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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마주하는 자세

by 쓰는교사 정쌤

고등학생 시절, 하교하면서 화단을 지나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엎어져 있다가 일어났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만 했다. 근처에 친구가 있었던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넘어져서 창피한 마음에 한참을 엎드려 있으면서 창피함이 더 커졌던 느낌을 잊지 못한다. 그 이후부터는 넘어지면 최대한 빨리 일어나서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자리를 피한다. 넘어졌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빠르게 대응하는 게 창피함을 느낄 새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살면서 날마다 작은 성공을 하기도 하지만 작은 실패를 마주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일도 있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 자녀를 키우면서 일어나는 일들 등 너무 많은 관계 속에서 실패를 마주한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마주한 실패도 있지만 열심히 해도 마주하게 되는 실패도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이 컸던 실패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실패처럼 보이던 것이 있었지만 그게 과연 실패였나 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1학년 마치고 휴학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1년을 학교 밖에서 지내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복학 후에 오히려 공부에 더 열중하는 계기가 되어 졸업할 때 학점이 꽤 좋았다. 몇 년 전 몸과 마음의 병으로 병휴직을 하고 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하게 되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속의 나는 견뎌내기 위해 하루하루 힘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오히려 그 시간이 있었기에 마음의 평안을 최고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실패는 짧은 시간에서 보면 실패지만 긴 시간을 보면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일어난 퀘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주하게 되는 실패들이 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앞에 일어난 그 일을 인정하는 것이다. '넘어졌구나', '떨어졌구나', '병에 걸렸구나', '일이 잘못되었구나'라고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수많은 실패는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 공부를 해도 시험을 못 볼 수 있고,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도 공개수업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업무를 열심히 했어도 빠트린 게 있을 수 있고, 돈을 잘 벌고자 한 일이 잘 안 될 수도 있고, 교통 규칙을 잘 지키고 운전해도 교통사고가 날 수 있고, 건강을 챙긴다고 살았지만 암에 걸릴 수도 있고, 자녀를 잘 키운다고 노심초사 걱정하고 애쓰며 살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패를 인정할 때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넘어진 것을 인지하고 벌떡 일어나 걸어가며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내가 할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실패를 마주하는 자세다.


지나영 작가가 의사 생활을 하며 원인 모를 병으로 아파서 한참 힘든 시간을 보낼 때 한 미국 친구가 안타까워하며 열심히 살고 다른 사람을 챙기는데 애쓰던 네가 병에 걸린 게 너무 불공평하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이때 작가는 “고마워. 근데 너무 걱정하지 마. 난 이 레몬들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테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마음이 흐르는 대로』-지나영 지음, 다산북스)


시기만 한 레몬을 달콤하고 맛있는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것, 이게 실패를 마주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넘어질 수 있다. 못할 수도 있다. 아플 수도 있다. 그 순간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인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시큼 씁쓸한 레몬의 맛을 인정하고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기 위해 긍정 회로를 돌려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여태까지 수많은 실패를 그렇게 지나왔고 또 다른 실패와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론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힘든 시간도 결국엔 지나간다는 것을 수많은 실패를 마주하며 배웠다. 그리고 힘들었던 만큼 더 단단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물론 마음이 단단해져도 실패를 마주하는 처음은 아프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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