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렸을 때, 작은 일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유독 많아진 저를 보면서 답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 작은 일에도 아이에게, 남편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가만히 앉아 이런 제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제 안에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아이뿐만 아니라 나이 드신 부모님들을 포함하여 돌봐야 할 대상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중이었습니다. 그즈음 남편도 회사에서 매우 힘들어하던 차라, 남편까지 잘 돌봐야 한다고 저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엄마, 아내, 딸, 며느리인 역할만 가득한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숨겨져 있던 저의 마음속 내면아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도 어릴 때 돌봄을 받고 싶었어. 먹고 입혀주는 거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등을 토닥여주고, 왜 슬프냐고, 왜 화가 났느냐고 물어봐 줬으면 했어. 말하고 싶었어. 내 마음을…. 내 상태를…. 내 일상을….’
저는 심리적 돌봄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며 자랐는데, 성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상태에 제 내면아이가 심술이 났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태를 살펴 가며, 어떠냐고 물어봐 주고, 알아서 필요한 것들을 살펴주는 제 모습에 억울함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돌보면 된다고 저에게 아무리 주문을 걸어도 잘 만족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고 그냥 마음대로 살라고 해도,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제 안의 생각이 그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릴 때 채워지지 않은 정서적 돌봄을 지금에 와서 부모님께 이야기한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들도 그렇게 양육을 받아왔으니 그렇게 기르셨다는 것을 압니다. 부모님도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임을 압니다. 그 시절만 해도 비바람 피할 집에, 굶지 않게 먹고, 따뜻하게 입을 옷이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한 시절을 살아오셨을 테니….
어느 날, 이런 욕구가 그대로 드러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많이 화가 났는데 엄마는 그런 저를 보며 한마디 묻지도 않고 지나쳐서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 이런 엄마의 모습에 화가 나서 제 방에 들어가 울었습니다. 울다 고함을 지르려는데 목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져 흐느껴 울었습니다. 꿈속에서 우는데 그 흐느낌이 잠결에 제 귀로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슬픈 상태로 꿈에서 깼습니다. 꿈에서조차 돌봄을 받지 못한 제가, 돌봄을 받고 싶었던 제가, 그대로 보여 일어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내면아이는 아직 저에게서조차 충분히 그 슬픔을 공감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돌본다는 것은 어른이 된 내가 내 속의 상처받은 그 내면아이를 먼저 충분히 공감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저는 그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제 안의 아이에게 위로를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힘들었지? 외로웠지? 얼마나 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니? 운다고 혼나는 것이 아니라 우는 이유를 물어봐 주고 위로받고 싶었지? 화가 나 인상을 쓴다고 혼나는 것이 아니라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화가 났다고 알아주길 원했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물어봐 주길 원했지? 진짜 아무도 너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꼈겠구나. 혼자 잘 살아남으려 엄청 애를 썼구나. 고생했네…. 고생했어….’
이런 위로를 저에게 건네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위로의 말들이 저에게 필요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이후로 이런 말뿐만 아니라, 저를 돌보기 위한 행동을 했습니다. 반신욕을 하며, 커피를 마시며, 산책을 하며 일부러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외식할 때도 다른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일까요? 그때부터 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돌봐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제 마음을 걱정해 주고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불편한 기색이 보이면, 옆에서 물어봐 주는 남편과 아이가 있고, 몇 달 만에 한 줄의 톡을 보내도 금방 그 마음을 읽어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거라며 이 반찬, 저 반찬 싸주시는 양가 어머님들이 있었고, 매일 저를 위해 기도해 주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돌봄의 욕구가 충족되니, 아이에게도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습니다.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이라는 제게 주어진 역할들이 마냥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이런 역할들을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제가 희생한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만 하려고 합니다. 저와 타인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하루하루 제 안을 깨고 나와 자유로워지는 느낌입니다. 어린 내면아이를 대면하고, 조금씩 제 안의 갈등을 해결해 가면서,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시선이 아니라 조금은 성숙한 어른의 시선으로 제 주변을, 부모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