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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를 걸어봐야 문경을 알 수 있다

또 오고 싶은 문경새재를 엄마와 함께 걷다

by 천둥벌거숭숭이

가을은 다분히 여행의 계절이다.

선선한 바람이 외출을 즐겁게 만들고, 계절의 옷을 입은 자연이 우리를 부른다.

괜히 소풍이 존재하는 봄과 가을이 아니다. 가을소풍.

엄마와 하는 가을소풍의 목적지가 바로 문경새재다.

지난 2주살이로 보낸 문경에서의 하루하루가 오래도록 남아있다.

문경에 대한 나의 감상이 엄마에게는 부러움으로 남아있었나 보다.

"나도 문경새재를 가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엄마를 위해 하루 만에 문경에 다녀올 결심을 한다.

문경까지 운전해서가면 최소 2시간 30분. 넉넉잡으면 3시간이 걸린다.

경북 문경은 생각보다 부산에서 멀어져 있는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 잡은 도시다.

문경 맛집 희영이네의 묵밥(10,000원)
문경맛집 희영이네 추천 메뉴 수수부꾸미(8,000원)

빠듯한 일정에 단 한 곳의 휴게소에서 짧은 휴식을 취한 후 문경에 도착하니 벌써 시간이 11시가 넘었다.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는 문경맛집 희영이네였다.

문경새재 앞에도 맛있는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 있지만, 문경에 2주간 머물면서 현지인 추천으로 먹었던 좋은 음식들을 엄마에게 맛 보여주고 싶었다. 그 첫 번째 식당이 바로 희영이네다.

바로 앞에 관공서가 위치해 있어서 주차하기도 편리하다.

10시 30분에 영업을 시작하는 희영이네에 11시에 도착하니, 벌써 우리 포함 4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도착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현지인이 줄 서는 맛집 희영이네다.

단 한번 왔지만, 고민 없이 묵밥 2개와 수수부꾸미를 주문한다.

건강한 묵밥은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갓 구운 수수부꾸미는 정말 맛있다.

정갈한 반찬이 먼저 나오고, 묵밥은 금방 내어진다. 육수를 부어 적당히 새콤한 김치와 먹으면 긴 운전의 피로가 녹을 만큼 건강이 입안 가득 울려 퍼진다.

식사 중간에 나온 수수부꾸미는 후식이 아닌 든든한 곁들임 음식이 된다.

종이컵에 넣고 한입 베어 물면 따스하고 고소한 팥향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수수부꾸미는 행복이다.

희영이네에 방문한다면 저는 메밀전보다 수수부꾸미입니다. 적극 추천!

엄마도 묵밥이 맛있다고 했지만, 수수부꾸미는 또 생각날 음식이라고 말했다. 칭찬에 인색한 엄마의 평에 데려온 사람의 기분이 좋아지는 후기에 절로 힘이 솟는다. 첫 스타트가 좋아.

문경도자기박물관. 손대면 안되요.
문경의 특산물. 찻사발

희영이네에서 맛있게 점심식사를 한 후 문경새재를 찍고 가던 도중에 문경도자기박물관이 눈앞에 보였다.

망설이지 않고 정차했다. 여유로운 주차공간이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진다.

문경 2주살이에서 가지 못했던 문경도자기박물관을 이렇게 오게 되다니. 오히려 좋아.

문경의 특산물에는 사과, 오미자가 잘 알려져 있지만, 장작가마로 구워 튼튼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를 빼놓을 수 없다.

문경도자기로 만든 작품들의 입체감이 돋보인다. 그러나 절대로 만지면 안 된다. 아름다운 것일수록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

입구에 위치한 찻사발 나무. 문경찻사발축제에 만들어진 작품이 도자기 박물관의 대문을 장식하고 있다.

문경도자기협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작가마를 써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전기가마, 기름가마가 간편하게 나와있지만, 긴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하는 장작가마만을 인정하는 뚝심 있는 자기를 문경에서 만날 수 있다.

문경 찻사발과 관련한 우스갯소리가 재미있다.

