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듯 보이지만 위험했던 아프리카 도시 단상
2010년 초, 웰던프로젝트 식수펌프 모금을 끝낸 뒤, 기부하기로 한 NGO에 돈을 보낸 뒤 높으신 분과 기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것으로 프로젝트에 이별을 고하고 미술 학교 포트폴리오 만드는 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함께 사진을 찍은 높으신 분께서 밥을 사주겠다 연락을 주셨다. 이런식으로 모금을 한 사람은 처음봤다며, 신기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으셨단다.
이를 계기로 아프리카에 짧게 다녀오게 되었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앞으로 뭘하고 싶어요?" 라는 질문에 "아프리카에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라고 대답한게 계기였다. 그 때 잘 봐주신 덕분에 NGO의 단기 캠페인 기획 일을 하나 맡게되었고, '아프리카에 직접 가서 좋은 영감을 얻어보라'는 덕담과 함께 아프리카 행 티켓을 얻었다.
내심 식수펌프를 만들게 된 콩고 민주공화국에 가는거라 생각했는데, 그곳은 당시 내전 중이라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라는 각서를 써도 갈 수 없다고 했다. 대신 가게 된 곳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잠비아' 로, 후원자 투어에 같이 가는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웰던 수학책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인천 -> 홍콩 ->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 잠비아 루사카
잠비아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3번 갈아탔다. 갈 때는 비행시간 17-18 시간, 대기 시간 4-5시간 정도 더해 도합 22시간 정도 걸렸다. 가는 데에 거의 하루가 걸린 셈. 남아공 공항에서는 아침밥을 먹었는데, 밥을 먹고난 뒤 직원들이 팁을 달라고 요구해왔다. 3달러 정도 줬더니 '너네 인간이 몇인데 이거밖에 안 주냐?'며 격렬하게 항의(?)를 해와서 조금 더 줬더니 그제서야 돈을 가져갔다. 격하네.
루사카 공항에 내렸을 때 가장 눈에 띄는건 중국은행을 비롯한 중국어 간판들. '아하, 중국인이 많이 오나보다' 생각은 들었는데, 검색해보니 아프리카 전반에 걸친 중국의 입김이 꽤 쎘다. 그 외에도 바클리즈 등의 외국 은행 간판이 보였고, 한 나라의 대표 공항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너무 소박한, 요하네스버그 공항의 반의 반도 안될것 같은 공항의 규모가 안타까웠다.
작은 공항 규모에 비해 일처리 속도는 느리고 어설펐다. 도착비자를 받는 데에 인당 100달러를 내야했는데, 공항 밖으로 나가는 데에 1시간은 걸렸던것 같다. 기다리다가 지루해서 입국심사대 밖으로 슬쩍 나갔지만 잡지도 않았다. 그저 다가와서는 "너네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만 물어볼 뿐. 이에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음? 어디지?' 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어렵게 비자를 받고 나오자 갑자기 한 무리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와 짐을 낚아채갔다. 차로 짐을 날라다 주는 사람들이었다. 공항이 워낙 작아 이동 거리는 극히 짧았다. 짐을 다 넣은 사내들은 일렬로 줄을 섰고,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내밀길래 담당자 분이 5달러 정도 되는 돈을 줬다. 그러자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살벌한 눈빛으로 "사람이 몇 인데 이것 밖에 안 주냐!" 며 더 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허어, 또야? 다행히 내 지갑에 1달러 짜리가 있어 돈을 더 줬고, 돈을 '탁!'하고 낚아챈 대장은 자신 앞에 줄을 선 남자들에게 돈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살벌함보다는 '돈을 벌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욱 기억에 남은 풍경이었다.
격한 신고식을 치른 뒤 시내로 가기는 길, 그리스 이민자 부부가 운영하는 그리스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밝은 표정의식당 주인들은 '이민 오길 잘했다, 그리스에 살 때보다 더 좋다.'며 잠비아에서의 삶에 만족감을 보였다.흠, 생각보다 여유로운 곳인가...? 싶었다.
다시 루사카 시내로 가는 길, 두꺼운 솜잠바를 입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 사이를 다니며 물건을 파는걸 보고 아니, 아프리카에서 솜잠바를? 8월인데? 하고 놀랐다. 하지만 알고보니 남반구에 위치한 잠비아의 8월은 겨울이었다. 하지만 밤이 추울뿐, 낮에는 한국의 늦여름 ~ 초가을 정도의 날씨였는데도 이들에게는 추운 날씨인듯 했다.
루사카 시내 쇼핑몰: 없는것은 없다, 돈이 없는게 문제일 뿐
루사카의 쇼핑몰은 언뜻 보기엔 평범했고 쇼핑몰에는 물건이 넘쳤다. 유럽의 슈퍼 체인 브랜드도 있고, 삼성 LG 등 한국 가전제품을 파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평온하지만은 않은 곳이었다. 주차장에는 ‘차 문을 잠그지 않으면 물건을 훔쳐가니 꼭 잠그라’는 안내판이 있었고, 소총을 든 경비들이 지키는 슈퍼 안 쪽의 환전소는 검은 쇠창살로 둘러싸여 있는게 살벌해보였다. 일단 며칠간 마실 물과 음료수를 산 뒤 환전을 하고 차로 돌아갔다.
달러를 환전해 바꿔온 잠비아 돈 콰차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달러를 많이 바꾼게 아닌데도 가방에 한 가득 들어갈 정도라 신기해서 돈다발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옆 나라 짐바브웨만큼은 아니지만 이곳도 환율이 썩 좋지 않은듯 했다. 그리고 돈을 잘 안 찍는지 꼬질꼬질한 돈을 쎄게 쥐면 바스라질것 같았고, 동전은 아예 없었다. 이후 저개발 국가 중에는 동전을 찍지 않는 나라들이 더러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루사카 -> 충고로 가는길: 강도를 만나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환전 후, 충고라는 시골 마을로 가기 위해 낡은 도요타 버스에 올라타자 단정하게 차려 입은 온화한 얼굴의 운전수 아저씨가 일어서서 말했다. "혹시 가다가 이 버스가 고장이 나 멈추면 강도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 착할 수 있도록 우리 다 함께 기도합시다." 처음엔 ‘잠비아식 농담인가 봐’ 하고 웃었는데, 일행 중 남아공에 사는 오신 분이 “아, 여기서는 가끔 차가 멈추면 강도가 나와요.”라며 같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으아니, 오기 전엔 안전한 편이라고 들었는데, 다들 별 말이 없는 걸 보면 이게 아프리카 치안의 디폴트 값인가? 다행히 아무 일없이 무사히 도착했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몇 년 뒤 <뉴스룸>이라는 미드를 보면 주인공 중 한 명이 우간다 도로를 달리다가 강도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정전으로 건물 전체가 깜깜했다. 덕분에 촛불에 의지해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나름 낭만적이었다. 다만 내가 먹은게 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게 안타까울 뿐. 깜깜하고 조용하고, 밖에 나가면 할 일이 없는 덕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아프리카에 왔다는 흥분감, 긴 비행 시간과 시차로 인한 피로, 그리고 각박한 도시 풍경에 싱숭생숭한 마음을안고 아프리카에서의 첫 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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