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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이후 일기교육

[일기에 관한 긴듯 짧은 글들]

초등학교 이후에도

일기교육이 있으면 좋겠다.

(이미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들어본 적은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 아니 대학교에서도

일기수업이 교양과목으로 있으면 좋겠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관찰하고 묘사하여

기록하는 방법을 세심히 가르쳐주는

그런 일기수업을 듣고 싶다. 


특히 관찰능력을 기르는 것이면 좋겠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대화를 관찰하고

팩트와 핵심을 제대로 기록하는 훈련 말이다. 


내 감정과 생각 등 보이지 않는 

내면의 대화나 행동 또한 마찬가지로 

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잘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오해나 누락으로 인한 문제는

그냥 해결되기도 하니 말이다.


예전 직장에서

나는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많이 했었다.


그때 느낀 것인데

초등학생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른들은 있는 그대로 관찰하지 못해서

때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쌓아온 자신의 경험틀을

거쳐서 나오는 해석, 

알게 모르게 축적된 편견을 

거쳐서 나오는 해석 등


어떤 필터링을 한번 거친 

해석이 너무 빠를 때가 있다.


단순한 가상의 예를 하나 들자면,

“제가 있는 쪽을 3번 바라봤어요”보다는

“그 사람은 수시로 저의 눈치를 봐요”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짧은 순간에 그런 해석을 처리하는

우리 뇌의 능력은 놀랍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더 쉬운데,

우리 뇌는 더 어려운 걸 더 빨리 해낸다.


물론 해석이 빠르기에,

눈치가 빠르기에,

우리는 살아남기도 하고

번영하기도 한다.


정확하고도 공정한 판단,

효율적이고 타당한 판단을

그리 순식간에 해낼 수 있다면

능력자로 칭송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빠르기에

또 때로는 불필요한 오해를 하고

걱정과 불안을 떠안기도 하는 것이다.


순전한 관찰인가,

신속한 해석인가.

상황마다 뭐가 더 이득이 될지

모르지만,


뭔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면

속도를 늦추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일기를 쓰며

그 작업을 한다.

순간의 해석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고 보면 일기수업은

차분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침착해지는 시간이다. 

(유명 유튜버 한분이 떠오른다)


'빨리빨리'의 한국인에게 

'차분히'라는 보충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앞선 글에서 상상해 보았던

일기사회는 '침착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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