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탄자니아 선거, 지금이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 바꾸는 세계의 민주주의 지도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조지아에서도 부정선거 관련 시위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봤다. 최근 열린 지방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라고 한다. 조지아의 집권 여당의 인기는 떨어지고 있는데 부정 선거 관련 증거가 계속 나오면서 2024년부터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나다가 이번에는 좀 더 큰 시위가 일어난 것 같다.
이걸 보고 2014년 탄자니아에서 본 것들이 생각났다.
1. 10년 전, 아루샤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만든 수학책을 배달하기 위해 탄자니아 아루샤라는 도시에 갔을 때였다. 당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시내에서 좀 떨어진 주택가의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때였다.
게하에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숙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네 찻길을 따라 '차데마! 차데마!'하고 소리치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뭔고- 하고 보니, 사람들이 나와 자신들이 응원하는 정당을 위해, 정치인이 같이 행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행진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탄자니아는 갑작스러운 선거로 들썩이고 있었다. CCM이라는 집권 여당이 국제적으로 거래가 금지된 상아를 정부가 나서서 밀수 판매하는 등의 심각한 부정부패 스캔들이 하나둘 드러나며 민심이 흉흉해졌고,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갑자기 선거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아루샤에서는 저 위의 오른쪽 사진에 나오는, V자 그림이 그려진 2번 차데마당(민주진보당)의 깃발을 압도적으로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모두가 차데마당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은 차데마당은 선거에서 패배했다.
아니, 사실 이 선거 결과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거결과는 원래 나와야 할 시간에 나오지 않았고, 한참 후에 CCM당이 이겼다는 결과가 나왔다. 적어도 나는 아루샤에 머무는 동안 여당을 응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어찌 된 일이었을까...?
아무튼 이후 야당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개혁에 대한 소망은 무산되었고, 집권 여당의 잘못은 우야무야 넘어갔다. 그리고 나도 탄자니아에 대해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이번에 조지아의 부정선거 소식을 들으며 탄자니아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혹시 지금 이런 일이 탄자니아에서 다시 벌어진다면, 아니 탄자니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조지아처럼 큰 시위가 일어나고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스마트폰이 바꾸고 있는 세상
왜냐, 지금은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고, 이제는 모르려야 모르기 힘든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3년과 2014년 탄자니아에 방문했을 때, 나는 사실 좀 당황했다. 2010년 잠비아에 갔을 때 핸드폰을 가진 사람이 거의 전무했던 것과 달리, 핸드폰을 이용하는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구식 노키아 피쳐폰 같은 걸 개조한 정도의 폰이었지만, 그런 폰으로 페이스북을 하기도 하고, 엠페사라고 해서 핸드폰 번호만으로 돈을 송금하는 시스템도 있었다. 와이파이보다는 3G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 3G 이용 바우처를 파는 노점상은 거리 곳곳에 있었다. 전화 보급이 거의 안된 걸 생각하면 급진적인 발전이었다.
탄자니아에서 돌아와 같은 해에 NGO 일로 네팔에 갔을 때에는 피쳐폰 보다 스마트폰이 더 많이 쓰이는 걸 볼 수 있었다. 중국에서 제조된 10만 원대 미만의 저렴한 스마트폰이 수입된 덕분이었다. 이를 이용해 네팔 사람들은 정전을 알리는 앱을 만들어 자신의 집은 언제 정전이 되는지 체크하고(동네마다 시간을 정해 정전을 하고 있었다), 해외에 나간 가족들과 수시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이후 2016년 다시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수학책 일로 남아공에 갔을 때에는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서도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걸 볼 수 있었다. 소득이 적은 가정은 PC는 없어도 적어도 스마트폰 한 대는 있었다.
이를 보고 남아공 교육부와 수학책의 보급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인쇄소 부족, 도로 등등의 문제가 있어 보급하기 힘든 수학책 대신 스마트폰으로 수학책 내용을 배포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무산되었지만, 앞으로 인터넷으로 누구나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칸 아카데미 같은 곳은 이미 2006년에 시작되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재단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부정부패에 대항하는 폭발적인 연쇄 시위에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네팔에서는 SNS를 이용해 리더 없는 시위를 만드는가 하면 디스코드로 수 십만 명이 한 곳에 모여 임시 총리를 뽑았고, 조지아에서는 SNS를 활용해 외신 기자들과 접촉을 하고 조지아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등, 만화에서나 봤음직한, 상상도 못 했던 진화를 현재 진행형으로 보게 된 것 같아 신기하다.
이외에 인도네시아, 모로코 등에서도 부정부패로 인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앞으로 더 많은 나라에서 트위터가 활약한 아랍의 봄 보다 더 큰 시위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