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브런치와 쌍화모주, 유럽마을과 아들, 딸 사랑한다
서먹서먹한 기운이 아직은 몰려있지만, 같은 조원의 얼굴은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각 조별로 자리 잡고 예능프로에서나 보던 스케치북과 함께 풀어나가는 퀴즈가 시작되었다.
몸으로 말해요 - 속담 편, 말로 풀어내는 역사인물과 연예인이름 맞추기. 등등
겨우 얼굴만 아는 사람들과의 퀴즈 풀기는 녹록지 않다.
가위바위보의 승리로 우리 조가 제일 먼저 문제를 풀게 되었다. 바로 연예인 이름 맞추기.
여기서 서로의 연령대가 여실히 드러난다. 왜 나는 손예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까.
항상 다 끝나고 나서야 제대로 기억이 난다. 현빈 부인하면 바로 정답이 나왔을 텐데.
친구끼리 함께 온 팀의 정답률이 굉장히 높다.
결국엔 동점이 나와 가장 어려웠던 몸으로 속담을 표현하는 문제를 풀기로 했다.
눈치와 센스가 빛이 발하는 시간.
우승팀에게는 아기자기 귀여운 복분자 유리병선물이 주어졌다.
서먹한 기운을 걷어가고 함께라서 즐거운 시간이 계속된다.
예능프로에서만 보던 게임에 푹 빠져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곧 깊은 밤을 제대로 즐길 시간이 도래한다. 캡슐호텔의 옥상에 담당자분들께서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우리들만의 야장이 시작된 것이다.
아기자기한 조명과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정읍역이 고요하다. 시끄럽게 떠들어도 괜찮은 공간.
카스테라와 정말 맛있었던 정우막걸리가 등장. 안주는 퀴즈의 승자들이 따낸 교촌치킨을 다 함께 먹게 되었다. 선물 받은 복분자를 서슴없이 꺼내어 모두와 함께 먹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덕분에 복분자 칵테일까지 야무지게 맛보았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언제나 교촌치킨을 먹으면 레드콤보만 먹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허니콤보를 맛보게 되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허니콤보를 좋아하는 것일까.
정읍역 근처에 있는 교촌지점은 레드콤보가 진짜 맛있다. 허니콤보는 그저 내입에는 달기만 했다.
조금씩 취한 사람들의 노랫소리와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가운데, 내년 교도관 예정인 스테프의 이상형 맞추기가 시작되었다. 우선 아닌 사람부터 지정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아니라고 뽑히는데도 좋아하는 사람과 지정하고 미안해하는 사람도 웃기고, 그저 [나는 솔로] 프로를 바로 옆에서 보는 사람들의 관전이 흥미진진했다.
즐거움이 진해지고 있었지만, 새벽부터 운전대를 잡았던 나는 피로하기만 했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먼저 들어가겠다 하고 나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벽한 방전이다.
캡슐호텔의 메리트는 오로지 잠자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하지만 소음에 취약하다. 피로감에 일찍 잠에 들었지만, 엄청난 소음에 꿈에서 강강술래 하는 꿈을 꾸었다. 30분 정도를 참다가 나가보니 틱톡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잠에 취해 화를 낸 후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떠든 사람이 두세 명이었고, 숙소에는 10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는데 왜 아무도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모두에게 화가 난 채로 조용히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밤사이 모든 감정이 휘발되었다. 그래도 간밤의 고요는 지켜내었다는 위안으로 눈을 떴다. 새벽 6시는 이른 시간이다. 친구도 밤잠을 설쳤나 보다. 덕분에 함께 아침산책을 즐겼다.
정읍역 주변은 고요한 주택가와 인접해 있으면서 숙박업소와 시장이 공존하고 있었다. 짧지만 야무지게 정읍을 맛보고 있다. 그리고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의 말을 귀로, 마음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8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조식의 시작. 신선한 샐러드와 포슬포슬 잘 구워진 계란 오믈렛과 토스트가 알차다. 간결한 메뉴지만 알찬 맛을 뽐낸다. 덕분에 포식하는 아침이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1박 2일의 짐을 단숨에 정리한다. 마무리는 언제나 아름답게.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읍만의 특색. 쌍화모주 만들기 체험이 시작되었다.
쌍화차는 20가지가 넘는 한약재를 72시간 이상 끓여 만들어낸 건강하고 맛있는 보약이다.
모주와 쌍화차를 넣고 중불에 끓인다. 적당히 저어주는 것은 정성이다.
맛있는 갈색이 나올 때 불을 끄고 식혀줘야 한다. 뜨거운 상태의 액체는 캔을 찌그러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두 번째 쌍화모주였기 때문에 익숙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지역문화체험이 끝난 후 조별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각자 떠나게 되었다.
쌍화차를 마시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정읍에 유럽마을이 있다는 다른 조원의 영업에 힘입어 우리 조도 유럽마을로 일정을 급변경한다. 여행의 묘미는 어그러지는 일정과 확장되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고즈넉한 시골 풍경 속에서 뜬금없이 유럽풍의 건물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쌍화차보다 오히려 좋은 건가.
유럽마을의 입구가 커다란 문으로 닫혀있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인가 보다.
