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과자중독자의 이야기 3

과자이야기의 마무리

by BH

과자에 대한 애증?

내가 앞선 1,2편에서 과자를 엄청 맛있어하고 만들어준 이들에게 감사하면서도 과자는 중독성을 가진 가공식품일 뿐이라는 딱 잘라 말했다. 마치 돈 많아 좋겠다고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돈이 다가 아니라며 툴툴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혹시라도 내가 진짜 마음은 숨기고 겉으로 반대로 말을 하고 있다면 분명 건강한 정신상태가 아닐거다. 그런데 난 과자를 두고 사랑과 증오를 왔다갔다하지 않았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었다. 사랑에도 밀당이라는게 있는데 과자와의 관계에선 어째 그저 밀리기만 하는 '을'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뭘 미워한것처럼 보였다면 그건 과자가 아니라 과자앞에서 한없이 주체성을 잃고 약해지는 나 자신이었다. 인간관계에서는 싹이 노랗다 싶을때 칼같이 정리하는 내가 보약도 아닌 과자는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어찌나 질척거리는지... 고구마 백만개가 목에 걸린 듯하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미움이 모든 정신병의 시작이다. 자율성과 존엄성을 해쳐가며 과자에 이렇게 끌려다닌다면 결국에 뭐가 될지 모르지만 정병 큰거 하나 제대로 맞을거 같다.


물론 아무 저항도 안한 건 아니다.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했고 그중엔 단칼에 과자를 끊는 것도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과자가 뭔지 생각도 안나게 멀리 도망쳤어도 뼈에 새겨진 과자맛이 예고도 없이 떠오르면 어느샌가 빨려들어가 바로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도 이렇게 (행복하게) 다시 끌려온거 보면 무조건 단칼에 잘라내는게 능사가 아닌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과자가 얼마나 자극적이고 중독적인지 분석하기 바빴지만 문제는 과자가 아니라 자꾸 이끌리는 나에게 있다. 그래서 관심의 대상을 바꿔 나에게 집중해 보기로 했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나를 판단없이 그대로 지켜보다보면 그 행동에 대한 이유가 보일테니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기

어릴때 과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 심해진거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지만 과자를 먹은 아이들이 모두 나처럼 과자에 의존하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자에 빠지는 이유로는 입맛과 기호도 있겠지만 정서적인 요인도 한 몫한다. 과자의 에너지 집약적이고 자극적인 맛은 도파민을 통해 기분을 풀어주는데 감정적으로 불안정하면 이런 추가기능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내가 과자에 집착하는 건 남들보다 불안을 많이 느끼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불안하면 마음을 다잡아 보면 이겨낼거 같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기분은 엄청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애매모호한데 심기가 불편한지, 몸이 피곤한지 혹은 배가 고픈지 바로바로 구분되지 않는다. 겉으론 평온한거 같지만 마음의 구석진 곳에 눈앞에 닥친 마감이나 해결안되는 이슈들이 생기면 스멀스멀 불안감에 잠식된다. 불편한 현실에 대한 불안은 당떨어져 배고픈 느낌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동안 과자를 찾을때 몸과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도 못하면서 그저 과자를 많이 먹는것만 거슬려하며 스스로를 볶아쳐왔다. 현실도피용으로 사용한 과자는 쇼핑, 게임, 도박, 마약같은 도피처들에 비해 크게 나은 점이 없는데 난 다른 중독자들보다 나은 상위의 인간인줄 알았다. 이런 오만부터 내려놓아야한다.

알콜금주모임에서는 참여자들은 가장 먼저 스스로를 중독자라고 소개한다. 과자에 매달려 자율적인 의사결정권을 잃었다는 점에서 나 역시 '과자 중독자입니다' 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하얀 거짓말 보다는 무채색의 솔직함

불안정한 존재인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면 그 다음단계는 무엇을 상대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다.

