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기르면서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언제나 인내심을 최고로 꼽습니다.
그러면 부모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 또한 저는 인내심을 꼽습니다.
저희 아이는 9년 동안 홈스쿨을 했습니다. 인터넷 강의들과 책들을 많이 이용했지만, 대부분의 시간 제가 선생님이 되었지요.
아이와 수학 공부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수학 문제를 끙끙대고 있는 걸 지켜보면서, 이렇게 저렇게 풀면 되는데 왜 못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푸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고마워할 줄 알았던 아이가 고개를 들어 저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못 풀 것 같아서 자꾸 알려주는 거야?"
이 말을 듣고야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제가 신문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 와서 손으로 짚어가며 '이것은 뭐고, 저것은 뭐다'라며 자꾸 가르치고 간섭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제가 아이에게 한 행동이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공부를 할 때도 비슷했습니다. 아이에게 생각할 충분한 시간을 주며 기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는 약간의 힌트만을 원한 것인데, 저는 푸는 방법뿐 아니라 정답까지 알려주며 아이가 스스로 터득하고 발견하는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기다리지 못했던 걸까요? 아마도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거라는 불신과 한편으로는 풀더라도 그 문제를 다 풀 때까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는 걱정이 저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면 안 되는 이유는 없습니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것이니 아이에게 좋은 일입니다. 속도는 배움의 큰 적입니다. 정답만 맞추는 그런 공부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속도를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메타인지 학습법>의 작가 리사 손은 아이를 기다려 주는 시간은 아이를 향한 부모의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면, 성급하게 간섭하려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미숙하니 못할 거라며 믿지 못함이 아이를 기다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난 후, 저는 무조건 아이를 믿기로 다짐했습니다.
아이가 14살이 되었을 때, 농구를 배워보라고 제안했습니다. 홈스쿨을 하고 있어 단체생활의 경험이 적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 팀워크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던 아이가 수업을 듣고 다른 친구들과 농구를 하더니, 6개월 정도 후에 농구로 진로를 정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니 결심이 서면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농구로 진로를 결정할 때까지 아이는 1년 정도의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며 느꼈던 그 경험으로 아이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결정을 다그치기보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신을 위한 결정을 스스로 잘 내릴 거라는 아이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묵묵히 아이가 되었다 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믿음대로 아이는 스스로가 가장 행복한 결정을 했고, 자신이 결정했기에 그 목표를 향해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아이는 진로를 정한 후, 하루도 농구공을 안 만지고 잠든 날이 없었습니다. 레슨이 없는 날에도, 한여름에도, 땡볕에 나가 드리블을 하고 슛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검정고시를 봤고, 만점이라는 성적으로 통과해, 지금은 고등학교 엘리트 농구선수로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때까지 부모가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간섭하게 되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불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모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아이를 다그치고 혼내고 강요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불안을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하여 아이도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를 믿는다면 아이에게 필요한 시간만큼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기다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내 불안이 무엇인지, 아이에 대한 믿음이 어떤지 들여다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