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 집착하지 마라 어차피 문제는 생길 것이다
"이게 뭐야? 언제 이런 게 생겼지?"
지난 금요일이었다. 가족 행사가 있어서 주말을 본가에서 보내기로 했고, 집을 비우기 전 청소를 하기로 했다.
그래봐야 고작 이틀 집을 비우는 것이지만 아직 자취뽕이 사라지지 않은 나는 이틀 이상 집을 비울 때면 온 집안을 쓸고 닦는 편이다. 물론 이 모든 건 백수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있다.
맞바람이 취약한 원룸 오피스텔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창문을 열고 서큘레이터를 마주 보게 해 온 집안에 최대한 공기 흐름을 만들고, 얼마 전 집에 놀러 온 후배가 선물해 준 인센스 스틱도 하나 켰다. 그리고 세탁 종류를 구분해 세탁기를 돌리고 화장실 청소를 한 다음 청소기로 온 바닥을 밀고 알코올 소독제로 바닥을 닦는 것을 마지막으로 집을 나설 참이었다.
늘 하던 일이라 특별할 것은 없었고, 빨리 끝내고 본가에 가서 뒹굴 거릴 생각으로 바닥 청소를 하다 주방 러그를 들췄는데, 그때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처음 이 집을 계약할 때 예전에 누수로 주방 바닥 장판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어서 꼭 러그를 깔고 생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사 오자 마자 주방에 러그를 깔아 놓고 생활했는데, 그날은 이전과 뭔가 달랐다. 그늘이 져서 색이 다르게 보이나 하고 러그 전체를 걷어내니 문제는 더 확실해졌다. 러그를 깔아 둔 바닥 장판에 누렇게 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 바닥은 밝은 색의 나무 무늬 장판으로 이사 전 집주인이 교체를 해준지라 완벽하게 새것 같은 상태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온 집안을 쓸고 닦았었다.
처음에 뭔가 묻은 건가 싶어 손으로 닦아봤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장판 표면에 약하지만 확실하게 이염이 된 자국이 보였다.
'내가 이 러그를 마지막으로 들춰본 게 언제였지? 왜 이런 얼룩이 생긴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사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진 확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러그 아래 바닥을 확인한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최근에 집을 비우는 일이 좀 있긴 했지만 그렇다 쳐도 (아무리 길게 봐도) 2주가 채 못 됐을 것이다.
청소할 때마다 러그를 들어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바닥 청소를 자주 했기 때문에 바닥에 이염이 될 만큼 오랜 시간 동안 러그를 방치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비교적 최근에 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인데, 도대체 왜, 언제, 무슨 연유로 이렇게 된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잠깐 그럼 욕실은 괜찮은가?"
아직 바닥 보일러를 돌린 적이 없으니 굳이 따지자면 요리할 때나 설거지할 때 물이 튀면서 러그가 젖고, 그로 인해 장판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따지면 욕실 러그는 더 자주, 더 많이 물에 젖기 때문에 그쪽에도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눈치채지 못한 문제가 두 배가 되는 지라 급하게 욕실에 가서 러그를 들춰봤다. 다행히 욕실 쪽 장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을 더 많이 쓰고 접촉하는 쪽의 바닥은 괜찮은데 주방 바닥에만 문제가 생겼다. 이 두 개의 차이는 뭔지? 그나저나 저 꼴 보기 싫은 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청소 용품으로 지워지는 건가?
갑자기 생긴 문제에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바로 챗지피티와 청소 전문가인 엄마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 몇 가지 방식으로 오염을 지우는 시도를 해볼 순 있지만, 확률상 이염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밝은 장판에 한 번 생긴 문제는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두 전문가의 공통 의견이었다.
세상에 내 완벽한 집에 이염이라니. 집주인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지?
그보다, 완벽하게 관리했다고 믿었는데. 매일 쓸고 닦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이제 이 집에 이사 온 지 6개 월도 안 된 상황. 주방엔 하루에도 수십 번 드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내 발아래 이런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니.
