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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에는 흔한 서사가 없다

시화수업 첫 번째 이야기

by 천둥벌거숭숭이

막연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거짓보다는 진심에 가까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진짜로 쓰고 싶은 글은 다음 장이 궁금한 글이다.

자아가 충돌하고 소란한 마음속에서 내가 배설해 내는 글은 언제나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 수필을 가장한 일기장이었다.

막다른 길에 놓였을 때는 돌파구가 필요하다.

내가 쓰던 글이 아닌 다른 장르의 습작법을 배워보자.

그때 눈에 띄는 인스타 광고가 있었다.

바로 이바구공작소, 4일 만에 시화 완성하기.

속성으로 시를 쓰고 그에 걸맞은 그림을 그려내는 것. 단 4일 동안 이루어지는 농도 짙은 수업을 내가 무사히 완주해 낼 수 있을까. 그보다 일단 신청하고 선정되기를 기다려보아야지.

용기를 끌어내 신청 후 받은 당첨문자는 설렘을 안겨준다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이 지금에도 적용된다.

안 될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일단 도전해 보는 것이 나의 세상을 확장시키는 일이다.

좋은 기회를 잡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4일 동안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촉박하면서도 느긋하게 느껴지는 시간.

하루 4시간 총 4일. 16시간 안에 만들어내야 하는 나의 조각을 열심히 다듬어보자.

준비물이 간단해서 좋다. 종이에 직접 써 내려가는 내 생각을 끄적여보고 함께 공유할 생각에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대지만, 그조차도 오랜만의 일이라 설렌다.

부산대. 한때 부산에 사는 사람들의 쇼핑명소, 먹거리가 풍성한 만남의 장소였지만, 지금은 빈점포만이 가득한 부산의 침체화된 상권을 대변하는 지역이 돼버렸다.

나 또한 부산대까지 나올 일이 없어서 아주 오랜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자주 가던 옷가게는 문을 닫았고, 지하철 역 앞에 있던 수제햄버거집이 로또방으로 바뀌었고, 다이소에 가장 사람들이 많았다.

편의에 익숙해진 삶이다. 터치 몇 번이면 결제가 금방 되고, 자고 일어나면 상품이 집 앞에 놓여있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 사람을 도태하게 만드는가. 사람들이 직접 하던 일을 AI에 의존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결국 살아남을 직업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궁극적인 고민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AI에 대체될 수 없는 특별한 글솜씨를 배우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당충전이 나만의 루틴이다.

일본여행은 편의점에서 하는 것이 옳다. 오하요 푸딩(4,000원)
일본 초콜릿과자 나무꾼의 그루터기(4,500원)

무심코 돌아본 편의점 문 앞에 적혀있는 문구가 망막에 맺혔다.

부산에서 먹을 수 있는 오하요 푸딩 100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당분섭취는 일본여행으로 정해졌다.

세븐일레븐에는 가볍게 일본여행을 간접체험해 볼 수 있는 간식류가 많다.

일본에 가면 꼭 먹어야 한다는 오하요 푸딩을 부산에서 먹을 수 있다니, 안 먹을 수가 없다.

카운터 옆에 초콜릿과자를 배치한 것은 사장님의 뛰어난 영업실력이다. 나무꾼의 그루터기. 맛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먹어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재빠르게 결제를 마치고 오하요 푸딩을 한입 맛본다.

연두부보다 더 부드러운 촉감, 진한 우유의 향. 입에 넣자마자 스르르 녹는다.

아 이런 식감에 이런 농도였구나. 맛있는 푸딩에 대한 정의를 가지지 않은 자에게 '푸딩'의 맛이 입력되었다.

아마 앞으로 나에게 푸딩맛의 기준은 '오하요 푸딩'이 될 것이다.

부산대학교 인문관 409호. 이바구공작소 시화반.
이바구공작소 시화반의 첫 번째 수업

아주 오랜만에 학교에 가는 길, 낯설고도 익숙한 그 길을 걸으며 강의실을 찾는 설렘이 공존한다.

나는 부산대 학생이 아니었지만, 왜 부산대학교를 자주 찾았는가.

지금은 아니지만 부산대학교는 만남의 장소였고, 부산대 안에서 하는 행사의 아르바이트 경험과 축제참여가 한몫했으리라. 그동안 부지런히 살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인문은 학문의 첫 문이다. 대학본부와 인접해 있어서 강의실 찾기가 수월했다.

교내의 학생들은 바삐 걸어 다니고, 나 역시 강의시간에 맞게 도착하기 위해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내 안에 잠자던 학구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409호. 4일간 작품을 완성해내야 하는 곳.

왠지 어깨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배움의 기대감이 더 크다.

시. 시적언어. 시와 시가 아닌 것의 구분이 가능할까.

근원적인 물음으로 강의가 시작된다.


시를 써야 하는 수업이지만, 교수님은 시를 해석하고 강의하는 분이었다.

새로운 관점이다. 덕분에 많은 시를 읽어보고 어떤 방식이 나와 맞는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의 몰랐던 시를 알게 된 것도 좋다. [구름의 파수병]

형식에 매여있지 않았던, 진심이 담긴 시인, 아마 내가 써내려 갈 시도 그와 결을 같이할 것만 같다.