-문경의 사기그릇은 막사발로 불리며 일반 서민들이 즐겨 사용했다. 그러다 금이 가거나 조금 깨진 그릇을 개밥그릇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어느 날, 점잖은 길손이 문경을 지나가다 한 민가의 강아지를 보게 되었는데, 개밥그릇이 유독 좋아 보이는 것이다. 저렇게 명품그릇을 개밥그릇으로 쓰는 사람이라니,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길손이 집주인을 불러 개를 사고자 말을 건넨다. 주인은 흔쾌히 개를 팔기로 하고 길손은 덤으로 개밥그릇을 달라고 말한다. 주인은 정색을 하며, 저 개밥그릇으로 개를 얼마나 팔았는데, 절대로 개밥그릇을 줄 수없다고 말한다. 속으로 개주인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길손이 사실은 개주인에게 당한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문경도자기박물관에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가을에 문경새재를 가야하는 이유
감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계절

드디어 문경새재에 도착. 도립공원과 가장 가까운 1 주차장이 만차여서 2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경새재에 우리도 한보탬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에 살고 있는 부산사람은 계절을 앞서가는 서늘한 지방의 속도감이 신기하기만 하다.

가을하늘 공활한 모습이 절경으로 표현되는 문경새재에 다시 오다니, 눈물이 날 만큼 감격스럽다. 생각보다 운전이 혹독하여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푸른 하늘과 수줍게 자신을 나타내는 조각구름, 탐스럽게 짙은 색을 자랑하는 단풍나무와 힘차게 흐르는 시냇물이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걸작에 잠시 넋을 잃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엄마가 좋아한다. 그거면 된 것이다.

문경새재 제1 관문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 감나무의 열매가 탐스럽게 익었다.

누구를 위한 감인가. 지나가는 철새들의 간식거리가 될 것인가. 사람들 손에 닿는 자리에는 감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들을 위해 남겨놓은 감이 아니겠나 짐작만 할 뿐이다.

지름틀바위와 소원성취탑
문경새재 제2관문 조곡관

점심을 야무지게 먹었더니 아직도 든든하다.

문경새재는 새도 오르기 힘들다고 이름 붙여진 '새재'다. 그저 평지를 걷는 것만 같지만, 사실은 얕은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이다.

그래도 눈이 즐거운 곳이다.

많은 사극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오픈세트장을 지나 하늘로 곧게 자라는 나무들을 벗 삼으며 걷다 보면 기름 짜는 틀같이 생긴 지름틀바위가 돋보인다.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을 보는 호강을 여기서 한다. 이름 한번 기가 막히게 지었다.

옛날부터 문경새재는 기쁜 소식을 기대하며 걷는 길이라 하여 많은 이들이 지나다녔다.

그 마음들이 담긴 소원돌탑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기가 쇠한 자리에 쌓은 돌탑과 각자의 소망을 담은 돌탑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의 염원은 강하다.

나는 그저 옆에 있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 함께할 뿐이다.

조금은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갈 수 있다며 걸어가는 엄마에게 이제 2 관문이 눈앞에 있다고 말한다.

문경새재에서 제2 관문을 지나서야 진정한 문경새재를 걸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경사도가 꽤 있다.

전동차는 올라가지 못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경사도와 곡예구간이 있어서 작은 소형차만이 안전을 위해 오고 갈 뿐이다. 3 관문까지는 오롯이 사람의 다리로만 갈 수 있다.

문경새재 제3관문 가는 길
문경새재 제3관문

새도 넘기 힘든 고개라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코스다.

주차장이 차로 가득할 만큼 찾는 이들이 많지만, 제3관문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하늘로 솟았나, 각 관문에 숨은 듯이 자리 잡은 휴게소에서 맛난 산채전을 드시고 계신 걸까.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잘하고 있다는 긍정의 말 뿐이다.

차분히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까지 함께 가자.

해발고도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400m, 500m, 그리고 600m.

동네를 지키고 있는 산의 높이를 상회하는 높이를 눈으로, 그리고 다리로 실감하는 중이다.

문경새재를 걸어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함을 가진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앞만 보고 걷기 힘들 땐, 하늘 위를 바라본다.

가을 하늘의 공활함이 개방감을 주고 계절의 색을 입은 나뭇잎들이 각자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숨이 가빠올 때쯤 만나는 문경새재 제3관문. 조령관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인증샷은 기본. 지쳤던 몸과 마음이 금세 풀어지는 것은 목표를 달성했다는 달디단 열매를 마음으로 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려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볍다. 완만한 경사도로 꾸준히 올랐던 길을 리드미컬하게 내려간다.

