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인지 보려고 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맞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꾸미는 것은 아닌지, 내가 원하지도 않는 것을 남들이 좋다고 하니 원하는지, 내 마음에서 우러나 좋아하는지, 내가 행하고 있는 것들과 내 마음 상태를 살피면서 문득문득 괜찮은지를 확인한다.
그러다 부침이 생기는 일은 왜 그런지 살펴본다. 내 본성을 어기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에 걸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나를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두고 싶은 마음으로 살펴보고 나면 무엇이 내 안에서 불순물이 되어 휘젓고 다녔는지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었구나. 그래 그 마음 이해해. 하지만 잘 보이려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 네가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까. 굳이 그 사람에게 더 잘 보이려는 태도는 좀 그렇게 보이는걸. 그냥 자연스럽게 해.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하여 말을 하고 네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더 자세히 알려줘. 그럼 그도 만족할 거야. 더 포장하지 말자.’
대개 이런 말들은 교사로서 학부모와 상담할 때나 관리자와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할 때 나온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잘하고 있다’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기에 이내 내 안의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대처한다. 그냥 내가 하는 교육의 방식, 일의 방식으로 부침이 없게 해 나갈 뿐이다.
내 마음에 걸림이 없는 상태, 내가 원하는 궁극적 상태이다.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함에 있어서 생기는 어려움은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한다. 기꺼이 하기에 힘들어도 그냥 하는 일이 된다. 귀한 것들은 쉽게 얻기 힘든 것이니까 더욱 정성을 들여서 하기도 한다. 남들이 하니까, 또는 교사라면 해야 한다고 하니까, 관성적으로 해왔던 일이니까 등의 외부의 잣대로 생각 없이 무턱대고 하기보다는 ‘내가 왜 하고 싶은지’를 많이 생각한다.
정아의 작가의 『엄마의 독서』를 다시 읽다가 내 마음에 들어온 문장이 요즘의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안다.
내가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한번 '앎'이 일어나면,
이전의 상태로는 절대 돌아가지 못한다.
또한 나는 알고 있다.
변화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변모해 가는
일상의 순간들에서 온다는 것을,
오십 보와 백 보는 결코 같지 않으며
오십 보보다 백 보가 더 낫다는 것을.‘
『엄마의 독서』- 정아은 지음, 한겨레 출판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제시한다. 빨간 약은 혼돈스럽고 고통스러운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 파란 약은 기억을 잊고 질서 있는 세계 속에서 안온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한다.
정아은 작가의 글을 보면서, 진실을 마주하는 네오의 빨간 약을 생각했다. 앎이 일어나면 절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빨간 약을 먹은 후의 삶은 같은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같지 않다. 외면의 모습이 비슷해 보일지라도 내면에서는 태풍이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태풍이 휘몰아쳤음을, 그 안의 온 세상이 뒤집혀 생태계가 변했음을 누군가에게 알리 필요는 없다. 조용히 내 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내 세계를 살아가면 된다. 한 번에 내 세계를 뒤집어 놓은 앎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 한 번으로 내 삶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뒤집힌 내 세계가 다시 세워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루하루 성실하게 쌓아 올려 가는 것뿐이다. 꾸준히 쌓아 올린 날들이 많아지면 내 안의 변화는 밖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의도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