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어찌어찌 완성된 식수 펌프
웰던프로젝트를 시작하고 1년이 조금 안되었을 때, 정말로 1,000만원이 모였다.
이 모금으로 만든 식수펌프로 콩고의 아이들이 물을 길어 올리는 사진을 받아 볼 땐 눈물이 났다. 으헝, 촌스러워, 이런 일로 울다니. 하지만 그 성취감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만큼 컸다. 성적도 별로에, 장학금도, 공모전에서 상 하나 못 받아본 내가 만든 결과물이라 더 신기하고 기특했던 것 같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형편없었다.
엽서를 판매해 돈을 모아보겠다고는 했지만 500원짜리 엽서를 만들어 천 만원을 만들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2만 장을 팔아야 했다.
그래도 처음엔 소소한 성과도 있었다. ‘삼원특수지’라는 종이회사에 연락해 '종이 후원 좀 해주십쇼-'하고 요청하는 메일을 썼다가 내가 찍은 사진들을 이 회사의 샘플 종이에 인쇄해서 쓸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종이를 후원 받아 우선 내 통장의 돈 13만원, $100 정도의 돈으로 엽서를 만들었더. 하지만, 홍대 플리마켓에 나가 한 달 동안 벌벌 떨며 판매한 첫 달 수익은 마이너스 10,000원이었다. (하필 연초에 시작해서 감기만 걸렸다...)
나의 작은 방 한 켠에 쌓인 엽서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옴마, 나 이거 살아있는 동안 모을 수 있을까? 아니, 저 엽서를 다 판다고 해서 모금이 되긴 할까? 역시 쓸데없는 짓을 시작한걸까? 지금이라도 그만두는게 나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미루다보니 일이 한 주, 한 달씩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흐지부지 끝난 일들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아, 앙대! ㅜ 이것도 늘어지지 않도록 데드라인을 정하자.’
되든 안되든 1년 안에는 프로젝트를 끝내기로 하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프로젝트 초기, 다음(Daum)의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만들어 이것저것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댓글을 달아준건 내 친구들 정도...? 조회수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가만 있는것보다는 낫다 하며 사부작사부작 써나갔다. 아직 SNS가 그리 발달하지 않은 때라 이 블로그가 이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전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페이퍼(Paper)라는 잡지에서 연락이 왔다. 예전에 페이퍼 바자회에서 사진을 팔아 기부했을 때 인터뷰를 했던 최승우 기자라는 분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웰던 프로젝트 이야기를 보고 연락 드렸어요. 페이퍼에 ‘레인보우 특공대’ 라는 코너가 있는데, 이런 작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고 저희 바자회에서 모은 돈을 후원해요. 인터뷰하시고 후원금도 받아가세요.”
옴마? 이게 웬일이야!?
이 모금을 떠올린 계기가 페이퍼 잡지의 바자회였는데, 이제 이곳에서 내가 기부한 돈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받게 된 것이었다.
“헛, 이걸 어떻게 알고 연락 주셨어요?”라고 묻자 “블로그 보고 알았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페이퍼 바자회에 참가했을 때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뭔가 썼으니까 연결이 된거 아닐까? 싶다.
이 외에도 이 블로그가 식수펌프를 만드는 데에 많은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도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든 다음에 “포털 메인에 저희 블로그 한 번만 소개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메일을 보낸게 효과가 컸다.
엽서를 팔다가 돈이 나가기만 하는걸 보고 무작정 플리마켓에서 엽서를 판매하는 건 무리겠다 싶어 ‘이런 사연이 있는 엽서가 있다고 여기저기 알려보자’ 라는 생각에 ‘제~발 한 번만 읽어 주십쇼’라는 마음을 담아 이곳저곳에 메일을 보내던 때였다.
열어보기도 힘들정도로 오그라드는, 누가 봐도 사회 초년생이 만든 어설픈 제안서였고, 물론 답장이 안 온 게 훠어얼씬 더 많았지만, 놀랍게도 대한항공과 Daum에서 답장이 왔다. 그 중 Daum에서는 아예 사무실로 불러서 미팅을 했고 (ㄷㄷ), 사회공헌 팀에서 “엽서 대신 ‘희망해’ 모금을 해 보면 어때요? 우리가 가진 온라인 모금 플랫폼인데, 메인 화면, 카페 등 이곳 저곳에 노출이 되도록 도와줄 테니 해 보세요”라고 제안을 줬다.
