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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Apr 07. 2024

<프롤로그> 30대 중반에 시작한 연애

30대 INFJ와 ESTP의 연애 프롤로그.


30대 INFJ와 ESTP의 연애


곱슬머리의 그와 처음 함께 본 벚꽃. 장소는 일본 신주쿠 교엔.


내 남자친구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네가 날 좋아하게 만들었잖아”라고 무려 나에게 고백할 때 말할 수 있는 배짱, 너무나 솔직해서 위험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것조차 매력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말솜씨, ‘선빵’을 날리듯 첫 만남 때부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가감 없이 드러내고, 감당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듯한 태도, 그러면서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는 생각해 놓는 치밀함. 나에게는 무조건 잘하겠다고 말하는 완벽함.


태슬컷 단발을 한 나보다 머리가 아주 조금 더 길다. 파마해서 곱슬곱슬한 머리칼은 어찌나 멋있는지! 눈과 머리카락은 일본 배우 히로스에 료코처럼 갈색빛이어서 오묘하고 손톱은 반들반들한 아몬드 같다. 언뜻 보면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사나워 보이지만 서로의 눈을 지그시 보고 있자니 쌍꺼풀 라인과 오밀조밀하게 조화를 이루어서 착하기 그지없는 눈매다. 웃을 때는 웃어서 예뻐, 냅다 화낼 때는 그것도 사랑스러워, 아이 같이 고집부릴 때도 어른스럽게 조언할 때도 소중해, 손도 예뻐, 발도 예뻐(?), 이러다가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의 구 씨처럼 ‘추앙’이라도 할 판이다.


머릿속은 곱슬머리인 그의 생각으로 온통 채워져 있다. 보들보들, 두둥실. 24시간, 아니, 하루가 48시간이어도 종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머릿속 연애 세포가 폭발하다 못해 활화산의 용암처럼 뜨겁게 솟구치는 연애 3개월 차. 짧은 연애 기간임에도, 삼십 대라는 아무렇지 않고 싶지만 아무렇지 않게 되는 나이 때문에 우리는 빠르게 집, 차, 부모님 소개… 현실적인 이야기를 꽤 많이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현실적인 과제도 무척 중요하다. 현실적인 문제를 실례가 될까 봐 생각만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와 달리 곱슬머리의 그는 아주 직접적이어서 감사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와 하늘 같은 것들을 이야기할 때 가장 기쁨으로 차오른다.


오늘 하늘의 색은 너무 옅더라, 미세 먼지가 적은 일본 도쿄의 하늘은 훨씬 푸르러서 기분이 좋을 텐데. 오늘 아침에 꽃샘추위를 숨기고 선뜻 다가온 봄에 관한 시를 봤어. 너한테 말하고 싶었는데 별로 관심 없어 할까 싶어 말하지 못했어. 우리는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무렵에 만났어도 사랑했을 거야. 오늘 하루 네 생각으로 마음의 파도가 심각하게 출렁거렸어. 어제 방문한 목욕탕에서 목욕탕 아주머니가 너무나 친절하셨고 나는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 곳보다 그곳에서 안정감을 느꼈어. 니체가 말했어,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대. 이 말에 난 구원받았어…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반짝반짝, 반들반들. 진하고 무거운 향이 나는 향수, 시티팝처럼 멜로디가 감미로운 음악, 부유한 젊은 층이 사는 동네, 비싼 외제 차, 브랜드를 알 수 있는 옷, 추상적인 돈의 추이를 가시화해서 나타낸 비트코인. 반짝반짝하고 반들반들해서 좋아 보이거나, 비싸 보이거나, 돈을 꽤 들여야 하는 것들. 이제 겨우 연애 3개월 차인 새내기 여자가 보기에 곱슬머리의 그는 피상적인 것들을 좋아했다. 곱슬머리의 그를 언어로 나타내기에 아직 데이터가 풍성하지는 않지만.


어느 날 세계 평화를 위해 이십, 삼십 대에 시간을 쏟은 저자의 책을 읽었더랬다. 언제나 곱슬머리의 그를 생각하는 나는 이 책의 저자와 그의 성격이 양극단에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너무나 원대해서 어찌 보면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꿈을 꾸던 저자와 눈에 보이는 날 것의, 현실적인 꿈을 꾸는 곱슬머리의 그는 달라 보였다.


어찌 보면 단순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보고, 말하니까. MBTI에서 S와 N, T와 F 간 대화가 쉽지 않다는 밈을 꽤 보았다. 귀로 듣고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여 말한 ST의 말에 NF가 상처받곤 하는 듯하다. 사실 F가 내뱉은 말은 당장 표현하지 않았을 뿐(못했을 뿐) 말보다 더 깊은 생각과 숨은 뜻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고생스럽게 생각하고(겪고) 말했으니 일단 자신이 한 말에 동조해 주고 감싸주기를 바라는 건데.


화끈한 성격답게 곱슬머리의 그는 하고 싶은 일, 해주고 싶은 일을 일단 말해놓고 본다. 오죽하면 내가 일본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바로 다음 일본 여행 계획을 말했다. 나는 그와 함께하며 행복하지만 가끔 생각의 브레이크를 걸어주어야겠다고 판단했다.


곱슬머리 그의 버킷리스트는 구체화될 때도 있고, 흐지부지될 때도 있다. 일련의 과정을 보거나 과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꼼꼼하면서도 허술하게 느껴졌다. 입 밖으로 내뱉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뿐 내뱉은 말은 억지로라도 지키려고 하는 나와는 달랐다.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일단 ‘저질러 놓고’ 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점이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겉모습 뒤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이 가끔 궁금해진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인 슬픔, 불행함, 당황스러움, 부끄러움, 불안함 같은 것들… 하지만 곱슬머리의 그는 정작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을 듯하다. 마이너스적인 감정인 데다가 반짝반짝하지 않고, 어쨌든 별로잖아.


수많은 새로운 감정의 뭉툭한 바늘이 상냥하게 몸속을 파고들 듯 처음 곱슬머리의 그를 만났을 때 모든 점이 신기하고 강하게 끌렸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이렇게나 떠오를 수 있나 싶어질 정도로 머릿속에 가득 차서 두둥실 떠다녔다. 보들보들, 두둥실. 비슷한 사람과만 만나던 폐쇄적인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우리.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곱슬머리의 그는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나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준다. 관심사가 아니면 재미없을 법도 한데 들어주고 해결책까지 말해주는 꼼꼼함을 보인다.


이렇게 아직 곱슬머리의 그를 잘 모르지만, 그도 나를 잘 모르지만 그렇기에 서로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속삭이고 알아가는 시간이 쌓여간다.


3월 6일 자 일기는 이렇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하니까 막 불안하고 네가 날 더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


불안하고, 미래를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지금 우리는 함께다.


-프리랜서 김연경


※ MBTI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MBTI를 쓴 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끌기 위함일 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30대연애 #30대 #도쿄 #번역 #MBTI #INFJ여자 #ESTP남자


블로그도 있어요: https://blog.naver.com/inpikaaa

인스타그램도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translator_yeonkyoung_8000/

두 번째로 함께 본 벚꽃. 장소는 한국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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