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5 입추 ; 입추 매직

by 차정률
입추(立秋) : 가을로 들어선다



2025.8.7.(목)

최저 온도 25도, 최고 온도 30도

맑은 날씨


어정 7월 건들 8월

큰 더위가 지나고 가을이 시작된다. 입추는 가을의 입구이다. 더러 늦더위가 이어지긴하지만 입추를 지나가면 서서히 시원한 바람이 당도한다. 얼마전부터 에어콘을 켜지 않아도 되는 밤이 생기더니, 입추가 오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오늘의 트위터(현 X)에 "입추매직"이라는 검색어가 트랜드 중이라고 뜬다. 나도 좋아하는 말이다. 이 단어에는 묘한 설레임이 선선한 바람처럼 실려 있다. 올해는 내년에 비해 가장 시원한 한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더운 여름들이 이어지기에 입추가 더 반갑다. 00년 만의 더위, 혹은 00년 만의 폭우라는 표현의 숫자가 2자리 수가 3자리가 된 것을 목격한 것도 같은 이유다. 줄줄 흐르는 땀을 식히려고 에어콘을 켜면서, 지구가 참 아픈데 내가 보태고 있구나 싶은 마음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숨이 턱 막히는 주차장에서 택배를 하차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파트의 잡초를 속아내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비닐하우스나 논밭에서 쓰러진 사람들의 뉴스를 들으면서, 시원한 곳에 있는 나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여름이 드디어 끝나간다.


농촌에서는 오히려 입추 즈음이 한가한 시기라고 한다.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전국적으로 전해진다. 김매기도 끝나고 가을을 준비하며 그나마 건들건들 보낼 수 있는 시간. "어정" "건들"하게 보내는 여름. 아니, 어쩌면 너무 더운 시기에는 일하지 않는 선조들의 지혜일까, 그들은 더위에 누구도 일하지 않게 자연을 계산해 온게 아닐까.



입추엔 "하늘이 청명하면 만곡(萬穀)이 풍년이라" 여기고, 비가 조금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겼다고 한다. 오늘의 하늘을 살핀다. 하늘은 여름의 파랑을 닮고 점점 높아질 준비를 하듯 깊어져가고 있다. 금방이라도 가을 하늘의 높이로 겅중 나아가려 한다. 투명한 가을 하늘엔 내 마음도 더 반듯해지길, 하고 바라봤다.


해의 깊이

도시 살이에서 누릴 수 있는 계절은 협소하다. 등원과 하원으로 하루가 고정된 엄마라는 일상에서는 그렇다.


화장실 선반에 수건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세탁물이 꽉차오른 것을 떠올린다. 혼자 살 땐 일주일에 한번도 하지 않았던 세탁을 거의 하루에 한번 하는 것 같다. 색깔별로 용도별로 나눠서 하는 부지런한 살림꾼도 아닌데, 고작 어른 아이 나눠서 하는 빨래에도 나날이 분주하다. 아이들이 걷지 못할 땐 하루에 다섯번씩 빨래 한 적도 있었는데, 이건 여유롭다고도 생각한다.


기계음의 멜로디, 기계적으로 세탁기 뚜껑을 열어 수건을 건조기에 돌린다. 몇개는 꺼내어 베란다로 가져간다. 탁탁, 빨래 터는 소리는 마른 옷감을 터는 소리와 다른 시원함이 있다. 주름이 펴지지 않은 귀퉁이의 몇 군데를 쭉쭉 당겨 옷걸이에 걸어둔다. 몇 벌 안되는 셔츠와 원피스는 후끈한 온도에 금세 마를 것이다.

세탁물을 걸어놓고 돌아나오다 전등을 꺼둔 방안에 오후의 햇빛을 목격한다. 완연히 다른 각도와 온도다. 비스듬히 나리는 빛은 한결 부드럽다. 한낮의 여름빛이 따가운 기분이 드는 건 그 빛의 밀도가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도시 살이의 계절은 바닥과 벽에 비치는 해의 모습으로 종종 다가온다. 입추의 해는 점점 길어질 준비를 한다.




+

절기는 태양 황경의 각도에 의해 정해진다. 입추가 시작되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의 발견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4756?pageType=search&keyword=%EC%9E%85%EC%B6%94 한국민속대백과 사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5 대서 ; 더위로는 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