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시작점
마지막 날, 주미와 수연은 이른 새벽 알베르게를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했다.
향로 미사는 정오 12시에 열리니 모든 순례자들은 11시 도착에 맞춰 일정을 잤다.
11시에 성당에 도착한 둘은 운 좋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발을 쉬며 순례의 마지막 미사를 준비했다. 성당 안은 피로에 지친 순례자들로 가득했고, 그들 모두에게 이곳은 목적지이자 종착지였다. 수연과 주미도 마찬가지였다. 미사가 시작되자 두 사람은 자연스레 감사 기도를 올렸다. 긴 여정의 모든 순간이 한꺼번에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다.
건장한 수도사들이 향로 미사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제대 앞으로 나왔다. 수연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움직이자 서서히 대형 향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향로는 수도사들의 손에 이끌려 사방에 향을 흩뿌렸다. 마치 춤을 추듯, 공중을 가르며 퍼지는 향은 예수의 사랑이 흩날리는 영혼의 세례처럼 느껴졌다.
줄을 당길 때마다 향로는 더 크게 솟구쳤고, 옅은 안개와 짙은 향이 성당 안을 가득 채웠다. 800km를 걸어온 순례자들은 고개를 들고 향로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수연이 향로에 눈을 고정하고 있을 때, 주미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치 자신이 향로를 흔드는 수도사인 양 말이다. 그때 수연이 조용히 주미의 손을 맞잡았다. 향기와 함께 온기가 온몸에 퍼졌다.
거대한 향로가 모든 움직임을 멈추니 순례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순례자들로 가득한 성당안은 향과 숨소리만 남았다. 주미는 고개를 숙였다.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하게 비워졌다. 수연도 눈을 감고 고개를 떨궜다. 길고 긴 순례의 시간과 그 안에서 얻은 깨달음이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날 오후, 두 사람은 인증서를 받았다.
종이는 가볍고 얇았지만, 그 종이를 얻기까지의 시간은 길고도 무거웠다.
인증서를 받고 나온 둘은 아무 말없이 광장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주미가 한마디 했다.
“수연아, 이제 우리,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제 어디라도.”
햇볕이 밝게 내리쬐었다. 종이 위에 쓰인 이름과 날짜가 햇살에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