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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마지막 계획 (1)

by 송아론

“왜 그러세요? 제가 이상해요?”


성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자 다혜가 말했다.


“정말 다혜인 거니...?”


“네, 아빠.”


“어떻게 윤수 안에 있는 거니...? 너는 분명 유산됐는데...”


“쌍둥이들은 이어져 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이 안에 있을 수 있었어요.”


“말도 안 돼...”


바닷가에서는 파도가 치고 나면 다음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거세게, 더욱 거세게. 성문은 몇 번이나 바뀌는 윤수의 인격을 보며 마치 파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다혜야... 윤수가 그러더구나. 네가 구형석에게 가지 못하게 했다고. 사실이니?”


“네.”


“왜 윤수를 막았던 거니?”


“죽을게 뻔해서요. 다른 아이들처럼.”


“그럼 윤수가 성태와 상태도 죽였다는 거니?”


“네. 제가 똑똑히 봤어요. 윤수가 쌍둥이들을 뒤에서 미는걸요.”


성문은 날숨을 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괴롭다는 듯 양손으로 머리를 잡으며 말했다.


“윤수 말로는 다 린이 시킨 거라고 하더구나. 그런데 또 다른 윤수는 자기가 뭘 한지도 몰라. 마치 윤수 안에 두 개의 인격이 있는 것처럼.”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예요.”


“세 개?”


성문이 고개를 들었다.


“네. 순수한 윤수와 괴물 윤수. 그리고 린이 있어요.”


“그럼 너는 정체가 뭐냐? 너는 인격이 아닌 거니?”


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하나의 영혼을 가진, 하나의 객체. 분리된 자아예요. 연민의 마음으로 순수한 윤수를 도와주려는 것뿐이에요.”


성문은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네가 처음 윤수에게 나타난 게 정신과 병원에서였지?”


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때는 왜 윤수 앞에 나타났던 거였니?”


“엄마가 돌아가셔서 윤수가 힘들어했으니까요. 윤수 옆에 아무도 없어서 제가 힘이 되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윤수를 위해 다시 나타났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니?”


“네. 그러니까 제가 보인다고 해서 윤수에게 약을 먹이지 마세요. 아무런 효과도 없을 테니까.”


성문이 자신을 또 다른 인격으로 볼까 봐, 사전에 차단을 하는 다혜였다.


“그래. 알았다. 적어도 한 가지 확실 한 건 넌 윤수 편이구나.”


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이 다음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개의 인격은 뭐니? 괴물 윤수와 린은 서로 어떤 관계야?”


“그 인격들은 서로 한패예요. 좌절과 절망으로 태어나서 아이들을 죽이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죠.”


“윤수는 린의 인격에 대해서는 아는 눈치다. 하지만 자기 안에 괴물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거 같아. 맞니?”


“맞아요. 그 괴물은 순수한 윤수를 알지만, 순수한 윤수는 전혀 몰라요.”


“그래서 자기가 성태와 상태, 형석이를 죽이고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거구나?”


“네. 아이들을 죽인 건 모두 괴물이니까요.”


성문은 이것이 초자연현상이라 불리는 또 다른 현상인지, 아니면 다중인격의 증상 중 하나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해서든 더는 윤수가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성문은 잠시 생각을 정리 한 뒤 입을 뗐다.


“아빠가 말이다,”


처음으로 다혜에게 스스로를 아빠라고 칭했다.


“어제 대학병원에 갔다가, 한 전문의를 만났단다. 그녀 말로는 린이 자기를 구해달라고 했다더구나. 그러면서 린이 자기가 있는 위치를 알려줬어. 물이 아니라 뭍. 땅속이 아이라 땅 위. 다리가 아니라 다리. 죽은 육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법은 없다고 했다. 혹시 이게 무얼 뜻하는 건지 아니?”


“아니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그러니...”


성문이 의기소침한 얼굴을 하자 다혜가 입을 뗐다.


“하지만, 저는 실종된 린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정말이야?”


“네, 저는 항상 이 안에 있었으니까요.”


다혜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말해줘. 린은 어디에 있어?”


성문은 눈에 이체를 띠며 말했다. 드디어 됐다는 뜻이었다.


“그전에 하나 더 아셔야 할 사실이 있어요.”


“알아야 할 사실?”


성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다혜가 말했다.


“윤수가 아이들을 죽인 건 성태, 상태, 형석뿐만이 아니에요.”


“....더 있단 말이니?”


성문이 어서 말하라는 눈빛을 보내자 다혜가 입을 뗐다.


“가장 먼저 죽인 건 린이에요. 윤수가 린을 폭포 아래로 떨어트렸어요.”


성문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윤수가 린을 죽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문이 메마른 침을 삼킨 뒤 입을 뗐다.


“왜..? 왜... 윤수가 린을 죽였다는 말이니? 윤수는 린을 보호하려 했는데...?”


“린이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했거든요. 교장 선생님을 죽이려고 하자, 윤수가 린을 폭포에 빠트렸어요.”


“교장선생님을 죽이려 했다고?”


성문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여기에 교장 선생님이 왜 껴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 불현듯 떠올랐다. 린이 실종되던 날, 선생님 집에서 대화를 나눌 때였다. 성문이 나가려 하자, 이장이 그를 불러 세웠다.


***


“성문아, 잠깐만. 내도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되나?”


“네, 말씀하세요.”


“다른 게 아니고, 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말이다.”


“뭐가 말입니까?”


“내 오늘 오전에 린 갸를 봤거든?”


“예? 린을요?”


“누가 벨을 누르길래 문을 열어주고 보니 갸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아이가. 그래서 내가 너 병원에 있는 거 아니었냐고 물었는데,”


이장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뒤 입을 뗐다.


