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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Oct 03. 2024

내가 가진 것에 더욱 집중하면 된다.

인생이 불공평한 것을 인정

여기 한의원은 싫은 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같은 진료실에서 치료를 받는다.

이어폰을 장착해도 이야기소리가 다 들리니, 어쩌다 많은 사람들의 불필요한 정보를 알게 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도 있고, 교훈을 얻기도 한다.


며칠 전, 치료해 주는 한의사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듣게 되었다.

어떤 환자는 4개월 침치료 후, 알레르기 비염이 완치되었다고.

완치?

알러지성 비염이 완치란 게 가능한지... (늘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완치는 불가능합니다. 관리해야죠.)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어, 재차 물었다.

그게 사실이냐고...

그렇단다.

나는 17세부터 시작되었다.

알레르기 비염.

처음엔 그게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가을만되면 내 몸은 알레르기비염으로 시작하니, 계절이 바뀐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근처에 제대로 된 이비인후과를 찾으려면 학교에서 버스를 다시 타고 가야 했고, 결국 나는 왕복 1시간을 넘게 다니며,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저녁에 시간 맞춰 갈 경우에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 당시에는 자율학습이 의무- 가야 했다.

그렇게 다녀오면 족히 2시간은 걸리는데, 남들 공부할 때 병원 다니고, 남들 수업에 집중할 때, 나는 수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생활이 3년 넘게 이어지고, 결국 원하던 대학은 진학하지 못했다.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막판에 친 시험이 원서를 작성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쳐 결국 아무 곳에나 넣어버렸다. 신경 쓰기도 귀찮고, 그냥 재수할 생각으로 아무 곳, 정말 아무 곳에 넣었는데, 재수는 하지 않고 그 학교를 원망하며 다녔다. 


그렇게 시작된 비염은, 나중에 성인 아토피로 이어져, 결국 세상과 벽을 쌓아야 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자발적 고립은 이 같은 경우에 사용하는 용어다.

내가 왜 혼밥, 혼자 여행, 혼자 영화 보러 가기의 원조이자 달인이 되었을까.

당시만 해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을 환영하는 식당이나 카페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더 편했다. 자꾸 물어보는 사람들 틈에서 피곤했으니, 원래도 혼자 조용히 사색하는 걸 즐겼던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직장에는 구내식당이 있어 동료들과 어려움 없이 지냈다. 동료들이 정말 이해해주니 고마웠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심하지 않았다

비염이야 달고 사는 이들이 많으니, 하지만... 아토피성 피부염이 심해져, 결국 식이요법을 하게 되었을 때는 곤란한 상황이 많았다.

특히 회식... 아, 한국인은 밥을 같이 먹는 문화를 꽤나 중시 여기지.

그래, 맞춰야지. 내가...

다수결을 사랑하는 민족이었지...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회식을 빠지면 아주 아주 문제가 되었고, 상사에게 소위 찍히는 경우도 있었다.

부장님 뭐 드시고 싶은 지에 따라 그날의 메뉴가 정해지니, 나 같은 막내는 발언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음... 내가 분명 술과 고기, 밀가루는 못 먹는다고 확실히 말씀드렸는데

부장님은 내게 술을 권하며, ' 속을 씻어내 준다.' 라며 끝까지 내 곁을 지키셨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내가 응해야 하다니..

결국 더럽고 치사하고 이 자리를 ㄸ기 위해, 나는 한 잔 받고 몰래 뱉었다.

근데 이미 점막을 통해 다 흡수- 대부분- 된 것도 안다.

정말 싫은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술 권하는 사회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짓이겠지만.


지금도 고래고기가 싫다.

나보다 서른은 많은 어른인데, 내가 고래고기에 입도 대지 않자, 계속 설교를 , 그리고 자리를 일어서려 하자, 붙잡는다. 아... 진짜 뭔가... 비릿한 냄새도 싫은 데, 입에 넣고 몰래 다시 뱉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동료와 엄청나게 욕하며- 다시는 이런 자리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참으로 저급한 회식문화가 싫어, 나는 나중에 핑계를 대기 시작, 그게 점점 익숙해지고 당당해졌다.

연차가 제법 되니, 회식은 남의 일이라고 단정, 절대 참석하지 않았다.

부서가 달라져,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이들이 많아져, 밥은 같이 먹었고, 차도 같이 마시며 잘 지냈다.

그런데 이게 또 만남에도 문제가 되었다.

처음 만난 상대는, 주로 뭘 좋아하냐고 묻는 데, 

나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솔직히 말했다.

뭐 다시 만날 상대도 아닌데 어때.

그러면 상대방은 당황했다.

아... 정말 술도 고기도 냄새도 못 맡으세요?

네.. 맞습니다.