가끔 저녁을 잘 먹고도 밤에 허기가 치밀어 잠에서 깰때가 있는데 한번도 과일이나 야채가 먹고싶은 적은 없다. 이럴때 빵이나 쿠키같은 것이 떠오른다면 진짜 배고픔이 아니라 감정적 불안, 스트레스 때문일 확률이 높다. 감정적 허기가 원하는 것은 빠르고 강력하게 불안을 잠재울 맛과 에너지이고 대부분 가루와 기름으로 만든 것이다. 이들은 질감, 형태, 방식으로 세세하게 나누고 분류하기보단 그냥 과자라고 퉁친다. 그래서 이들이 간절하게 떠오를때면 '과자를 다급하게 찾는걸보니 정신에 진통제가 필요한 순간이구나' 하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과자들이 상황에 따라 아침밥, 다이어트 간식 혹은 건강한 식단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름 바꾸는 이유는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공통적으로 먹는 사람의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목적을 가진다. 하지만 아무리 이름을 바꾸어도 속일 수 없는게 있다. 바로 혀가 느끼는 맛이다. 시판 그래놀라를 먹으면서 놀란 적 없는가? 박스에는 분명 아침밥이라고 하는데 먹으면 과자 맛이난다. 그 해답은 박스 뒷면에 있는데 건조 곡물가루 첨가당 그리고 기름을 조합한 구성이 과자배합과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원재료를 자세히 보기도 전에 혀는 이미 과자라는 것을 아는거다. 그래서 가장 빠르게 과자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먹어보는 것이다. 식사용, 식단용, 혹은 판매자가 뭐라고 이름붙였던 간에 입에 닿자마자 '맛있다', '속세의 맛'이 떠오르면 밥이 아닌 과자인것.


나와 상대를 알았다면 마지막 관문은 내 감정에 솔직해는 것이다. 맛있고 기분좋지만 몸에 나쁘니 더이상 먹지 말라는 것은 내 감정을 무시하는 강압적 명령이다. 내 몸이 과자맛을 포기하지 않는데 억지로 머리가 막는다고 통할리 없다. 몸에 나쁜걸 알지만 그럼에도 먹고싶다는 솔직한 의견을 숨겨선 안된다.


과자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법

고상한 자아는 순수자연식만 해도 사는데 지장 없다고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육신은 그렇게는 못산다고 거칠게 저항한다. 물론 고상한 자아는 피곤한 상황이나 어려운 업무 할때는 사라지고 없다. 과자를 끊겠다는 결심은 주로 기분좋고 기세등등한 내가 하지만 과자를 찾는 순간엔 건강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고 의기소침해진 또 다른 내가 있다. 그러니 밝은날에 자의식 과잉으로 '과자따위 필요없다'는 실언은 하지 않는게 좋다.


과자가 맘에 안든다고 함부로 금지시키지 말고 과자 맛에 끌리는 나도 너그럽게 받아 들여야한다. '불안하고 과자가 필요한 어둠의 나'를 숨기려 할수록 과자는 더욱 강력한 유혹이 되버린다. 속으로 원하는 것과 겉으로 표현하는 바램을 일치시켜야 당당하고 건강한 정신이 유지된다. 좋지도 않은 과자지만 '먹어주겠다'는 자신감도 도움이 된다. 그러면 언제나 과자를 먹을 수 있지만 먹을 시점, 먹을 양은 내가 정하겠다는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추가적인 팁이 있다면 과자를 안먹는 시간에는 건강한 식재료로 균형있고 배부르고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다. 평소 영양섭취가 부족하고 배 고프게 지내면 과자로 맛뿐아니라 배까지 채워야 하니 의존이 더 심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한 식재료는 물론 가루나 기름으로 만들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먹는 것들이다. 자연의 재료라면 생으로 먹든 익혀먹든 쌀을 먹든 밀을 먹든 별다른 간섭이 필요없다. 칼로리가 없이 나오는 식재료는 당연히 탄단지 비율을 계산하거나 양을 재가며 먹지 않아도 된다. 그건 우리 몸이 알아서 계산하고 충분한 채우고나서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내준다.


