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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만남

by 송아론

고백할게요.


사실 저는 제가 침팬지였다는 걸 깨닫고는 한동안 상실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침팬지가 아니라는 증명을 하기 위해 전교 학생회장에 출마하고 당선까지 했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는 침팬지 학교였습니다.


게다가 집은 어떻고요. 학교에 다녀올 때면 언제나 침팬지 두 마리(암컷과 수컷)가 이빨을 보이며 싸우고 있었죠. 저는 처음에 그 광경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왜 서로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죠. 하지만 침팬지가 되고 보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하등생물이고 지적 수준이 떨어져 싸워야만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걸. 그래서 그들을 죽인 거랍니다.


사이트에서 민수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저는 단번에 민수의 DNA 구조를 알아차렸습니다. 그 역시도 침팬지였고 낙오된 인간이라는 걸. 그래서 저는 민수를 도와주기로 한 거랍니다. 우리가 아무리 침팬지라도 인간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을요.


저는 살인을 결심한 민수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죽일 거지? 나중에 딴소리하지 않을 거지?”


“네... 확고해요.”


저는 웃으며 민수의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그래, 민수야 잘 생각했어.”


그리고 누굴 죽이고 싶은 건지 물었죠. 민수는 날카로운 눈으로 고개를 들며 대답했습니다.


“그 년이요. 그년부터 죽이고 싶어요.


여기선 그년이라 함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이제 민수가 살해할 인간을 맞출 차례입니다.


“여동생 연희를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지 위치도 모르고 사사건건 깐죽거리는 게 입 좀 다물게 하고 싶어요.”

“알았어. 형이 도와줄게.”


저는 메모지 한 장을 떼어내 민수에게 주었습니다. 메모지에는 주소가 적혀있었죠.


“여기가 어디예요?”

“시멘트 폐공장이야.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기로 여동생을 데려와. 그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걸리지 않게 죽일 수 있는 거죠?”

“물론. 네가 발설하지 않는 이상.”


민수가 메모지를 쥐며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는 기뻐하고 있었고 어서 그날이 오기를 바랐죠.


***


저는 민수와 헤어 진 후, 산뜻한 걸음걸이를 했습니다. 기분이 들뜬 채로 집으로 향했죠. 가슴도 상쾌해지기 위해 중간에 동네 슈퍼에 들렀습니다. 사이다 한 캔을 집은 후, 계산도 하기 전에 벌컥벌컥 마셨죠. 그리고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내 입에 털었습니다.


“총각, 오늘은 기분 좋아 보이네? 그제는 죽을상이던데.”


주인아저씨가 말했습니다.


“그제 제가 여길 왔었나요?”

“그래, 말 걸어도 아예 대답도 안 하던데. 그건 무슨 약이야?”

“정신과 병원에서 주는 약이요.”

“정신과? 왜? 어디가 안 좋아?”

“네. 정신병이 있거든요.”

“어쩐지 가끔 이상하더라니. 어쨌든 총각, 그 일은 고마워. 덕분에 그 개 잘 먹었어.”

“아니에요. 저도 아저씨한테 보답하고 싶었어요. 가게 올 때마다 이것저것 챙겨주시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또 부탁해도 될까? 요새 반려견이다 뭐 다해서 보신탕집도 없고, 눈치 보여서 먹을 수가 없다니까.”

“네,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개 잡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크크- 고마워. 용선이 아줌마한텐 비밀로 할게. 사이다는 그냥 가져가. 심심하면 주전부리할 것도 챙기고.”

“아니에요. 오늘은 약만 먹어야 해서.”


저는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슈퍼 아저씨를 소개하자면, 그는 개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리고 개에게 원한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진돗개한테 새끼손가락을 물려 절단을 당했거든요. 아저씨는 그때부터 개만 보면 기겁했습니다. 큰 개 작은 개 할 거 없이 개새끼만 보면 움찔거렸죠.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13번째 되는 생일날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웬걸 보신탕이 올라온 것이었죠. 아저씨는 콧잔등에 식은땀이 나도록 놀랐습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개를 보니 절단된 새끼손가락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죠.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병국아. 뭘 놀라고 그러노. 맛있어 보이지 않나?”


맛있기는커녕 아저씨는 비위가 상해 당장이라도 토할 기세였습니다. 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죠. 어머니가 사발에 보신탕을 퍼주며 말했습니다.