유럽마을 바로 앞에 있는 엥겔베르그로 입장.
고풍스러운 르네상스의 느낌이 한껏 풍기고 있는 카페의 내부에 압도된다.
아메리카노 한잔의 가격이 상당하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밀크티로 주문했다.
도착하고 보니 다른 조원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유럽마을 엥겔베르그는 정읍사람들이 외지인들에게 추천하는 느좋카페인가 보다.
다른 조원들이 구매한 페스츄리류의 빵을 맛보았는데, 진짜 맛있었다. 밀크티도 적당히 달달하고 향긋하더니, 이곳은 분위기도 맛집, 차도 맛집, 빵도 맛집이다.
자리에 앉아서 둘러보다 보니, 벽면이 찻잔과 접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깨진 부분을 금과 은으로 접지를 시킨 기법이 예사롭지 않다. 접시계의 명품인가.
혹여 손이라도 닿을까.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본다. 찐부자들의 고급취미를 이렇게 즐길 수도 있구나.
분위기에 취하고, 맛에 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에도 친절한 사장님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셨다.
유럽마을에 전화를 해놓았으니 구경해 볼 수 있다고. 그렇다면 가보는 것이 인지상정.
유럽마을이 쉬는 날임에도 문을 열어주신 관계자분 덕분에 조용하고 고요히 유럽마을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지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나무 조각들이 더없이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뾰족한 삼각지붕 아래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이 계절에 볼 수 있는 환하게 피어난 맨드라미까지. 화려함으로 압도한다.
유럽마을 내에 작은 박물관이 있다는 정보는 미리 검색해서 알고 있었지만, 쉬는 날이라 보지 못했다.
그것이 다만 아쉬울 뿐. 그래도 조용히 마을을 둘러보는 맛이 있다.
같은 조원 커플이 사진 찍는 것을 구경하고 조용히 꼽사리 껴보기도 한다. 친구와 오길 참 다행이다.
안 그러면 진짜로 외로울 뻔했어. 함께여서 참 좋았어.
짓궂게 놀렸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곁을 지켜준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늘 잊지 않기를 바라. 6년이 60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난 친구가 지금도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는 몰랐거든.
영원했으면 하는 순간이 존재하지만, 진짜로 영원한 것은 없어. 하지만 소중한 시간을 오래도록 가지다 보면 그 순간은 영원한 거야.
그리고 우리는 정읍 맛집 [아들, 딸 사랑한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식들을 향한 사랑이 지극하신 분들의 가게인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식당이름이 맞는지 의아하게 생각되는 가게이름이 재미있다.
정읍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는 이 가게는 김치 매운 갈비찜으로 유명한 곳이다. 맵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많은 이들과 함께 먹어야 하므로 기본맛을 먹기로 했다.
얼마나 맵길래 계란말이가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상차림이군.
기본맛인데도 꽤나 칼칼하다. 고춧가루의 맵싸함이 목구멍을 강타한다. 매운맛도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고기도 실하게 들어있어 꽤나 만족스럽다. 계란말이 추가 1000원. 다섯 개도 먹을 수 있어요.
정읍에서 먹은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
역시 전라도는 미식의 고장인가. 짠맛과 매운맛에 익숙한 사람도 감화시키는 맛집은 여행을 더없이 만족스럽게 만든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처음 만났던 장소인 달하 노피곰 컨퍼런스 센터로 향한다.
두려움과 설렘 가득했던 눈빛들이 어느새 피로함과 익숙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각자의 좋은 추억을 만든 1박 2일이었을까.
나 혼자였다면 그리 즐겁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보물 찾기도 잘 못하고 낯선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나에게는 영겁과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존재자체로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음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내향적이고 소심한 나와는 달리 쾌활하고 밝은 친구는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정읍역 행사에서 커다란 함성과 응원으로 선물 받은 정읍샌드를 모두와 함께 나눠먹고, 쌍화차 끓이는 시간 맞추기에 누구보다 빠른 동작으로 기회를 선점하여 당당히 쌍화차를 경품으로 받아낸 것은 오롯이 그녀의 능력이다.
3년의 시간은 짧다고도, 길다고도 할 수는 없지만 헤어짐으로 끊어낸 인연의 자리를 한순간에 가위처럼 오려낸다고 금방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친구가 외로워할 시간이 적었으면 하는 마음에 떠나게 된 여행이 친구에게는 어떠했을까.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을까.
마냥 밝게만 보이는 얼굴에서도 그늘이 느껴지는 것은, 다만 나의 걱정일까.
1박 2일의 여행을 보내고 다시 드라이브를 즐기며 돌아가는 길. 운전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친구의 결의가 옆자리에서도 느껴진다. 운전에 더 익숙해지면 함께 다닐 곳이 더 많아지겠지.
10년의 장롱면허가 무색하게 열심히 운전연수를 받고 다니는 친구의 열정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다.
목표가 뚜렷하고, 자신을 발전시키기에 부지런한 사람, 그리고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사람.
스스로에 대한 열정에 깊은 밤 고민으로 밤을 설치곤 하지만, 늘 최선을 다해내는 사람.
그렇기에 후회보다 빛나는 매일을 사는 친구를 보며 오늘도 나는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