얼마간의 시간 동안 생긴 일인지는 몰랐도 너무 당황스러웠다.
전용 세제를 사서 청소를 해보든, 전문가를 부르든, 집주인과 이야기해서 일부 교체를 하든 문제야 해결하면 되는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완벽하게 집을 관리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내 착각이라는 것.
내가 시간을 할애해 온 집안을 쓸고 닦는 동안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곳, 하지만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
나는 전혀 이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고, 몰랐단 말론 정당화되지 않기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작은 공간을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깨지자 모든 게 와장창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이게 인생이라는 걸 집이 알려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가 아는 게 전부인 줄 알지? 사실 넌 아무것도 몰라 애송아]
완벽함이란 뭘까. 내가 다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온 것이지?
본가로 운전해서 가는 차 안에서 계속 그 생각을 곱씹었다.
처음엔 그저 짜증만 났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다음엔 장판에 이염 위험이 있는 물건을 판매한 판매자에게 원망이 돌아갔다가, 결국 그 제품을 선택한 건 나였기에 스스로의 선택에 화가 났다. 왜 매일 바닥을 살펴보며 문제가 있나 확인하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저 문제를 처리하는 데 들어갈 비용이 얼마일까 계산해 보다가, 몇 달째 재취업이 되지 않는 내 현실을 원망하다가 점점 줄어가는 잔고에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근원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완벽함이란 무엇일까.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완벽하게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걸까?
문제가 생기기 전에 다 막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 걸까?
아마 이 자신감의 근원은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있을 것이다.
이 집에 이사 온 후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고,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의 오할은 청소하고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본가에 쳐다도 안 보던 청소 용품을 사들이고 온갖 제품을 실험하며 청소하고 관리하고,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바닥을 보면 뿌듯해했으니까.
그렇게 내 눈에 보이는 공간을 하나하나 통제해 갔고, 그렇기에 모든 부분이 완벽할 것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정말 이 말로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착각이다 착각.
시간과 정성을 들였으니 모든 게 완벽할 거라 생각하다니. 그거만큼 완벽한 착각이 어디 있을까.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과 완벽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건 이미 오래전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았으면서 왜 내 삶에는 연결 짓지 못하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나 모르겠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다 막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됐다. 챗지피티 말론 이런 일이 은근 흔하다고 하는데, 그건 아는 사람만 아는 거지. 모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아니니까.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런 논리라면 나는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가 생기기 전에 모든 변수를 통제해야 한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 살면서 배워가는 거지. 문제를 미리 막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건 완벽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바보 같은 짓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물론 머리론 그렇게 생각해도 속이 쓰린 건 쓰린 거라 며칠 째 머릿속에 저 누런 얼룩이 사라지지 않는다.
표면상은 얼룩 문제지만,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분노는 내가 모든 걸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는 믿음이 깨진 것에 대한 배신감.
상상도 못 했던 문제가 생겨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 세상의 변수에 대한 억울함이다.
어리석은 내 믿음대로 모든 걸 다 통제하며 완벽하게 관리하며 살고 있다고 믿고 싶었는데.
솔직히 말해 내 작은 공간만큼은 그렇게 유지되길 바랐다. 다른 건 통제할 수 없어도 나 혼자 살며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이 작은 공간만큼은 완벽하게 내 통제 아래에 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만심.
나만의 왕국이 유지되길 바랐던 욕심이었다. 바깥세상은 너무 힘드니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너무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응답이 오지 않을 때가 많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과거가 내 발목을 잡고, 계획을 세우면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내 삶을 쥐고 흔들었다.
때론 그 변수가 좋게 작용할 때도 있지만 원래 인간이라는 게 좋은 면보단 부정적인 면을 더 잘 기억하니까. 나한테 세상의 변수는 나를 힘들 게 하는 악재에 가깝다는 편견이 있었다.
세상의 주인공이 되겠단 마음은 애초에 없었지만 그래도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그에 맞는 답을 받을 거라고 어릴 때는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깨지는 사회생활을 하며 이젠 좀 세상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개뿔.
