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雪) ; 작은 눈
2025.11.22(토)
최저 기온 3도 최고 기온 15도
다소 포근
소설(小雪)과 소춘(小春)
추위로 들어서며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을 지나, 다음 절기는 이름이 꽤나 서정적이고 귀여운 '소설'이다. 눈이 올 만큼의 날씨, 마른 낙엽의 냄새가 깨끗하고 차갑게 몸 속으로 다가오는 겨울이 다가온다.
소설은 농사의 시간이 끝나고 성큼 다가오는 겨울을 위한 준비들을 한다. 가을에 곱게 익은 감들을 말려 곶감을 만든다거나, 마을마다의 재료들을 가득 넣어 김치를 담근다거나. 시래기를 엮어 달거나 무말랭이 호박들을 말려가며 겨우 내내 먹을 것들을 마련한다.
긴 추위를 대비하는 사이사이 겨울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 계절은 사이사이 가을의 아쉬움을 남긴다. 손과 몸을 덮일 만큼의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것을 소춘(小春)이라고도 한다. 작은 눈과 작은 봄 사이, 겨울과 가을 사이, 바람과 햇살 사이. 서로를 밀어 내고 당기면서 다음 계절이 온다.
겨울 사이에도 햇빛이 있어
유치원으로 가는 아이들을 위한 버스 정류장이 있다. 나도 아이들이 생기기 전까지는, 유치원에 보내기 전까지는 몰랐던 풍경이다. 정류장의 일상은 아이들이 있는 여느 장면들처럼 달기리와 웃음과 약간의 칭얼거림, 세수 못한 얼굴들의 한숨과 후련함이 공존한다.
소설 즈음 찬바람과 따뜻한 기운이 번갈아 정류장을 감샀다. 아이들은 가을 바지, 기모바지, 실내복에 얇은 바지, 경량패딩, 두툼한 다운 패딩, 복슬복슬한 동물 옷등을 섞어 입고 나온다. 공주 드레스를 매일 입어야 하는 공주파와 추위를 많이 겪는 아이들의 옷차림은 유리구두와 털부츠만큼 계절이 멀다. 아이들의 온도와 활동량 만큼 각양각색의 옷차림들이 매일 아침 시끄러운 정류장을 감싼다.
겨울이 성큼섬큼, 작은 걸음과 큰 걸음을 나눠 걸어 올 때에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씩씩함으로 계절을 맞는다. 뛰어다니고 마른 낙엽을 밟고 킥보드를 타고 돌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 모습에 와르르 웃어버린다. 세상이 모두 같은 계절을 발음한다고 해도 각자의 몸을 타고 흐르는 다른 계절이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의 겨울은 언제나 무거웠다. 추위를 싫어하는 내 몸은 쉽게 굳어버려서 어깨를 접고 종종 걸음을 걷는다. 밖에 나가는 게 어렵다. 그래서 인지 작은 눈이 진짜로 내리지도 않았는데, 허리부터 목까지 빳빳하게 몸이 굳어서 꽤 오랜기간 두통에 시달렸다. 겨울의 고질병들도 결국은 내 계절에 내가 생긴 모양이다. 딱딱한 승모근처럼 툭툭한 마음까지도 그렇다.
이 겨울이 그냥 오지 않는다는 걸, 겨울 사이에 간간이 봄이라고 불리는 햇빛들이 있다는 것을, 겨울이 두려운 나는 기억하기로 한다.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버스에 커다랗게 손을 흔들고,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와 내가 가고 싶은 자리들에 대해서도 햇살이 있을 것이라고, 중얼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