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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는 자의 글쓰기

by 쓰는교사 정쌤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있기는 한가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냥 글이 아닌 책을 염두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글을 쓰면서도 글이 부족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책 읽는 것이 좋고 내 생각이나 감정,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쓰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지만 이것이 책이 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어쩌면 내 글은 브런치와 블로그에 공유되고 있으니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함께. 꼭 틀 안에 가둬서 책으로 나와야 그 값이 인정이 될까 싶은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책이 여우의 신포도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며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지? 생각해 본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것은 내가 일상에서 겪은 일들로 인해 내 안에 일어난 변화를 쓰고 싶어 한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의 변화, 알아차림과 깨달음 같은 것들을 글로 쓰고 싶다. 어쩌면 그것은 기록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즐겁게 읽었다. 나의 기록도 그렇게 하다 보면 책이 될까 하는 기대감도 함께 가지면서.


자기 경영 노트 선생님들과의 소모임 중 하나인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30일 동안 글쓰기를 하면서 20일 정도는 하루하루 떠오르는 일화와 독서를 통해 느꼈던 점들을 글로 썼다. 그러면서 25일 차가 되니 앞에 쓴 글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쓰고자 하는 것들이 있긴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목차를 짜서 한 꼭지씩 글을 쓰겠다고도 했는데 나는 처음부터 목차 없이 내 안에서 떠오르는 글감을 잡아서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나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 잘 모르니 그날그날 떠오르는 생각과 책들로 내 이야기들을 만나 보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20일이 지나니 계속 같은 이야기의 반복인가 싶기도 하고 어느 순간 내가 원하지 않는 설득하는 글을 쓰고 있기에 잠시 멈추고 나를 들여다보았다.


얼마 전 <최성운의 사고실험>에서 런던 베이글 뮤지엄 대표인 료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다. 료 작가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을 열기 전 5-6년 정도를 직접 빵을 굽고 커피를 만들고 메뉴판을 만들어 기록으로 계속 남겼다고 한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기가 하는 것들을 계속했다고 한다. 료 작가는 트렌드를 쫓으려고 한 적이 없이 자신을 표현했고 그것들이 꾸준했고 그래서 자기만의 스타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것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 상당히 대중적이어서 오히려 사랑받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첫 번째 소비자가 되어서 나는 뭘 하고 싶은지, 어디서 일하고 싶지? 그런 것을 계속 질문하면서 내가 원하는 환경을 내가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해 왔다고 했다. 그 타깃이 소비자가 아닌 자신이었고,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인풋을 하면 아웃풋을 많이 해내려고 했고 그것들이 모아져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되고 책이 되었다는 료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료 작가야말로 『데미안』에 나오는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그것'을 살아보기 위해 노력하며 그것을 아웃풋 하며 살아온 듯했다. 런던 베이글이 성공했기에, 그도 그의 책도 조명이 되었지만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료 작가는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본인의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삶, 내가 원하는 삶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들이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서 하는 것들을 원한다. 이어령 교수는 이 삶을 화문석 짜는 삶이라고 이야기했다.

<'정해진 대로 살면' 그게 정말 행복일까? 아니야, 가짜 행복이네. 길 잃은 양이 된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큰 감자와 작은 감자'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네. 화문석을 짜는 일이야. 돈을 받는 노동이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있고 자기만의 성취의 기준이 있어. 그때 비로소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는 거야. 예술가가 되는 거야. 노동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하고 있는 거야.

자, 무문석 짤래? 화문석 짤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지음, 열림원


책은 내가 만들어낸 무늬들을 담는 그릇이다. 언젠가 료 작가처럼 책을 내게 되는 날, 나 스스로 독자가 되어 내 글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 4-5년 동안 땅속으로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는 모소대나무처럼 내 글도 나를 충분히 채워주고 단단하게 살게 해주는 일을 여러 해 동안 충분히 해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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