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r Veronica
May 17. 2023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있음에 집중하기
호스피스 환자 및 보호자분들에게 드리는 편지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고,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니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만 해도 성공이고,
말로만 간절하지 말고 정말 절실하게 하다 보면 변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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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해보니 밤 사이 두 분이 임종하셨다. 어제 퇴근 전에 보호자 면담을 했었는데 마음이 먹먹하다.
면담할 때마다 가장 궁금해하시는 건 언제 임종하실지 인데 언젠지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과연 덜 불안할까? 아마도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불안할 것 같다. 실제로 임상과에서 "여명이 **달 남았습니다"라고 듣고 오신 분들은 아직 그때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면 계속 그 개월 수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보다 여명이 길어져도 점점 더 불안해하신다. 이미 의사가 고지한 삶을 다 살았다는 생각에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끊임없이 불안감을 표하신다. 어떤 환자 분은 여명이 1년이라고 들었는데 그 후로 5년을 더 살고 계셔서 항상 불안하고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호스피스에서는 여명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는다. 정말 예측이 안 돼서이기도 하고 큰 의미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환자 분이나 보호자분들이 여명을 궁금해하시는 건 저마다 이유가 있다. 본인의 마음을 준비하고 삶을 정리하기 위해서도 있고, 보호자의 회사 휴가나 상주보호자를 누가 할지(간병인으로 할지 가족이 돌볼지) 아니면 해외에 있는 가족들이 언제 들어와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등 아주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물론 정말 임종기에 접어들면 임종면회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확히 언제일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컨디션이 괜찮아 보이셨던 분도 갑자기 임종하실 수 있고 누가 봐도 안 좋은 분이신데 몇 주씩 잘 버티시는 분도 있다. 개인차가 너무도 크다는 걸 나도 여기 와서 알게 돼서 함부로 예측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면 사람이 매우 겸손해진다. 나이를 불문하고 앞서 어떤 생을 살았는지와도 관계없이 죽음에 초연해지기는 누구에게든 여러모로 어렵다. 환자 본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보호자도 의료진도 익숙해진다거나 덤덤해지기 쉽지 않다.
보통 죽음이 가까워오면 누구든 죽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면담할 때 살아있음에 집중하시도록 말씀드린다.
"죽음을 생각하면 계속 쳐지고 우울해져요. 보호자분들도 환자 분이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하시고 환자분도 죽을 날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근데 오늘은 살아계시잖아요. 생존율이라는 건 통계예요. 내가 살아있으면 100%, 죽으면 0%인데 생존율 몇 프로라는 건 여러 사람들을 평균을 내서 나온 거라 큰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 오늘 살아계심에 집중하시고 가족들이랑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세요. 하고 싶은 말도 많이 하시고 보고 싶은 분들 영상통화도 하시고 사진이랑 영상도 많이 찍어놓으세요. 환자분이 겉으로 드러나게 반응하실 수 없으실지는 몰라도 청각은 임종 후에도 살아있는 기관이니 말을 많이 해주세요. 죽을 걱정은 죽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요. 지금보다 내일은 비슷하거나 안 좋아질 게 명백하단 얘기는 바꿔 말하면 오늘, 지금이 제일 건강한 모습이시니까요. 눈에 많이 담고 많은 추억을 남기세요. 함께 계시니까요."
이렇게 얘기해 드리면 보통은 표정이 많이 밝아지신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나도 못했다. 나도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그렇게 못했다. 항상 불안했고 아쉬웠고 후회했다. 근데 떠나보내고 나니 그때 옆에 계실 때 자주 보러 갈 걸, 더 많이 웃을 걸, 더 많이 얘기할 걸 싶어서 많이 울었다. 그래서 환자 분들이나 보호자분들한테는 후회는 하지 말라고 말씀드린다. 이미 최선을 다 하셨고 지금도 잘하고 계신다고 지금 이 시간을 행복하게 잘 보내시라고 말씀드린다. 실천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얘길 듣고 나시면 한결같이 울기보다는 웃으셨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어제의 임종도 두 가족에게 쉽지 않으셨을 거다. 아직 초보의사인 나에게도 쉽지 않다. 그래도 이젠 편안하시겠지 싶어 조금 위안 삼고 오늘은 그 분과 가족분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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