“괜찮다 아이가. 돼지고기라고 생각하고 먹어봐라. 니도 이제 극복해야지.”


그때 아저씨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 눈 꼭 감고 딱 한 번만 먹어보자. 어차피 이 개는 죽은 개니까 나를 물 수 없다.


그렇게 갈비뼈에 붙은 살을 씹었을 때, 아저씨는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음식에서 희열을 느꼈죠. 어느 정도였냐면, 사람고기도 이런 식으로 짜릿해서 그때 그 진돗개가 내 손가락을 씹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때부터 아저씨는 개를 사냥했습니다. CCTV가 없던 시절에는 동네를 순방하며 몽둥이로 개를 때려잡아 포대에 담아 갔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조롱하는 세상이 오자 아저씨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욕구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아저씨가 개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저만 보면 짖는 개에게 다가가 다리를 물린 후, 정당방위로 죽이게 된 거랍니다. 용선이 아줌마가 만든 개 무덤을 제가 몰래 파내, 아저씨에게 납품한 것이죠. 저는 그 대가로 가게에 있는 식품이나 음료수, 과자 따위를 얻는 중입니다. 아저씨와 저는 비즈니스 사이라고 하는 게 알맞겠네요.


자, 개 이야기는 이쯤으로 하고 보건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까요? 집으로 가는데 시간이 남았으니 이어서 해보도록 하죠.


앞서 말했듯 보건 선생님은 제 마지막 메시지를 읽은 후, 6일간 연락이 없었습니다. 일주일 딱 7일째 되던 날에 메시지가 왔죠. 그녀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습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며칠 동안 충격에 빠져 있었어요. 10년 넘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니 믿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당신 말이 일리가 있고 논리적이라 확인을 해봐야겠다 싶었었어요. 처음으로 오빠에게 성폭행 이야기를 꺼낸 거죠. 10년 전에 나를 아파트 계단에서 성폭행하지 않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어요. 오빠는 무슨 소리냐며 짜증을 내더군요, 지금까지 나를 벌레 보듯이 한 이유가 그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밀어붙였어요.


“미친놈아. 오래됐다고 시치미 떼는 거야? 빨리 사과해. 사과 안 하면 엄마 아빠한테 다 말할 거야.”


[안하무인이었어요. 제가 세게 나와야 오빠가 사과할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일체 저에게 대응하지 않더라고요. 갑자기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로 전화하는 거였어요.]


“거기 경찰이죠. 여기 제 동생이 제가 성폭행했다고 모함하는데, 이 미친년 좀 잡아가 주세요.”


[저는 오빠 머리끄덩이를 잡고 사과하라고 악을 썼고, 오빠는 힘으로 저를 떼어낸 뒤 자기 방으로 들어갔죠. 그리고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야 상황이 일단락됐어요. 저는 부모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10년 전에 있었던 성폭행 사실을 이야기했죠. 그리고 멍청하게 울면서 사실은 범인이 오빠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오빠 같았다고 말했죠.]


[부모님은 놀라할 말을 잃었고, 저는 그때 오빠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인지했어요. 오빠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옆집 대학생이 아닌지, 아니면 같은 반 학생이 그런 건 아닌지 제게 이것저것 물었거든요.]

[오빠가 범인이 아니란 근거는 또 있어요. 당신이 메시지로 말했죠? 성폭행을 당하기 며칠 전 오빠랑 크게 싸우지 않았냐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 말도 맞았어요. 제가 그날 오빠한테 맞았거든요. 아파트 공원에서 담배를 피웠다가 오빠가 보고는 뺨을 때렸어요. 그리고 부모님에게 일러서 된통 혼났죠. 그렇게 오빠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은 상태다 보니, 성폭행을 당할 때 저도 모르게 오빠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제가 봐도 참 멍청한 년이네요.]


저는 그녀의 말을 듣고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집안이 풍비박산 나지는 않겠다 싶었죠.


[그러면 대체 저를 성폭행 범인은 누구일까요? 어떻게 해서든 죽이고 싶은데, 단서가 하나도 없네요. 영영 범인을 못 찾게 되는 건 아니겠죠?]


저는 실망한 그녀에게 답장했습니다.