알긴 뭘 알아 사회생활에선 안 먹힌다는 걸 알았으니 내 내면세계로 옮겨간 것뿐이었다.
바깥세상은 통제가 안 되니 그럼 내 생활이라도 통제해 보자. 그렇게 하면 뭔가 보상이 있겠지.
그리고 집은 나에게 답변을 준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니. 그 헛된 믿음은 내려놓고 현실을 살으렴.
솔직히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머리론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론 공감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아니 부정하고 싶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단 하나도 없다니. 그럼 난 세상이 흔드는 데로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럼 뭘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어차피 내가 집중하고 관리하고 보살펴도 잠깐 눈길만 안 닿으면 삶이 문제를 만들어서 던져줄 텐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지금도 고개를 돌리면 주방 바닥에 누런 얼룩이 보인다. 그리고 그걸 볼 때마다 울컥 화가 치민다.
내 완벽한 집에 생긴 이 오점. 심지어 내가 만든 오점이라는 게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제대로 낸다.
지난 일주일은 이 삐뚤어진 마음을 누군가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분풀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는데 진을 빼야 했다. 그 사이에 2-3일 간격으로 얼룩에 좋다는 세정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바닥 얼룩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더 건드렸다간 다른 문제가 생길 가능성만 높아진 지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쪽으로 (강제로) 선택하고 있다.
원인을 찾아보니 러그 바닥에 처리된 미끄럼 방지 고무가 문제일 거란 의견이 나와서 (실제로 욕실 쪽 러그는 고무 처리가 안 되어 있다) 기존의 러그는 현관 찬장으로 치워놨다. 통풍이 잘 되게 두면 조금 나을 수도 있다는 아주 가능성이 희박한 의견에 도박을 건 채로 아무것도 깔지 않은 채 두고 있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닥 얼룩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
아 화나. 솔직해지자. 너무 짜증 난다.
왜 저걸 놓쳤나 싶고, 모르는 것도 죄라는 알면서도 짜증 나고, 세상의 변수라는 게 왜 나에겐 안 좋게만 작용하는 건지 의문이 든다. 완벽한 논리의 오류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원망의 상대가 필요하기에 특정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 (나를 포함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 문제로 화를 내고 싶지 않다) 세상을 원망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
문제의 바닥 사진은 주기적으로 찍어두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집을 빼거나 재계약하기 전에 집주인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 해결할 것이다. 금전적 보상이 필요하다면 할 거고. 내가 일자리도 없는 거지지만 문제를 외면하고 모른 척 회피하고 싶진 않다.
그리고 아직은 수련이 덜 된 모양인지, 시간이 좀 지나면 자동으로 얼룩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도 남아있긴 하다. 인생사 마음대로 안 되는 거 알았으니까, 책임을 동반한 희망 정도는 가져도 되겠지 나를 위해서.
마음을 내려놓아야겠다.
개인의 삶이고, 커리어고, 집이고 뭐고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시즌 같다.
매일 속이 쓰리고 미래가 걱정되고 한숨이 나지만, 어쩌겠나. 그래도 살아야지.
완벽하게 뭔가 하겠단 마음을 내려놓고, 늘 변수가 있을 거란 염두를 해야겠다. 쉽지 않지만, 적어도 이젠 훈련이 돼서 일할 땐 늘 변수에 대해 염두에 두니 내 개인의 삶에도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변수에 대해 늘 생각하고 완벽함과 통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리고 변수가 있어야 이 막막한 상황을 타계할 상황도 오지 않을까.
모든 게 완벽해야만 변화가 생긴다면 앞으로의 내 인생이 기대되지 않으니까.
이제 빨래가 다 됐다고 알람이 울렸으니 빨래를 널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러닝을 하러 가야겠다.
집 근처의 동산을 뛰어서 한강으로 진입하는 루트로 뛰고 와야지.
백수니까 초겨울에 진입하는 이 날씨에도 햇빛이 가장 따뜻한 시간에 러닝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내일은 또 내일의 문제가 생길 것이고 외면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