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곡점, 수학에서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위의 점을 말한다. 인생은 수많은 희로애락을 오가며 살기에 직선이라기보다는 곡선에 가깝기에 인생에도 변곡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2006년부터 시작한 교직 인생의 변곡점이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던 2022년이었다. 아프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내가 날마다 했던 일은 책을 읽고 책을 필사하고, 일기를 쓰고 걷는 일뿐이었다.
남편이 회사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나면, 홀로 남겨진 나와 마주했다. 햇살 좋은 아침, 창가에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도 밝고 찬란했지만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차올랐다. 그동안의 내 삶이 부정되는 느낌, 내가 했던 생각들이 옳지 않았던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하는 생각들이 내 속에 가득 찼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의심, 자기 검열은 날마다 내 생각을 먹고 자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 생각의 먹이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면서 더 많은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장들 사이를 걸으며 끌림이 있는 책은 모두 빌렸고 가만히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책을 읽고 필사하고 걸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일어나서 일기를 썼다.
처음에는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내 생각을 한없이 써 내려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못할, 나조차도 다시 꺼내보기 힘들 일기였다. 내가 겪었던 일들, 그때의 감정들을 모두 지면 위에 쏟아내고 나면 그날을 살아갈 마음이 살짝 솟아올랐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며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난 빈집을 청소하고 공원으로 나갔다. 생각 없이 걷다 보면 1-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햇살에 뽀송뽀송 마른 내 마음이 눅눅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와서 책을 읽었다. 책 속의 좋은 구절을 필사하며 블로그에 올리기를 날마다 반복했다.
읽고 쓰고 걸으면서 내 안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 생긴 부정적 생각들의 회로는 조금씩 차단되었다. 새 길이 뚫렸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그리고 그럴 때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겪게 된다.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외부의 삶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 안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때 수없이 되뇌던 기도문이 있다. 니버의 기도문이다.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니버의 기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생각하니 내 삶이 조금 가지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읽고 쓰고 걷는 단순한 삶이 내면의 빈 구멍을 채우면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내 이야기를 바깥으로 꺼낼 때마다 가슴이 칼에 찔린 듯 아프기만 했는데 어느 날부터 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말할 수 있으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라는 말이 더 이상 나에겐 책 속의 글이 아닌 일상에서 경험으로 얻게 된 지혜였다.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던 날, 내 안에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그것은 멀미와도 같았다. 이유 모를 감정이 내 안에서 일어나더니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떠올랐다. 글을 쓰고 싶다고?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데? 정말 이런 나에게 내가 놀랐다.
아프고 나서 나를 꽁꽁 숨기며 살고 싶었던 나였는데 내 글을 쓰고 싶다니. 그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싶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주체할 수 없었고 그렇게 나는 블로그에 '나는 무엇이 쓰고 싶기에...'라며 그 마음을 끄집어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여전히 나는 내 안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며 글을 쓰고 있다. 비록 블로그와 브런치의 내 공간에서만 쓰는 글이지만 내 글은 누군가를 향하고 있다. 내 안에 뿌려진 수많은 점들을 이어가며 쓴 글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