그러니 제발 더는 묻지 말고, 여기서 그만 만나요.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도 부담스러웠다.

절친이지만, 미안했다.

결국 나는 혼자의 길을 선택, 그게 편했다.


한국에선 까다로운 사람인데, 유럽이나 일본을 가니 오히려 나를 더 응원해 주었다.

그건 네 문제가 아니야. 알레르기는 아주 위험해. 네가 못 먹는 건  당연히 제외하고  줄 수 있어.

일본 호텔에서도 알레르기 체크 리스트를 작성하게 되었고, 나는 아주 당당하게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그게 가장 고마웠다. 네 잘못이 아니야.

유제품 알레르기로 인해 놓친 기회도 너무 많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 하지만 영국에 가니 오트밀크, 락토프리 밀크, 라이스 밀크, 코코넛 밀크.... 지금은 한국도 많이 판매하지만 , 당시엔 백화점도 온라인에도 판매하는 곳이 없었다. 

한국도 지금은 아주 달라졌다. 혼자 먹는 사람을 위한 식당도 많고,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비건주의도 등장, 식품도 아주 다양하고 선택의 불편함도 없다.

아... 20년만 더 늦게 태어나면 좋았을걸...

내 기억으로 최근 7-8년이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시대가 드디어 왔구나!

오~ 역시 나는 트렌드세터!

자축하며 기뻐했지만

완치되지 않은 비염은 다시 나를 괴롭힌다.


그런데 어떻게 4개월 치료로 완치가 되었을까.

마음속 한 곳이 뻥 뚫린 기분이다. 나는 해보지 않은 치료가 없다. 거기에 들이부은 돈과 시간은 게산이 불가할 정도다. 

뭔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체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사람은 타고난 체질, 건강상태, 유전자, 성격, 성향 모두 다르지.

대체로 타고난 게 좌우하더라...

그래... 그럼 내가 가진 건 뭔가.

물론 사람들은 나를 민감하고 예민하다고 하지만, 나는 달리 표현할래.

섬세하고 계절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센스 있고 감각 있어, 맛도 향도 잘 구별하고, 무엇보다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어떤 옷이나 화장이 잘 어울리는지, 이런 것들을 잘 알지. 주변의 지인들도 내 도움을 많이 받았고, 끊임없이 내게 물어보곤 했지. 그건 자랑이 아니고 즐거운 일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 취향을 내가 스스로 잘 알고 가꾸어 나가니 얼마나 멋진가.

가끔 나처럼 비실비실 골골하는 이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그래도 나이가 들수록 나를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음을 실감하니, 오... 이건 뭐, 말 못 할 고민이 많은데도, 겉으로는 크게 아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여하튼 지금도 마스크를 낀 채, 이 글을 써야 하는 건...

2년 동안 잠잠했던 비염이 다시 극성이니, 아마 내가 뭔가 또 관리가 소홀했을 지도.

밤과 아침에 약을 복용하고, 낮에는 해가 뜨니 그나마 나아진다.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도 제법 된다.

그리고 장소가 바뀌면 좀 낫다.

365일 아픈 것도 아니니, 이것으로 위안이 된다.


결국 내 몸을 통해 인생을 배운 셈인데, 좀 억울하지만, 나보다 더 아픈 아기들을 보면 할 말이 없다.

사람은 각자 다들 아픔이 있다. 

그럼에도 자신과 타인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아플 때 주변에서 보내는 시선이 불편했다.

동정도 연민도 싫다.

그냥 담담한 그 상태가 좋다.

타인을 함부로 잣대 짓고, 저 사람은 아파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파도 행복하게 지낼 일 많다. 몸이 불편해도 불행하지 않다.

요즘 늦게 찾아온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 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산다.

다만 하루 중 특정시간은 무척 괴롭다.

그러나, 내가 가진 이 많은 것, 내가 발견한 즐거운 일들, 아직도 모르는 세상의 재미를 기대하니

다시 설렌다.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오늘 이 시간에 집중해야지.

조금 아쉬운 건, 흘러간 시간..

정말 열심히 살았고, 몸이 좀 덜 아팠다면 더 많은 일을 해냈을 텐데... 이야말로 아쉽다.

태어나서 칼을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데,

정말, 나는 요즘 무만 써는 거 같아...

음... 그래도 모른다.

좋은 일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생길지. 이미, 내 날개가 파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높이 날지 않아도 좋으니, 내 날개가 녹슬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를 응원합니다.


남과 비교하여 스트레스받지는 않지만, 건강한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그들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도무지 모르는 데, 그게 가능하구나...

하지만 여전히 푸른 하늘과 , 햇살, 선선한 바람을 맞이하며, 다시  용기내게  됩니다.

VIVA LA 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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