[오빠가 범인이 아니라는 게 당신에게는 양날의 검이군요. 진실을 모른 채 오빠를 죽였다면 당신 마음은 지금보단 편해졌을 테죠. 하지만 그렇게 됐다면 가정이 파탄이 나고 오빠는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겠죠. 괜찮습니다. 실망할 필요도 없어요. 범인을 못 찾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부터 범인을 찾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10년 전 당신을 성폭행한 그 남자는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술 냄새가 났다면 술김에 그런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당신은 술 냄새를 전혀 맡지 않았죠.]


[둘째, 당신이 성폭행을 당하던 곳이 몇 층인가요? 적어도 그 층에 살고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우발적인 상황이 아니고서야, 범인은 절대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 살인을 벌이지 않습니다.]


[셋째. 범인은 당신이 몇 층에 사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사는 층이 아니면서 가장 한적한 층을 선택했을 거예요. 한 마디로 아파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넷째. 당신은 그 아파트에서 얼마나 살았나요?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면, 당신은 또 성폭행을 당하는 게 맞습니다. 왜냐구요? 제가 말했죠? 한번 쾌락을 맛본 자는 또 그 맛을 보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만약 범인이 당신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당신에게 다시 접근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적이 없고, 당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성범죄와 관련된 소문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면? 범인은 높은 확률로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이야기한 것을 토대로 추리해보세요. 당신은 제가 본 여자 중 가장 지적인 사람이니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메시지를 보내 놓고 그녀가 범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답니다. 그녀가 어떤 해답을 가지고 돌아올지 무척 궁금했죠. 그리고 이주 후, 드디어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매일 고민했어요. 제가 성폭행을 당한 후, 아파트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는지 부모님에게 물었어요. 부모님은 그 대답보다 왜 지금까지 성폭행을 당한 걸 말하지 않았냐며 우시더라고요. 벌써 10년이나 된 일인데, 몸은 괜찮냐며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대하더라고요. 아버지도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데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따뜻함도 느꼈어요. 사실 저는 아버지도 버러지 보듯 했거든요. 모든 남자가 혐오스럽다 보니 아버지마저도 딸인 절을 여자라 볼 거라 생각했죠. 거기다 오빠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을 때까지만 해도, 왜 저런 미친놈을 낳은 건지 원망스러웠고요.]


[각설하고 결론부터 말할게요. 희소식이에요. 당신 덕분에 범인을 찾았어요. 저를 성폭행한 미친놈은 지금도 오빠랑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였네요. 부모님 말로는 아파트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서 추리한 결과예요.]


[외부인이면서 아파트를 잘 알고, 제가 몇 층에 사는지 아는 사람. 오빠 친구밖에 없었거든요. 그 사람도 학창 시절에 놀던 사람인데, 제가 아파트에서 몰래 담배 피우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심지어 담배를 처음 배우 게 된 것도 그 오빠 때문이에요. 친오빠 몰래 단둘이 아파트 옥상에서 담배를 피운 적도 있고, 계단에서 핀 적도 있어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제가 성폭행을 당한 후,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없네요.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오르자, 그 미친놈이 범인이라는 걸 확신했어요. 우연히 길에서 몇 번 본 적도 있었는데, 저를 피하는 느낌도 받았구요. 거기다 성인이 된 다음에 가끔 그 오빠가 연락한 적이 있어요. 그것도 항상 밤늦게 술 먹고. 그때부터 제가 연락을 씹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소름이네요. 그 새끼는 그때도 저를 어떻게 해볼 심산이었던 게 분명해요.]


[일단 가족한테는 말하지 않고, 벌레 같은 새끼한테만 연락했어요. 문자로 10년 전에 네가 저지른 짓을 다 알고 있으니까 사죄하라고 했죠. 답장은 잠시 시간을 달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며칠 후 만나자는 메시지가 왔어요. 저는 만나기 전에 일단 문자로 성폭행을 한 걸 말하고 사과하라고 했는데, 증거로 남을 까 봐 계속 피하더라고요. 우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만나기로 하고 만났는데... 결과는 이거네요.]


그녀는 메시지에 이미지를 첨부했습니다. 저는 뭔가 하고 이미지를 클릭했죠. 그리고 사진을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답니다.


그녀의 눈이 시퍼렇게 멍들고 코뼈가 부러진 채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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