자연식, 비가공식을 충분히 먹으면 과자와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과일 야채 곡류 견과를 배부르게 먹고나면 몸은 한동안 편안하고 기분좋음은 상태를 경험하지만 가공식, 과자를 몰아먹으면 당장은 짜릿해도 잠시 후 몸의 부대낌에 한동안 시달리는 체험을 하게된다. 이런 대조적인 차이가 반복되면 몸은 과자를 적당히 즐기는 노하우를 조금씩 익히게 된다.

나도 아직은 그 적당한 시점을 정확히 맞추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크게 조급해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입에 안넣어도 필요하면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여유로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록, 공장과자들

과자 중독자이야기 이전편을 보면 과자라면서 개인베이커리샵의 수제쿠키만 사먹는다고 오해할 수있다. 비록 요즘 쿠키를 더 먹긴하지만 나에게 과자에 대한 기본 틀을 제공한건 당연히 공장과자들이다. 우리나라 공장과자에 채식과자가 많지는 않지만 다행히 꼬깔콘(고소한맛), 조청유과, 브이콘 같은 올타임 레전드들은 채식이라 종종 즐기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 제과회사가 채식지향 쿠키를 내놓지 않아 최근 맛있게 먹은 공장쿠키들은 죄다 외국산들이다. 그럼 최근에 즐기는 공장과자를 몇가지 소개하겠다.


오레오

밀, 대두 함유밀, 대두 함유한 채식과자 오레오


공장과자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오레오다. 초코쿠키사이에 화이트크림을 샌드한 이 별거 아닌 쿠키가 나뿐 아니라 전세계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고급지고 맛잇는 크림하면 동물성을 떠올리는 추세속에서도 오레오는 여전히 100프로 저급하고 미끌거리는 식물성크림을 고수하고 오레오 추종자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우리나라도 동서에서 OEM제작된 로컬 오레오를 팔지만 나에게는 큰 도움이 안된다.



밀, 대두, 우유 함유밀, 대두, 우유 함유한 국산 오레오

바로 국산오레오는 우유를 넣기 때문이다.

왜 원조 레시피엔 없는 유청을 우리나라 버전에는 넣고 있는지 알길은 없다. (초기 오레오 레시피를 계속 쓰기 때문이라 추정할뿐) 유청을 넣은 우리 오레오가 원조보다 매출에서 더 이익을 보는지도 알수 없다. 다만 미국 오레오가 유청이 안들어가서 맛이 빈다는 느낌을 못받았고 유청이 없는 오레오로도 이미 글로벌 스테디셀러라는 것은 안다.


내가 자주하는 말이 '내가 손해를 안본다면 더 많은이들이 이로운 선택을 하는 것' 이다. 맛도 비슷하고 제품에 스크래치가 나는게 아니라면 원조의 오레오 레시피를 사용해 나같은 소수자도 마트에서 오레오를 살수 있는게 모두에게 이로울텐데라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레시피를 바꾸고 라벨바꾸는데 드는 비용이 내가 오레오 사먹는 수준으로 메꾸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쿠*직구로 미국 오레오를 먹게될거 같다.


맥티비 다이제스티브

다이제스티브는 참 독특한 과자다. 그다지 단맛이 강하지 않고 뻑뻑하지만 계속 손이가는 중독적인 매력이 있다. 그런데 통밀로만 만들것 같은 분위가의 다이제 역시 채식과자는 아니다. 오레오와 마찬가지로 우유가 들어있는데 어떤 재료로 포함된건지는 불분명하다.


닥터유는 오리지널 다이제라 강조하지만 영국 맥비티사의 다이제스티브도 우리 다이제와 매우 유사하게 생겼다.

혹시 맥비티사가 K 열풍을 타고 우리의 닥터유 다이제를 모방한거 아닐까 할 수 있지만 맥비티사가 다이제스티브 쿠키를 처음 출시한 것이 1892년이다. 확률상 우리나라가 원조가 아닐 가능성이 99%이상이다.


그런데 이 원조 맥비티 다이제에는 우유가 안들어간다.

오레오와 마찬가지로 다이제스티브 레시피를 바꾸라고할 위치도 아니고, 구매력도 없는 처지라 그냥 살짝 불평해 보았다.

