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맞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엄마에게 맞은 기억이 꽤 있습니다. 파리채로도 맞고, 손바닥으로 맞고, 빗자루로도 맞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 때문에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얼마나 아팠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무서웠던 얼굴과 공포의 감정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이렇게 조그만 아이를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우리 엄마는 그렇게 어린 나를 때리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잘못하면 뭐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무섭게 야단을 치셨을까? 매로 바로 잡아야 할 만큼 나는 무슨 잘못을 했었을까?’
엄마께 직접적으로 여쭈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엄마도 무엇 때문에 매를 드셨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그 시대는 ‘사랑의 매’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였으니, 매를 드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어릴 때, 저와 남편의 훈육방식은 ‘생각의자’였습니다.
잘못된 행동에 3번까지 경고를 하고, 그러고도 그 행동이 계속 이어지면, 정해진 장소에 있는 의자에 가서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자기 나이 시간만큼 앉아있게 했습니다. 4살이면 4분, 5살이면 5분 정도.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어떤 날은 저와 같이, 또 어떤 날은 혼자 방에 있었습니다.
화난 엄마가 밖에 있고, 혼자 그 시간을 버텨야 했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때의 미숙한 저는 ‘생각의자’의 진정한 의도를 몰랐습니다. 그냥 아이에게 행동을 멈추게 하고, 벌을 주는 방법으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청소년이 된 아이가 ‘생각의자’하면 지금까지 기억하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의자로 가기 싫다고 하는데, 아빠가 힘으로 자기를 안고 갔던 모습입니다. 그 과정에서 가기 싫다며 발버둥을 치다 아빠 안경을 쳐서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아이도, 저희 부부도, 무엇 때문에 아이가 생각의자로 그렇게 끌려(?) 갔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이가 말하는 그 장면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4~5살 때 아빠와의 일을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생각의자’는 힘이자 공포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 엄마에게 맞았던 ‘사랑의 매’와 같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사실을 ‘생각의자’ 훈육법을 사용하고 2~3년 정도 후에 알아차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제가 사용한 ‘생각의자’ 역시 아이에게 공포로, 폭력으로 다가갔다는 것을 안 순간, 얼마나 후회하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생각의자’의 진정한 의도는 아이에게 반성의 시간을 가지라고 벌을 주는 것이 아닌, 부모, 아이 모두에게 감정을 조율한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아이보다 부모의 감정을 조율하여 이성적으로 행동할 시간을 가지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이가 장난감을 던졌다고 상상해 보세요. 처음에 부모는 던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줍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부모의 말을 무시하고 장난감을 또 던집니다. 그때부터 부모의 감정은 부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하며 커진 목소리로 다시 주의를 주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가 듣지 않고 똑같은 행동을 다시 한다면, 그때부터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보다 올라온 나의 화 때문에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그 순간 소리를 치는 부모의 뇌도, 그런 부모에게 혼나는 아이의 뇌도 감정의 홍수 상태에 빠지며 이성적인 사고를 멈추게 됩니다. 부모는 감정적으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아이는 그런 부모를 보며 겁에 질리고 공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기 전에 이런 부정적 감정을 조율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때 좋은 방법이 바로 ‘생각의자’입니다. 잠깐 멈추고 나의 숨을 고르고, 이성을 회복할 시간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다시 ‘생각의자’를 사용한다면, 의자 두 개를 준비해서 아이 앞에 마주 앉고 싶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고 심호흡을 하며 이렇게 말을 건넬 것입니다.
"지금 우리 둘 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여기서 조금 앉아있다가 이야기하자. 네 마음이 좀 괜찮아지면 엄마한테 이야기해 줘. 엄마도 괜찮아지면 이야기해 줄게."
그렇게 제 감정을 먼저 진정시킨 후, 아이의 감정과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의자’는 벌을 받는 장소가 아니라, 이렇게 화가 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를 진정시키는 장소라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아이도 자신의 화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배우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속상해지면 스스로 가서 그 의자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켰을 것 같습니다.
책《평화의 원을 만드는 가족들》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엄마가 자꾸 말썽을 부리는 6살 아들에게 밖에 나가서 맞을 회초리를 찾아오라고 시켰습니다. 밖에 나간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되돌아온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엄마,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회초리를 찾지 못했어요. 그 대신에 제게 던질 수 있는 돌을 가져왔어요.”
아이에게는 회초리이건 돌이건 도구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때린다는 것 자체는 같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로 가장했을 뿐, 아이에게는 같은 폭력일 뿐입니다.
훈육은 아이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인지하고, 자기 조절을 통해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힘과 폭력을 사용한 훈육은 즉각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 스스로 자신을 조절하는 것을 훈련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자신을 혼내는 어른이 있을 때 잠시 그 행동을 멈출 뿐입니다.
아이를 훈육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세요. 아이의 문제 행동을 고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내 안에 있는 짜증과 화를 쏟아내려 하는 건지.
그리고 아이의 입장에서 왜 그 행동을 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은 이유가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아요. 그것이 잘못된 행동일지언정 그 행동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면, 무작정 아이를 혼부터 내게 되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 준 후,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이야기 하세요. 자신의 마음을 공감받은 아이는, 부모의 말에 마음을 열고 경청하게 됩니다. 사실 마음을 공감받은 아이들은 부모가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고칠 준비를 합니다.
이제까지 위협하고 소리치고 벌을 주는 훈육을 하셨다면, 오늘부터 마음을 연결하는 훈육 시작해보지 않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