려 애를 덜써도 순도높은 에너지가 쏟아져 들어와 강력한 어필을 한다.(혈당스파이크? 도파민 서지?) 반대로 자연적 그대로의 식품은 소화흡수가 느리고 에너지가 많이 들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바로 맛있음을 느끼기 어렵다.


점차 사람들은 과자가 중독적인 이유가 흰설탕과 밀가루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거기에 팜유, 버터, 우유까지 해로운 목록들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그런데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책으로 제시한 건 다름아닌 다른 걸로 대체하는 것이다. 설탕대신 원당, 메이플시럽, 밀가루 대신 쌀가루, 현미유, 두유를 쓰면 중독성 없는 착한 과자가 될거라 믿는다.


과자 앞에서 죄인이 되다

맛있는 과자에는 길티플레져(guilty pleasure)라는 수식어가 붙인다.

무엇든간에 생존하기 위해 먹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허락된 특권이다. 과자도 예외는 아닐진데 왜 우리는 유독 과자먹는 것에는 죄인을 자처하게되는가.

아마도 과자는 생존보다는 쾌락을 위해 먹는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페루나 볼리비아 광산의 인부들은 힘든 채굴일을 하기 위해 하루종일 코카잎을 씹는다. 코카잎에 0.25% 미량들어있는 코카인 알칼로이드가 배고픔을 잊고 집중력과 에너지를 높여 일하는걸 수월하게 해준다. 마치 현대인이 커피를 노동음료로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이에 반해 코카잎을 정제하여 99%로 순도를 높인 코카인은 주사기로 혈관에 슈팅하면 바로 극락체험이 가능한 강력마약이다. 둘다 자연에서 나왔지만 자연물과 가공물이 얼마나 다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다.


사과는 배가 부르도록 먹어도 죄짓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반면 사과를 졸이고 가당을 추가하고 밀가루버터파이지에 싸서 구운 애플파이는 배가 부를때까지 먹으면 웬지 잘못됬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연 그대로 식품은 입으로 배어물고 나서 한참을 씹어 삼키고 위장에서 한참을 소화해야 뇌가 반응하는데 반해 가공 과자는 한입 머금는 순간부터 이미 뇌가 즐거워하고 있다. 애를 쓰지 않고 쉽게 얻는 즐거움때문에 과자앞에 당당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물론 모두가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자를 먹고 힘을 내 삶에 활기를 느끼는 사람이 굳이 과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고도 고밀도, 고순도의 가공식품을 과하게 먹고 신체적변화(칼로리과잉), 정신적변화(노곤함, 쉽게 지침)까지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문제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과자가 주는 짜릿함이 좋아서 밥 대신 과자를 먹으며 여지없이 심장이 터질듯 두근대며 몸이 부대끼고 카브 코마로 한동안 정신을 못차리는 경험을 한다. 이런 후유증을 알면서도 과자를 놓지 못하고 또 강력한 자극을 얻으려 갈망할때 난 스스로에게 죄인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죄책감 없이 먹는 비건과자?

요즘 인스타에서 비건과자 탐색하다보면 개인 베이커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의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그런데 보다보니 대부분 비건과자점들이 맛보다 다른 장점을 더 전면에 내세운다. 좋은 재료, 소화가 잘된다, 부담이 없다, 알러지없다는 등등 얼핏 보면 건강식품인가 오해할 정도. 어쩌다보니 비건과자만 먹는 난 건강챙기러 과자를 먹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이제껏 건강식을 한건가?

비건과자가 건강함을 강조하지만 난 맛이 더 궁금하다

비건과자들이 대체로 우유, 버터, 백밀가루대신 두유, 아몬드가루, 쌀가루, 두유, 현미유를 쓴다. 단가가 높은 유기농 재료를 쓰기도 하고 알룰로스나 나한과 같은 대체당을 쓰면서 슬쩍 식단용처럼 포장한다. 뭐 그러려니하고 눈감고 넘어가도 되겠구만 원칙을 중시하는 나의 꼰대력이 가만두질 못한다.


내 기준에는 비건과자나 잡식과자나 기분좋게 해주는 목적을 가진 가공 디저트 '과자류'이다.

흰설탕과 밀가루, 팜유의 문제는 원재료인 사탕수수, 통밀, 야자열매에서 온다기 보다는 이들을 고도로 정제(가공)하여 순도를 높인데서 생긴다.

빌런인 설탕과 자주 비교당하는 착한당 메이플시럽은 자연당인가?

설탕, 밀가루도 알고보면 다 자연에서 추출했는데...

메이플시럽 300ml를 만들려면 단풍나무 수액 12리터를 몇시간을 푹 끓여 쫄여야한다. 설탕도 사탕수수 주스 출신이다. 그래서 영양성분표는 메이플시럽도 설탕처럼 첨가당(added sugar)으로 분류한다. (아가베시럽도 마찬가지. 더 말하면 입아프다.)