문경새재 내려가는 길에 만난 단풍나무와 스트레스 측정.
문경 특산물 오미자 현미쌀과자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문경새재를 맛본다.

문경에 가고 싶다는 엄마에게는 내가 만든 코스가 의아하게 느껴졌나 보다.

"문경새재 하나만 보고 집으로 가는 거가."," 응."

문경새재 하나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가득 차거든. 일단 가봐야 확실히 알 수 있어.

험준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문경새재를 야무지게 체험한 엄마는 바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고 했다.

오늘 보지 못한 곳들은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하루 종일 열심히 걸어서 건강해진 듯 보였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64세의 여인.

고생했으니, 가고 싶었던 곳엘 가야 한다.

엄마가 가보고 싶어 했던 문경새재농산물판매장. 엄마의 눈빛이 반짝인다.

입구에 있는 오미자 현미쌀과자. 오미자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100% 국산 현미라는 말에 고민 없이 득템, 말린 고사리나물과 꼭 사고 싶었던 오미자 에센스까지.

문경에 다녀왔을 때 받아온 수많은 특산품과 선물들이 엄마마음에 꼭 들었나 보다. 또 먹고 싶고 갖고 싶은 물품들이 참 많았다. 조만간에 또 올 것만 같은 기분.

그리고 미련 없이 차에 시동을 걸고 문경새재와 안녕을 고한다.

고속도로 휴게소 맛집 낙동강의성휴게소
낙동강의성휴게소 수제돈가스는 정말 맛있습니다

5시가 가까워올 시간에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문경에서 밥 먹고 오는 것이 좋지 않았냐는 엄마의 물음에,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을 알려줘야지 마음을 먹는다.

마침 자동차에 주유를 할 타이밍이다. 모든 것이 나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 중에 있었다.

그렇게 낙동강의성휴게소에 입성. 축사가 근처에 있어 송구한 마음을 입구에 붙어놓은 휴게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심 끝에 엄마는 무보까얼큰이국밥, 나는 고민 없이 수제돈가스.

오랜만에 먹는 국밥이 왜 이렇게 맛있을까. 피로감을 날려버리는 얼큰함과 묵직함이 목구멍을 강타한다.

그와 더불어 함께 시킨 수제돈가스는 거짓 없이 완벽한 수제의 맛이 느껴진다.

잘 손질하고 적당히 튀겨낸 돈가스와 기본의 소스. 기대를 충족하는 맛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휴게소 음식이 참 맛있네. 엄마가 넌지시 뱉은 말에,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지만 함께하는 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더 기분이 좋아진다.


계획에 없던 여행에 차질이 없었던 이유는 이미 다녀온 곳이기 때문이다.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이 싫어 애초에 계획을 하지 않는 사람의 여행은 언제나 서투르다.

하지만 집 밖에 나서기만 하면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긴 시간 운전에도, 목적지 근처에 맛집을 찾아보면서도 단 한 사람의 만족스러운 표정 한 번이면 마음이 놓인다.

다행이다.

운 좋게 지역살이에 뽑히게 되어 문경을 알게 된 것도, 지독히도 싫어했던 운전을 억지로 배웠던 경험도, 게으르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등산도.

시작은 타의였지만, 체험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결국은 내 것이 되었다.

등산으로 다져진 체력으로 엄마의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주었고, 싫어하는 것을 잘 해내기 위해 10년 무사고의 베테랑 운전사가 되어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나의 감상평과 일상 언어 속에 배어 있는 문경이 궁금해진 사람들을 안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문경사람들의 추천 1순위 문경새재는 한 번만 다녀오고는 문경새재를 안다고 할 수 없다.

다음에는 문경새재 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미로공원과 옛길박물관, 오픈세트장과 주흘산, 조령산 등산까지 맛보려면 최소 5번은 더 가야 한다.

그렇게 발도장 찍는 것이 나의 미션이고, 그 경험이 나를 확장시킬 것을 확신한다.

바쁜 일정이 피곤하지만, 성장통이라 생각하고 더 큰 사람으로 자라나는 나를 응원한다.

그래서 오늘 여행도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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