대중들에게 [즐거운 편지]로 잘 알려진 황동규 시인은 [소나기]를 쓴 황순원 작가의 아들이다.

황순원 작가와 박목월 작가는 절친한 사이였고, 서로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름을 동규라 부르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래서 황순원 작가의 아들 이름이 황동규, 박소월 작가의 아들 이름이 박동규가 되었다.

이런 소소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대학 교양시간의 묘미였는데, 지금도 이렇게 재미있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황동규 시인은 사랑에 대한 글이 많다.

[조그만 사랑 노래]에서 나오는 '길'은 사라지고, '길 아닌 것'도 사라진다. 여기서 '길'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길.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명사들을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시적 대상에 대하여 쉬이 공감하게 만들게 하는 일상성에 대한 이야기.

배옥주 시인의 [자는 잠]. 자는 행위와 잠이 더해지는 모순적 단어가 그다음 차원을 이야기한다.

등과 바닥 사이가 붙어버렸을 때, 손바닥이 들어가지 않을 때 자는 잠에 가까워진다.

오랜 기간 어머니의 간병을 맡았던 자식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마치 손바닥 하나만큼의 공간이라는 것, 죽음은 깨지 않는 잠, 그것을 자는 잠에 비유한 작가의 함축적 비유가 인상적이다.


짧게 축약된 운문에 대한 해석이 이렇게 무궁무진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깊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흥미로웠던 시에 대한 강의가 끝나고 참여자들이 각자의 시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시절 매일 쓴 시를 책으로 엮는다는 사람,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사람, 최근에 배운 어반스케치를 기반으로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재개발 이슈로 시어머니와의 동거생활을 시에 녹여내고 싶은 사람, 자신이 가진 두려움에 대해 말하고 싶은 사람, 가깝고도 먼 둘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각자의 서사가 뚜렷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

누군가가 궁금해할 만한 서사가 나에게 존재할까?

나의 고민? 혹은 다음의 거취? 사람과의 관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순식간에 정해졌다.

주말에만 만나는 사랑둥이 아가야. 일요일 오후에 내가 떠나면 이틀 동안 고개를 들지 않는다는, 오로지 나만을 바라는 한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특별한 서사는 없지만, 그래도 쓰고 싶다. 그 사랑스러운 존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다.

그리고 순식간에 한 편의 시를 써내려 간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 아가야에 대하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관념이 부족한 나에게,

유독 주말이 기다려지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바로 나의 아가야. 나만 보면 흥분된 마음을 감출 생각이 없는 진돗개가 바로 그 녀석이다.

평일을 열심히 살아야 그 녀석을 보는 보람이 있다.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가야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시간 날 때마다 산책을 시키고, 간식을 물려주고, 물을 데워 씻기고, 아픈 곳은 없는지 구석구석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하게 만드는 나의 관종.

하루 종일 곁에 있다가도 내가 일어서면 금세 어디로든 따라갈 태세를 하는 녀석.

하지만 처음부터 나는 그 녀석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주말에만 찾는 시골집에는 언제나 개가 존재했다.

투견이었다가 진돗개였다가, 다시 핏불로.

동네의 지역유지와 친분이 두터우면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이 가득하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개가 바뀌기도 하고, 피치 못할 사고를 금세 해결해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무섭게 생긴 개 옆에 가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는 어떤 종류를 불문하고 세상에서 가장 귀엽다.

아기 때부터 만난 강아지들에게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쳐간 강아지들이 5마리가 넘는다.

각자의 사연으로 떠나간 강아지와 새로 찾아온 강아지.

지금의 강아지가 바로 그 아가야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흥미롭게 들어줄까.


이렇게 함축적으로 글을 써본 일이 얼마만인지.

학교 다닐 때에야 강제적으로 썼던 시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얼추 형태에 맞추어 써 내려갔다.

상징과 은유, 음률을 맞춰본다.

제법 그럴듯하게 썼다고 생각했지만, 교수님의 눈에는 한참 모자란 '시'다.

묘사가 부족하고, '나는'을 줄여보세요.

옙,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시수업을 듣게 된 이유다.

누군가에게 내가 쓴 글을 평가받고 수정해 보는 것.

혼자만 쓰는 글은 자기만의 색을 담기에 수월하지만, 읽는 사람의 눈을 잊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그런 것을 경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싶어 들은 수업이기에 교수님의 권고사항이 나에게 참 고마운 일이다.

4시간이 결코 길지 않다.

이런 수업 10번도 더 받을 수 있겠어.

배움의 길은 끝이 없구나.

숙제를 받아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갑자기 쓰게 된 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이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서사가 거대하게 느껴져서.

인생에 굴곡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만큼의 이야기가 나에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일단 시작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의 관심사, 나의 이야기.

다른 사람들이 자기만의 서사를 이야기할 때, 나는 금방 쓴 나의 시를 발표했다.

흔한 이야기라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재주가 나에게 있는 것이다.

글을 읽고 나서 끝이 아니라 그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힘을 기르고 싶다.

지금 배우는 시를 통해서 더 성장해 나가야지.

다른 사람들의 시가 궁금하다.

웅장한 서사가 어떻게 시에 담길지, 그리고 내가 쓴 시가 또 어떻게 성장할지도.

첫 수업에 벌써부터 시와 사랑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나의 서사도 언젠가 거대한 쓰나미가 될지도. 아마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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