닥터유의 레시피에는 우유가 추가되어 맥비티 보다 얼마나 더 이익을 보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이제도 수입산으로 먹는 소수자들이 실망하지 않을 실속있는 선택이기를 바란다.


초코 헤이즐넛 스프레드

누텔라는 초콜쨈에 헤이즐넛버터를 섞은 악마의 쨈이다. 분명 딸기쨈, 땅콩쨈 초코쨈은통용되는데 초코헤이즐넛스프레드하면 못알아 듣는다. '그 누텔라 맛 나는거' 라고 해야 비로소 알아먹는다. 아직 누텔라 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누텔라도 우리나라 오레오, 다이제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림3.png 누텔라는 코코아 헤이즐넛 팜유 설탕으로 만든 준초콜렛

비록 원조 누텔라를 맛볼 수 없지만 다행히 세상엔 우유없는 '누텔라 맛' 초코쨈들은 많다.

2년전 아이허브를 탈탈 털어 피넛버터앤코가 만든 가성비 최고의 누텔라맛 초코쨈을 찾아내었었다. 그때 맛있게 먹고 간만에 재구매했는데 너무 믿은 나머지 기본적인 제품정보를 확인안하고 주문을 클릭해 버렸다. 그리고 배송받았더니 아뿔사..OMG

그림1.png 이렇게 대놓고 우유로 만들었다고 써놓았는데 이걸 왜 못봤을까

받고 나서 라벨을 보니 우유(전지분유)를 넣었다고 제품 여기저기에 써 있는 것이었다. 진짜 당황스런 순간이었다. 그럼 내가 전에 먹은 건 뭐였지? 그땐 분명 우유가 없었는데.... 내가 헛걸본건가? 너무 먹고 싶어서 우유가 안들어갔다고 나혼자 우긴건가? 별의 별생각을 다하고 여기 저기 판매사이트를 뒤져보다가 다행이 내가 미친게 아니라는 증거를 찾았다.


PB & Co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올해 초 나와 같은 이유로 당황한 고객의 별 한개 리뷰가 있었다.

그림2.png


작년 9월에 처음 사먹었는데 생각없이 재구매 했다가 제품을 받고나서 우유가 들어간걸 알았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레파토리다. 뭐 이사람은 2통이나 샀지만 난 한통만 샀다는게 억지로 찾아낸 다행포인트였다.

여튼 나에게 비운이 된 이 가성비 초코쨈은 회사에서 초코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 분에게 잘 보내주었다.


만만한 누텔라 대체품이 사라져 잠시 낙담했지만 이내 마지막 희망이 떠올랐다.

세상에 없는 것이 있다면 고개를 들어 쿠팡을 보라

누텔라와 비슷한 재료를 말아서 만든 콜라타

쿠팡엔 역시 없는게 없었다. 초코헤이즐넛 스프레드로 검색하니 콜라타라는 인도네시아 브랜드가 나타났다. 무슬림 인구를 위한 할랄푸드를 만드는 인도네시아는 간식에도 은근 채식버전이 많다.

뒷면 성분표를 보고 누군가는 콜라타 초코헤이즐넛스쨈이 설탕 팜유 범벅이라고 비하하겠지만 적어도 누텔라가 할 욕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누텔라는 설탕함량이 56%이다. 물론 설탕이 45%라고 콜라타가 건강하고 착한 초코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콜라타는 부족한 설탕을 팜유(100g당 40g)로 채웠으니 도찐개찐이다.(누텔라 30.9g)

둘다 더 나빠질데 없이 불량식품들이지만 콜라타는 적어도 나도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내편이되었다.


채식하는 사람에게 먹을 수 있는 공장과자가 적은 우리나라에 사는 것은 건강에 매우 이로운 조건(?)이지만 온라인 몰을 이잡듯이 뒤져 원하는 스펙의 과자들을 결국 구해먹으면서 이런 좋은 환경을 흐리고 있는 중이다.

여튼 이번에 초코쨈구매에 성공한 덕분에 10년도 넘게 못먹은 초코다이제 맛을 즐기며 한주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맥비티 다이제+콜라타 초코쨈 = 다이제초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느 과자중독자의 이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