요즘 밀가루가 엄청나게 천시받게 되면서 쌀가루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갔다. 참 이해가 안가는 건 쌀가루가 빵만들기 어렵다고 거기에 글루텐을 섞어 만든 쌀식빵이 건강빵이 되는 것이다. 밀가루는 밀겨를 다 벗겨내고 글루텐이 있어서 몸에 나쁘고 소화도 안된다면서, 쌀겨 다 벗겨내고 글루텐을 추가한 쌀식빵에는 왜 그렇게 우호적인지 모르겠다. 밀과 쌀 역시 소나 돼지, 아니면 사과나 배처럼 기호의 차이로 보인다.

채식 쌀식빵이 밀빵보다 엄청나게 더 맛있는지는 모르겠다


건강도 속세맛도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

우습지만 비건과자에서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속세맛이다. 그 속세라는게 뭘 의미하는지 한참을 고민해보았다. 과자를 먹으면 늘 짜릿한데 그 쾌락적인 맛을 속세의 맛이라 하는 건가 짐작해본다. 문제는 속세 맛이 나면 그냥 속세 음식이지 뭘 자꾸 금욕 음식이라 우기냐는 것이다.


건강지향, 비건베이커리의 아이러니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바로 황치즈 맛이다.

식물성으로 치즈맛을 흉내낼때 영향효모(누치)를 쓴다. 치즈가 발효된 식품이라 발효맛 된장맛을 내는데 효모가 바로 그 쿰쿰한 맛을 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흉내내는 것으로 오리지널을 완전히 커버하는건 무리다. 나같은 치즈 맛을 기억도 못하는 낮은 등급의 미각소유자는 치즈 맛과 똑같네 하지만 오리지널 치즈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치즈맛이냐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황치즈맛이 요즘 한창 유행이라 과자세계에서도 황치즈라인의 인기가 높다. 비건과자계도 황치즈맛을 구현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비건 황치즈맛이 별로라는 솔직한 리뷰도 종종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비건사장님은 그이상 진짜황치즈맛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지만 비건이 아닌 사장님은 난감해진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평소 치즈를 못먹는것도 아닌데 굳이 맛도 덜한 비건치즈를 쓰며 저평가 당하는 상황에서 손만 조금뻣으면 닿는 거리에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사장님들이 황치즈과자는 그냥 진짜 치즈를 쓰는 것으로 타협을 본다.

이렇게 비건과자점이 비건지향과자점으로 바뀌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난 우유, 버터를 넣은 과자와 안넣은 과자들끼리 누가 몸에 좋은지 서열을 따진적이 없다. 그냥 기분좋으려고 먹는 과자를 무슨 건강함으로 비교 하겠는가. 애초에 우유, 버터, 밀가루를 안써서 몸에 좋다고 했던 것은 이들 비건지향 사장님들이었다.


치즈를 써버린 자충수

우유가 다이어트나 건강에 나쁘다며 두유로 과자를 만들었는데 치즈를 쓴다고? 치즈가 우유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안다. 우유에 산과 효소를 넣으면 유청과 커드가 분리되고 이 커드에서 유청을 짜내고 굳힌 것이 치즈다. 얼마나 숙성시켜 수분을 날리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치즈100g 만드는데 우유가 1.2~ 1.4kg 정도 필요하다. 100g 짜리 치즈 쿠키를 만든다고 치면 치즈가 한 30g은 들어가고 이것은 우유 350g 과 맞먹는다. (오히려 일반쿠키에 들어간 우유보다 더 많을 지도)


혹시나 일반 치즈가 아니라 치즈가루를 좀 쓴거라고 항변한다면 더 이해가 안된다. 시판 황치즈가루는 대표적인 공장가공식품이기 때문이다.

황치즈 가루의 본색

가공치즈는 자연치즈, 다른 식품, 식품첨가물 등을 섞고 유화, 재가공을 통해 보존성을 높이고 저렴하지만 맛을 균일하게 만든 공장표 식재료이다.

우유, 버터, 밀가루 없고 첨가물없어서 마트의 공장표과자보다 건강한 자연식 과자라는 이미지를 내세웠는데 고작 치즈맛때문에 가공재료와 이렇게 허무하게 타협을 한다니... (백종원대표가 자체개발 만능볶음소스에 이금기 굴소스를 쓴것과 비슷한 상황)


난 단순한 사람이라 맛있으면 과자고 맛없으면 과자가 아니다. 그리고 정신을 달랠땐 과자를 먹고 건강을 위할땐 자연식(비가공식)을 한다.

그래서 과자를 먹으면서 건강을 찾고, 과자에 우유가 들어가면 나쁜데 황치즈는 좀 써도 안나쁘다는 복잡한 논리는 좀처럼 이해가 안된다. 잘은 몰라도 이렇게 복잡한 논리를 가진 과자를 무엇으로 부르던 간에 우리몸의 건강이슈를 해결해 줄거같지는 않다.




다음 이야기 - 문제의 해결





부록, 비건디저트도 있는 과자집

세상은 넓고 능력자들은 많다. 내가 비건디저트를 만드는 장인들에게 감탄하는 것은 채식재료로 일반과자의 맛을 똑같이 모방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사장님은 비건이 아니지만 비건과자를 기가막히게 잘만드는 과자점들을 나열해 보았다.

