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야모야라는 병
숙이의 막내딸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이가 셋인 숙이에겐 막내딸이 늘 마음에 걸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다 길에 주저앉아 울고 있어, 마침 마중 나온 딸 친구 엄마가 아이를 업어 집에 데려다 주며 핸드폰 메시지를 남겼었다.
딸과 함께 병원을 찾아 온갖 검사를 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큰일이 있을까 싶었다. 많은 아이들을 봐온 숙이였다. 꾀병, 스트레스성 증상, 소화불량, 틱... 수없이 겪어본 일이었다. 젊은 의사가 딸의 뇌사진을 가리키며 차분히 설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머님, 여기 보세요. 일반적인 혈관은 이렇게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따님 혈관은 다르죠? 이게 모야모야 병이라고 불리는 뇌혈관 기형입니다. 어린이에게는 드물게 발견되는데, 천만다행이어요. 모르고 있다 사춘기에 혈류가 많아지면 갑자기 터질 수도 있거든요. 수술만 하면 돼요. 서울 큰 병원에 가서 가능한 한 빨리 날짜 잡으세요."
의사는 담담하게 운이 좋다 했다. 뇌수술만 하면 되니 말이다. 숙이는 기가 막혔다. 서울 큰 병원에서 여름방학에 수술 스케줄을 잡았다. 기형은 뇌의 정중앙과 양측면에서 발견돼, 수술은 두 번에 걸쳐야 했다. 말이 두 번이지, 뇌를 두 번 여는 일이 보통인가? 딸은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병실에서 보냈고, 숙이는 학교와 병원을 오갔다. 수술 후 아이의 응석과 짜증은 오롯이 숙이 몫이었다. 남편도 도왔지만, 늘 모자랐다. KT에 다니는 숙이 남편은 친구와 술을 좋아했다. 같은 학과 커플이었던 숙이는 친구 좋아하고 화통한 남편이 좋았지만, 아픈 딸이 있는데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라니. 세월이 너무 빨랐다.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하루하루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막내 아이를 보면 순식간이었다. 막내딸은 건강해졌다. 예민함이 없진 않았지만 잘 자랐다. 큰딸과 둘째가 성실하게 공부했다면, 막내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아이였다. 셋 모두 잘 자라고 있지만, 문제는 숙이 자신이었다. 세 딸들을 보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주미와 수연이 산티아고에서 소식을 보내오면, 숙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고3 학부모인 숙이는 언감생심 집을 비운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수연은 순례길을 걸으며 발톱이 하나씩 죽어간다며 발가락 사진을 며칠 간격으로 카톡에 보냈다. 모두들 그걸 어떻게 참느냐며 요란하게 수다를 떨었지만, 숙이는 담담하게 생각했다. 발톱이 죽어가도 수연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운동신경이라고는 전혀 없는 숙이에게 30일 내내 걷는 일은 애초에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걸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다. 숙이가 바라는 건 단 며칠만이라도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무던한 주미도 순례길을 걷는 동안 얼굴이 달라졌다. 예전엔 새초롬하게 찍던 표정과 포즈가 이십여 일을 지나면서는 어린아이처럼 자유롭고 해맑게 바뀌어갔다. 사진뿐만이 아니었다.
순례길을 다녀온 후 주미는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정표 있는 삶"이라든가, "배려도 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겠다"는 말들을 했다. 수연은 그런 주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동지애가 가득한 둘의 모습에, 숙이는 말할 수 없이 부러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