나중에 이 캠페인을 도와준 이유를 묻자 '아직 국내에서는 이런 아프리카, 우물 관련 모금이 없었어서요. 좋은 시도가 될것 같아요. '라는 대답이 돟아왔다.
아무튼 그 후 모금을 통해 한 달간 약 700만원에 가까운 돈이 모였다. 그렇다, 식수펌프 를 만든 돈의 절반 이상은 이 모금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1000만원을 모으려면 아직 부족했다. 그래서, 이 모금의 일부를 사용해 제품을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 웰던프로젝트의 처음 목표는 디자이너들의 홍보 겸 모금을 위한 엽서 판매였지만, 엽서로 남은 6개월 안에 나머지 돈을 모으는 아무리봐도 무리였다.
대신 각각의 디자인을 넣을 수 있으면 서 실용적이고 수익이 나는 물건을 찾다가 친환경의 메시지까지 갖춘 텀블러를 만들었고, 블로그와 신촌의 아름다운 가게 등 을 중심으로, 때로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판매했다. 어 모금으로 모은 돈으로 만든 텀블러이니 재고로 남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다 팔아야 한다는 부담이 정처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블로그에 글도 쓰게 만들었던것 같다. (* 언젠가 이 부담감과 책임감에 말할것 같은데, 이건 독이기도 했고, 약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블로그를 통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대학로 축제’를 기획하는 곳에서 “부스를 드릴 테니 텀블러를 판매 해보시면 어떨까요?” 라며 먼저 연락을 준 것이었다. 이 때는 감사하게도 판매를 도와주러 온 분들이 많았던 덕에 평소의 몇 배나 되는 텀블러를 판매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름다운 커피를 만난 것이 결정 적인 한 방이 되었다. ‘텀블러를 어떻게 알릴까’ 하고 축제 참가팀이 적힌 지도를 보며 방법을 찾던 중 이들의 이름을 발견했다. '처음 시한을 잡았던 1년이 얼마 안남았다, 되든 안되든 뭐라도 시도해보자'라는 생각에 이들의 부스에 찾아가 “저희 텀블러를 사서 이곳에 오시는 분들께 커피를 주시면 저희가 커피값을 지불할게요. 저희 텀블러 좀 소개해 주십쇼.”라는 제안을 했다.
사실 당시에는 그게 큰 홍보로 이어지는것 같지 않았는데, 축제가 끝나고 며칠 뒤, 아름다운 커피로부터 “우리도 웰던프로젝트와 같은 텀블러를 만들고 싶은데, 디 자인을 해 주실 수 있나요?”라며 연락이 왔다.
그리고 이 때 받은 작업비로 천 만원을 맞추며 욤비 토나 왕자의 나라 콩고민주 공화국에 식수펌프가 설치되었고, 아름다운 커피의 홍보 덕에 텀블러와 디자이너들은 웰던프로젝트 블로그보다 좀 더 많고 다양한 매체에 소개될 수 있었다.
근데 이렇게 잘 된 일만 축약해 써서 그렇지, 이 1년 간 매일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오기 부리다가 시간 낭비하 고 있는건 아닐까?’라며 매일 잠 못 잘 정도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었고, 실제로 이를 위해 미룬 일도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지금 하라고 한다면 그 때처럼 무대뽀로 하지 못할것 같지만, 배운것도 정말 많았다.
특히 이 우물 모금에서 가장 크게 배웠던것은 '시작의 중요성'이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특히 한 번도 해복 적이 없는 일을 실행할 때, 계획대로 되는 일은 잘 없다. 웰던프로젝트의 경우 처음 의도했던 ‘엽서 판매’를 통해 모은 돈은 전체 모금액의 1/10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계획대로 안되는걸 보면서 왜 안돼지? 를 생각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되게 할까?'하고 새로운 방법을 궁리해 나가다 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방법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했던 길들을 하나둘 알게되기 시작했다. 이것들은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아예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번에도 처음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일은 없다는걸 생각하며,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는 대신 일단 시작하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방법을 모색하기로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덕분인지 원래 내가 계획을 잘 못해서인지, 수정도 엄청 많이 하고, 쓰기 싫어져 멈추기도 하고, 중간에 이 글과는 흐름이 맞지 않는 다른 글을 쓰기도 했다.
처음 생각한것과 바뀐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맨처음 생각한것으로 돌아온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몇 년간 생각만 하던 때를 벗어나 하나씩 써나가니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더 나은 방법들이 보이는것 같기도 하다.
일단 끝까지 쓰는것만 생각하며 고쳐 나갈것 같은데, 달라지는게 보이더라도 어여삐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