각자 자신의 취향이라는게 있으니 비건과자가 입에 안맞는 사람도 분명있다. 비건 과자가 그다지 입에 안맞는데 건강때문에 억지로 먹는다면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세상에는 과자보다 건강한 음식이 널려 있다.


[데이베이크샵]

인스타 후기만 보다가 신세계 강남 팝업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빠딸과 르뱅 시그니처라인을 먹어봤는데 만족스러웠다. 피스타치오 크림은 비싼만큼 원물 맛이 잘났다.

일부 쿠키들이 넌비건 표시를 항상달아주셔서 편하게 고를수 있는 곳이다.


[왓더훅]

성신여대근처에서 오프라인매장이 있고 온라인도 같이 하는 과자점이다. 데이베이크샵과 동시에 팝업을 해서 운좋게 맛을 보았다.

욕심 안부리고 NEW 바밤바, 훅콘이 두종류를 구매해서 먹어 보았는데 달달하고 쉬운맛을 좋아하는내 초딩입맛에는 조금 난해한 맛이었다. 비건이 아닌 과자도 있어 신중하게 골라야했는데 당시 팝업에는 전체가 비건이었던것 같다.(기억이 가물가물)


[여름빵학]

여름빵학의 특장점은 비건재료로 일반 디저트 맛을 매우 잘 따라잡는다는 것.

내가 일반 쫀득빵, 크림빵을 먹어보지 못했지만 여름빵학 버전을 먹으니 왜 사람들이 쫀득빵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내가 처음 구매했을 때는 전라인이 비건이었는데 최근 황치즈 단단 볼쿠키가 추가되면사 비건지향이 되었다. 맛은 그대로다. 그냥 내 기분만 아쉬워졌달까.


[브론토]

아쉽게도 호랑이쿠키(브론토)의 눈알이 화이트 초콜릿이라 넌 비건이다. 안사려고 내려놓았다가 사장님의 눈알만 빼고 먹으면 된다는 팁을 가장한 유혹에 훌떡 넘어갔다. 그냥 안먹으면 되지 이걸 또 눈알빼고 먹고 있는 내모습에 현타가 왔다는...

그림4.jpg 저 흰자를 매울 좋은 비건대체재는 어디 없을까.


[도야팡]

이곳 역시 신세계 강남 디저트 팝업에서 뭉구점과 같이 구매를 했었다. 인스타에서 분명 황치즈 맛은 넌비건이라는 걸 봤었는데 현장에는 재료나, 식단주의 표시가 없었다. 표시가 없을땐 정말 확실한것만 구매하긴하지만 조금 아쉬웠달까. 그렇게 서운함을 느낀 소인배는 두바이크럼핀속에 카다이프가 피스타치오버터없이 쌩으로 들어갔다며 툴툴거렸다. 맛평가는 이렇게 그날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



아래부터는 명성이 자자하여 먹으려고 대기하던중 먹을 수 없게된 아쉬운 비건지향, 일부 비건옵션의 과자점들이다. 워낙 유명한 곳들이라 어떻게든 먹어보려 인스타와 네이버스토어 사이트를 정독했지만 완전채식여부가 속시원하게 공개되지 않아 깔끔하게 포기했다. 비건'풍' 과자를 좋아하는 일반인들의 입맛을 매우 만족시켜줄거라 믿는다.


[에이밍마켓]

먹고싶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견과류를 전처치할때 초란 식초를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란에서 란은 계란을 의미한다. 이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매우 당황했었다. 하지만 그런데 사실 이사이트는 비건지향이라만 했지 어떤 라인도 비건이라 명확하게 표시한 적이없다. 그냥 내가 비건과자점이라 혼자 착각한것이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한 잡식인을 대상으로한 과자점인것으로 추정된다.

인스타에는 속세맛을 만족시켜준다는 간증 글이 넘쳐나는 곳이며 구매성공률이 낮아 운이 좋아야 겨우 맛을 볼수 있다고 한다. 초란식초고 뭐고 모르는척 그냥 먹어 버릴까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고 고백한다.


[윤달]

롯데백화점 팝업때 처음 봤는데 충성고객들이 백화점 문열기 전부터 대기줄을 타는 모습이 신기했다.윤달이 비건과자점이라고 나도 모르게 착각했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 어디에도 비건이라는 표시는 없다. 건강지향베이커리라고 스스로를 표시하고 있고 비건여부에 대한 구분이 없기 때문에 일반잡식 고객을 대상으로한 식단 빵을 만드는 곳으로 결론을 내렸다.



[작은빵집][쑤니맘베이커리]

콩볼전도사 시녕님을 통해 알게된 비건풍 과자점들이다. 워낙 중독적인 오도독오도독 ASMR과 맛표현에 치아가 튼튼하지 않아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둘다 암묵적인 비건뉘앙스 말고는 공식적인 표시가 없어 안타깝지만 PASS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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