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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refoot Traveller Oct 16. 2024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길 때

혁명의 꿈도 잊게 만든 아름다움과의 조우

멕시코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에서 유유자적배낭여행객이 되어 오래간만에 만나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맛보며 지내는 꿀맛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산크리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티틀란 호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 초기에 읽었던 책이 “체 게바라 평전”이었는데, 그중 “이곳에서는 혁명가로서의 꿈도 잊게 만든다”라는 문구가 나온 아티틀란 호수를 언제 한번 가봐야지..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우면 혁명가로써의 꿈을  포기하고 싶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컸기 때문이다.


마침 숙소에서 연계하여 빠나하첼로 이동할 수 있는 작은 벤이 있어 예약하고, 후다닥 꿈꾸던 그곳으로 향하였다. 그 당시 멕시코-과테말라 국경에는 정말 범죄가 많아 쫄보인 내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내가 산크리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내 인생에서 또다시 아티틀란 호수엘 갈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 너무나도 두려운 마음이 컸지만, 여행자 벤에 몸을 실었다.


벤은 우리네 옛날 그레이스 같은 봉고였는데, 목받침 없이 거의 7시간가량 정원 꽉 차게 앉아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을 달려 어스름해질 때 즈음 과테말라 빠나하첼에 도착했다.


중간중간 국경을 넘고, 화장실도 가고, 벤도 갈아타고, 그럴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해 왔다. 내가 여행하던 2014년에는 한창 범죄가 많았는데, 특히 차 한 대를  통째로 앞뒤로 둘러싸고 모두 내리게 한 뒤 귀중품을 모두 가져가고, 운나쁘면 사람도 끌려가는 그런 종류의 범죄 소식들을 꽤나 자주 접할 수 있었던 때라 숙소에 도착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매 순간 긴장 그 자체였다.


그렇게 늦은 밤 무사히 빠나하첼의 숙소에 도착하였고, 한껏 긴장했던  몸을 녹이며 꿀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뜨자마자 그토록 가고 싶었던 아티틀란 호수로 출발~


내가 그렇게  기대했던 아티틀란 호수는 “호수”라는 표현이 빈약할 정도로 넓고 광대했다. 물결이 출렁이는 모습은 마치 바닷가의 파도 같아 보이기도 했고, 짙은 푸른색을 띠는 물색깔은 그 깊이를 상상할 수 없어 무섭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드넓은 호수 위를  작은 보트를 타고 호수를 둘러싼 마을들을 방문하는 것은 꽤 독특하고 재미난 경험이었다.


한낮 카페에 앉아 조용히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아티틀란 호수를 바라보며 체 게바라가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던 호수의 아름다움을 상상했다. 이곳에  오기 위해 산 넘고, 강 건넜던 긴긴 여정을 돌아보며 체 게바라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겁 많은 쫄보인 나의 두려움을 넘어선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이 스토리를 같이 일하는 부장님께 말씀드렸을 때,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셨네요.”라고 반응하셨는데,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실행하는 Doer의 기질이 아마도 나의 두려움을 꾹꾹 누르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


때로는 나의 호기심이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큰 원동력이 되고, 그것이 내 남은 삶에 큰  거름으로, 오랜 술안주로 회자되며 인생에 즐거움 한 스푼 더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내가 존재는 해야하니 나의 안전은 보장되어야 하고^^;;)


그래서 오늘도, 일상의 무료함을 넘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보려고 눈알을 또르르 굴려본다. 그 호기심은 나를 어떤 세상으로 데려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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