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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맘쌤 Aug 28. 2024

나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예요

“나는 성격이 개떡 같아요!”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상담실에 와서 한 말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할머니와 엄마가 그렇게 말하셨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화를 참을 수 있는데, 집에서는 참기 힘들다며, 자기가 화를 내니 할머니와 엄마가 성격이 개떡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도 진짜 네 성격이 그런 것 같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아이는 스스로는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변 어른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투영해서 보는 아이들은 이 말을 점점 믿게 되어버립니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아상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한 엄마가 아이에게 화가 나서 


"그렇게 말을 안 들으면 보육원에 데려다줄 거야", 

"난 더 이상 네 엄마 안 해."


라는 말을 했다며 후회를 했습니다.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인 줄 아는데도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답니다. 아이는 이 말에 상처를 입었고, 그 후로 엄마가 화를 내면 자신을 보육원에 데리고 갈 거냐고 되묻는다고 합니다. 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 마음 안에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녀 또한 어릴 때 엄마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다 너 때문이야. 내가 너를 괜히 낳았어. 너만 없었으면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나면, 그녀에게 매번 했던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언제든 엄마는 자신을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엄마가 되어 자신이 느꼈던 그 두려움을 그대로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었습니다. 잠재의식에 각인되어 있던 엄마의 말들이, 내면의 상처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 부모에게 들었던 말들이 삶에 영향을 줍니다.     


제 아이는 어렸을 때, 사람을 처음 만나면 인사는커녕 제 뒤에 숨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급한 성격인 저로서는 아이가 참 많이 답답했습니다. 하루는 아이가 지인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예요.”


저는 아이가 자신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당한 아이로 자랐으면 했기 때문에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며칠 후에, 새로 이사 온 분을 쇼핑몰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아이가 그분을 처음 보던 날입니다. 역시나 아이는 그분을 보자 제 뒤로 숨었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대변하듯 그분에게 말을 했습니다.


“아이가 수줍음이 많아요.”


이 말을 내뱉으며 며칠 전 아이가 같은 말을 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많은 순간에 제가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요? 아이가 사람을 처음 만나고,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이를 대변하듯 매번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혹여나 아이가 인사를 못 하니 버릇이 없다고 생각할까 봐, 제가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게 될까 봐, 변명하듯 아이가 수줍음이 많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수줍음이 많은 아이로 생각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제가 수줍음이 많은 아이로 규정하고 그런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도 엄마인 제 시선으로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제 아이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란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로는 아이 기질을 공부한 전공자였어도 제 아이에게는 적용하지 못하는 서툰 엄마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했었지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쉽게 다가가지 못하거나, 새로운 장소에 가면 낯설어하며 잘 움직이려 하지 않는 아이들이 제 아이와 같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느린 기질의 아이들입니다.      


아이를 키즈카페에 데려갔는데, 다른 아이들과 놀지 못하고 엄마 옆에만 붙어있어 답답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쇼핑몰에 새로운 실내 놀이터가 생겨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미끄럼틀도 있고, 시소도 있고, 다리도 있어 다른 아이들이 재밌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아이는 가서 어울리지 못하고, 제 옆에서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답답했던 저는 아이 손을 잡고 놀이터 중앙으로 걸어가 아이만 두고 놀이터 가장자리로 나왔습니다. 거기에 있으면 혼자라도 미끄럼틀에 올라가거나 놀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때 두려워하며 저를 바라보던 아이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이에게 필요한 방식이 아닌 제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하려 했었습니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파악한 이후로, 아이에게 이전과 같은 방식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그전에 누구를 만날지 미리 알려주고 설명했습니다. 새로 어린이집을 가거나 할 때도 며칠은 옆에서 같이 있어 주었습니다.     


“사람마다 익숙해지고 친해지는 시간이 다 달라. 어떤 사람은 빨리 익숙해지고, 어떤 사람은 좀 천천히 익숙해지고 친해져. 너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필요할 수 있어. 괜찮아.”     


아이가 새로운 환경을 접할 때마다 해줬던 이야기입니다. 이런 기질의 아이들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도, 한 번 적응하면 오래 꾸준히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가진 강점이지요. 그런 강점들을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면 다른 아이들보다 적응이 느린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강점들을 생각하며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난 남들처럼 빠르게 가지는 못해도, 나만의 속도로 끝까지 갈 수는 있어!”     


제 아이가 12살 때 했던 말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속도를 존중해 주니, 아이도 자신의 속도를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아이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함이 있습니다. 이 고유함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지는 부모의 영향이 큽니다. 부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아이에게 비춰줄 것인지, 아니면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아이에게 비춰줄 것인지는 부모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비춘 모습으로 아이는 자신의 자아상을 만들어가고, 그 자아상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집니다.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자녀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넌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해.”

“있는 그대로의 네가 참 좋아.”     


오늘 자녀를 꼭 안아주며, 이 말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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