“내, 그때 이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가. 정신을 차려보니까 폭포 앞이었다. 바로 코 앞이 절벽이었고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카지 뭐나.”


“그리고 윤수가 린이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고 이장님께 말한 겁니까?”


“그래. 나도 겨를이 없어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신고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다 안카나.”


“선생님. 혹시 린에게 원한을 질 일을 한 적이 있나요?”


성문은 그때 린이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물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장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원한? 내가 뭐 한다고 갸에게 원한 질 일을 하겠노. 신경 쓸 일도 없는데.”


***


“설마...그래서...”


성문은 이제야 묻혀있던 하나의 퍼즐 조각을 찾은 기분이었다. 이장의 말을 무심코 흘렸던 게 문제였다. 이장이 린에게 원한 질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그는 20년 전 담임이었을 때도 채연서가 자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방관만 했다. 지금의 민환과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채연서가 성인이 되고 마을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할 때에도, 이장은 모든 걸 쉬쉬했다. 성문이 따지고 들자, 당시 이장은 이런 말을 했다.


“됐다카마! 니 아들은 몰라도 채연서한테 신경 쓰지 마라. 걔 한 명만 희생하면 우리 모두 편히 살 수 있다 아이가.”


이장이 방임을 했기 때문에 린과 채연서에게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린 입장에서는 마을 이장은 죽어야 할 존재였다. 그래서 절벽 위에서 떨어트리려 했는데... 윤수가 그걸 막았고, 그 과정에서 린을 죽였다?


성문은 그렇게 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성문은 지금까지 자신이 놓치고 있던 중요한 것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린이 실종되던 날 윤수의 알리바이.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다. 윤수가 만약 폭포에 떨어진 린을 발견했다면, 린을 숨길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이장이 마을로 내려가 신고를 하고 경찰이 용언폭포까지 오던 시간은 어림잡아 1시간이었다.


“이제 아시겠죠?”


다혜의 말에 성문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윤수를 지금까지 용의선상에서 배제시켰던 건, 내 아들이 그런 일을 벌일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형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유형의 사건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고 겪어보지도 못했다. 거기다 범인이 자기 아들이라면, 누구든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윤수가 린을 어디에 숨긴 거니?”


성문은 윤수가 완벽한 살인자라는 생각이 들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위치는,”


다혜가 입을 열었다.


“위치는 알려드릴 수 없어요. 아빠.”


“뭐?”


“알려드릴 수 없다고요.”


성문은 윤수의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다혜가 아니었다.


“왜냐면 린은 거기에 계속 있어야 하거든요. 마지막으로 린에게 사과를 받기 전까지요.”


“...너 윤수니?”


“네.”


성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인격이 바뀌었다.


성문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까 오후 다섯 시에 기찬이를 만나기로 했다고 했지?”


“네.”


“어디서 만나기로 한 거냐.”


“맞춰보세요. 비밀이니까.”


윤수는 테스트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성문은 윤수의 상태로 보아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든, 민환이 기찬이와 대화를 하면 자연히 밝혀질 거다.


“됐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마.”


성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윤수가 입을 뗐다.


“방해하실 거죠? 기찬이를 만날 때.”


“모르겠구나.”


“방해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 만날 거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성문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셨다. 윤수가 그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성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윤수는 실실 거리며 의자에 앉아 있더니 결국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성문은 슬쩍 고개를 들어 다락방을 바라봤다. 윤수는 다락방 창문 앞에 앉았다. 커튼을 친 채 바깥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닿는 방향에는 기찬의 집이 있었다. 성문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윤수를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또 왜 굳이 자신에게 기찬이를 만나기로 한 걸 발설한 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었다.


***


민환은 아침에 일어나 점심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쓰러진 고목처럼 누워 있다가 오후 1시가 되어 일어났다. 성문이 준 질문지를 가지고 바깥으로 나왔다. 괜히 고개를 돌려 성문의 집을 바라보았다. 윤수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윤수가 정말로 사람을 죽였다면 나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교사로서 행동을 올바르게 했다면,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찬이만큼은 무조건 지키고 싶었다.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민환은 기찬이 집 앞에서 목을 가다듬었다. 현관문을 두드렸다.


“기찬아 집에 있니?”


기척이 없자 다시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기찬아 선생님이야."


민환은 이따가 다시 오자며 몸을 돌렸다가, 다시 현관문을 바라봤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쉽게 문이 열렸다. 민환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안을 들여다봤다.


“기찬아.”


민환이 음성을 높였다. 하지만 여전히 정적만 흘렀다. 민환은 기찬의 신발을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사람이 없다면 방 불이 다 꺼져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그렇지 않았다. 거실부터 안방, 작은 방까지 모두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불이 켜져 있었다.


“아버님, 학교 담인 선생님입니다. 안 계십니까?”


민환은 거실에 올라 선채로 말했다. 안 되겠다 싶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열린 안방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무도 없어 작은방으로 몸을 돌렸다. 고개를 내밀자 역시나 비어 있었다. 민환은 거실 한가운데에 서서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가 싶어 나가려 할 때였다.


딸국.


어디선가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민환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가만히 선 채로 청각에 집중했다.


딸꾹.


훌쩍이는 소리였다. 민환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닫혀 있는 화장실이 보였다.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철컥.


“딸꾹.”


철컥. 철컥.


“기찬아 거기 안에 있어?!”


민환은 잠겨있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훌쩍이는 소리가 아니라 숨이 넘어가는 소리였다.


쾅! 쾅!


민환은 몸으로 화장실 문을 부닥쳤다. 열리지 않자, 뒤로 물러선 뒤 다시 강하게 몸을 부딪혔다.


콰앙-! 벌컥.


“기찬아!”


민환은 놀란 얼굴로 앞을 내다봤다. 기찬이 천장에 몸을 매단 채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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