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프리카 현지인이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고 하는 이유
어제 올린 탄자니아 선거 이야기와 이어지는, '분노'에 대한 이야기.
1. 아프리카의 선거 행진 풍경
(앞의 이야기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한 배경 설명) 2014년,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만든 수학책을 배달하기 위해 탄자니아에 갔을 때였다.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숙소 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이 나와 자신들이 응원하는 정당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동네 찻길을 따라 '차데마! 차데마!'하고 소리치며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탄자니아는 갑작스러운 선거로 들썩이고 있었다. CCM이라는 집권 여당이 국제적으로 거래가 금지된 상아를 정부가 나서서 밀수 판매하는 등의 심각한 부정부패 스캔들이 하나둘 드러나며 민심이 흉흉해졌고,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갑자기 선거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아루샤에서는 저 위의 오른쪽 사진에 나오는, V자 그림이 그려진 2번 차데마당(민주진보당)의 깃발을 압도적으로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모두가 차데마당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선거일이 다가와서인지, 이 날은 하루 종일 끝없는 행진이 이어졌다.
2. 갑자기 바뀌는 분위기
이를 본 게하 주인 벤슨은 숙소 손님들에게 '위험하니까 밖에 나오지 말라'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에 밖이 너무 궁금해져 잠시 요 앞 가게에 가서 물을 사 온다며 밖으로 나가 조금 떨어진 골목에서 사람들의 행렬을 구경했다.
그런데, 길 건너편 술집을 보니, 어라? 게하 주인 벤슨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슬금슬금 다가가서 아는 척을 했다니 벤슨은 의외로 숙소에 돌아가라고 하는 대신 옆에 앉으라며 반겨줬고, 나는 같이 있으면 괜찮나 보다 하고 집주인의 테이블에 합석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사람들이 떠드는 걸 듣고 있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테이블 근처의 흥분한 누군가가 바닥에 맥주병을 던지며 술집 분위기가 싸-해진 것이었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어느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마담, 빨리 집에 가라!" 라며 나를 내보냈고, 나는 '안녕히 계세요!' 하고 얼른 도망쳤다.
3. 현지인의 충고: 아프리카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마라
게하로 돌아가며 생각났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마'라고 했던 벤슨의 이야기가.
전에 벤슨과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에 한 무리의 사람이 모여있는걸 본적이었다. 내가 무슨 일인지 보고 가면 안 되냐고 묻자 벤슨은 그 자리를 얼른 지나가며 말했다.
'여기(탄자니아)에서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절대 가지 마, 사람들이 웃고 있어도 언제 갑자기 돌변해서 싸움이 날지 몰라. 그렇게 되면 피부색이 튀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눈에 띄어 다칠 수 있어. 알겠지?'
설마 그럴까...?! 하고 넘겼는데, 실제로 눈앞에서 겪으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4. 오랫동안 쌓인 화가 만드는 악순환,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은
당시에는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이번엔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일의 이유를 챗GPT에게 물어봤다.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그럴듯한 답이 나왔다.
이는 사회 구조적·역사적 배경, 심리적 요인, 환경적 조건이 겹친 결과로,
1. 한순간에 분위기가 바뀌는 ‘집단 전이(hysterical contagion)’ 가 자주 나타난다: 사회 구조가 불안정할수록 군중은 “억눌려 있던 분노”를 함께 터뜨리면서 예상 못한 폭력으로 번진다.
2. 억눌림과 분노의 누적: 아프리카 다수 국가에서는 독립 이후 지금까지 부패, 불평등, 실업, 빈곤이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사람들은 평소에도 분노를 안고 살고, 그러다 '시위' 같은 순간이 오면, “오랫동안 쌓인 분노의 폭발구”가 된다.
3.국가 권력과 경찰의 폭력성: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경찰이나 군대도 과잉 진압을 일삼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폭력적으로 만드는 악순환이 생긴다.
*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프리카에서 군중이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 “개개인이 폭력적이라서”가 아니라, 오랜 억눌림, 불신, 감정적 문화, 과잉진압의 역사, 그리고 집단심리가 만나 순간적으로 폭발하기 때문이에요.
이 답변을 보고 저 위의 이야기와 맥락이 쪼금 다르지만 '분노(또는 갑질) 돌려 막기'가 생각났다. 참고로 이건 서로에게 화를 내며 폭탄 돌리기처럼 분노리를 패스하는듯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만든 단어이다.
가끔 아버지의 자전거 가게 스마트스토어 일을 도우며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는 때가 있는데 더러 버럭 화를 내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나도 화가 나지만 바로 표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눌러두는데, 그 분노가 내 안의 어딘가에 스며들었다가, 화가 나는 순간이 생기면 일하며 당한 화 + 그동안 쌓인 다양한 화가 폭발해서 나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게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자괴감이 드는 동시에, 나에게 화를 낸 사람들도 혹시 어딘가에서 갑질을 당하거나 분노가 쌓인걸 나에게 푼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고 욕하기보다는 '일진이 안 좋았나' 라든가 '힘든 일이 있나'라고도 생각해 보기로 하고, 나의 화도 쌓아뒀다가 폭발시키기보다는 그때그때 표현하도록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사람 간의 문제든 아프리카의 저런 사회적인 문제든,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게 중요하지만, 하루아침에 해결하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이기에, 우선은
- 아프리카에서는 사람이 모인 곳에 웬만하면 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 화는 쌓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조곤조곤하게 풀면 어떨까요...? (내용은 확실하게, 태도는 부드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았다가 폭발하면, 결국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니까, 소중한 나 자신을 위해, 감정 표현은 바로바로 표출해보아요호-
아프리카 이야기에서 시작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봤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