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도 우리 엄마처럼 완벽하게 엄마의 역할을 할 수는 없을 거 같았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그게 얼마나 힘든건지 더 깨닫는 요즘이다.
엄마가 되기까지도 너무 힘들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누군가에게 의지할 곳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이고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온몸이 부서질 거 같이 힘든데 그래도 엄마니까 해야한다. 내가 아니면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우리 엄마는 이런 감정으로 36년을 지냈고 이제 내가 품을 떠났으니 다 끝났나 싶었지만 윤후가 태어나면서 다시 리셋됐다. 나는 결혼이나 출산을 하기 전에 나의 아이 때문에 엄마의 인생을 리셋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때 엄마가 일을 시작했을 때 우리 엄마가 더이상 유진이 엄마가 아니라 서자영으로 살 수 있어서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엄마의 희생이 짠하고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는게 참 좋았다.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까 나의 삶을 엄마가 되기 전처럼 유지하려면 희생해야 될 게 너무 많다. 특히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게 엄마나 시어머니의 삶은 최대한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삶이 리셋되는 게 죄송스럽고 싫었으니까. 훌륭한 엄마는 2대를 못 간다는 게 슬펐다. 엄마가 딸을 훌륭하게 키우면 그 딸은 너무 바빠져서 자기 자식을 돌볼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직업을 택했다. 내가 일하는 시간과 기간을 그나마 유동적으로 정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현실이 되고 보니 그리 녹록치가 않다. 이제 집에 온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 그동안 엄마의 희생이 너무 커서 정말 감사하고 죄송스럽고 괴롭다. 내가 다 혼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는 현실이 너무 싫다. 체력도 안 되고 상황도 안 되고 이래서 산후우울이 오는구나 싶을 정도로 심란함에 어쩔 줄 몰라 나도 모르게 울고 있을 때가 있다.
어른들이 그런다. 나때는 말이야 애 둘셋까지 다 혼자 키웠다고. 우리 엄마도, 시어머니도 다른 대부분의 어머니들도 그랬지. 그 말이 참 슬픈 말이다. 왜 그렇게 그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을까. 그리고 한편으로 그들처럼 내가 다 혼자할 수 없어서 그것도 스스로 싫어질 때가 있다. 제가 혼자 해볼께요 할 엄두도 안나는 현실이다. 엄마의 희생이 너무 커서 정말 감사하고 너무 죄송스럽고 괴롭고 내가 싫다.
돈이 좀 들더라도 도우미 아줌마가 더 계시는게 낫겟다 생각했다.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에 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고 엄마의 몸은 아끼고 싶으니까.
엄마가 되는 건 그리고 엄마라는 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같다. 세상에 엄마가 있는 건 신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서 엄마를 대신 뒀다고 하는데 이제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거 같다.
아직도 할머니는 자식인 엄마걱정에 여념이 없으시고 엄마는 내 걱정에 밤낮없이 윤후의 안부를 묻구 나는 윤후가 울면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있나 싶어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엄마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다 소중한 요즘이다. 대신 엄마는 좀 쉬었으면 좋겠어서 안 왔으면 할 때도 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새벽 수유가 끝나면 바로 자야 체력을 비축하는데 1시간 반동안 씨름하다보면 지금처럼 잠이 달아난다. 멍하니 있다보면 어느덧 다음 수유텀이 된다. 덜 피곤해서 그런거라는데 미친듯이 피곤한데 못 자서 더 괴롭다. 불면의 밤이 너무나 아깝다. 정말이지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