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갸 내가 오늘 아침에 문득 든 생각인데 윤후를 어떻게 키울 때 윤후가 행복할지 확실히 알았어.
넓은 집에서 혼자 놀기보다는 복닥거려도 여러 가족이 같이 노는 게 윤후는 훨씬 재밌을 거야.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도 좁았지만 그땐 좁은 줄도 모르고 항상 복닥거리는 우리 집이 좋았거든. 중학교 때까진 방 두 개인 집이라 방 하나는 중학교 올라가면서 엄마가 나한테 안방을 주고 원재를 작은 방을 줘서 엄마아빠가 갑자기 거실에서 자기 시작했는데 엄마아빠는 불평 한번 없었고 나도 그땐 고마운 줄 몰랐던 거 같아 그냥 같이 복작거리면서 사는 게 재밌었어. 아마 엄마아빠가 우리 집이 왜 이렇게 좁냐 이사 가고 싶다 불만이 있고 씩씩 거렸으면 나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모르고 불만을 표했을 거 같아.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한테 우리 집이 너무 좁아 그랬겠지. 근데 오히려 엄마아빠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 우아한 백조처럼. 아마 원래는 엄청 좁고 답답하고 힘들었을 거야.
윤후도 지금 말을 정말 알아듣지 못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걸 듣고 분위기 파악이나 감정표현하는 건 금방 알아채니까 우리가 사는 환경이 좋은 환경이라고 우리 스스로도 만족하면서 사는 걸 보여줘야 애도 행복하게 자랄 거 같아.
우리 집이 방 3개짜리 우성아파트에서 살다가 지금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시기가 안 맞아서 다시 방 2개짜리 전세로 이사해서 6개월 동안 살 때 내가 원재랑 둘이 방을 쓰고 엄마아빠가 안방을 썼는데 우리 어릴 때 살던 집구조랑 똑같았거든. 갑자기 초등학교 때로 돌아간 거 같아서 좁아서 불만이 생기기보다는 너무 재밌었어. 그때가 원재가 LG 다닐 때였는데 원재랑 밤새 수다 떨기도 하고.
근데 그러다가 지금 집으로 이사를 해서 방이 4개나 생기니까 거실도 넓고. 좁은 집에 있다가 이사를 가니까 그 쾌적함에 각자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러다 보니 서로 다 멀리멀리 떨어져 있고 대화도 줄고 집은 넓어졌는데 그만큼 우리 사이도 멀어진 느낌이었달까. 쾌적하긴 했는데 뭔가 외로운 느낌도 같이 있었어. 웃긴 건 그렇게 이사하고 시간이 지나니까 그 넓은 집에서도 옹기종기 같이 모여 있게 되더라고. 우리 가족은 원래 사이가 좋았으니까 넓은 공간이 주는 여유를 충분히 누리고 나니까 그 담부터는 다시 가족들이 식탁이던 가족실이던 소파던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있게 되더라고.
나는 이런 부모의 자기 삶에 대한 태도나 만족도가 아이한테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큰 거 같아.
우리 아빠와 엄마의 공통점이 있었다면 양쪽 다 현재 삶에 대해 불만이 없었어 분명 각자 일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었을 거고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힘들었을 텐데 우아한 백조처럼 잘 견뎌냈지.
우리도 우리가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면 윤후도 괜찮을 거야. 그리고 나는 지금 우리 집도 윤후에게는 충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 우리에게 좁을 뿐. 그리고 무엇보다 양가에 다 가까이 있으니까 자주 갈 수 있고 다양한 공간을 자기 집처럼 여기면서 지내는 게 훨씬 좋은 거 같아. 우리는 어른이니까 안 그렇지만 아마 윤후는 우리 집도 할머니들 집도 다 자기 집이라고 생각할 거야. 내가 어릴 때 그랬거든 ㅎㅎ 심지어 할머니가 대전 계실 때는 언제든 할머니네 가는 것도 부담이 없었고 가서 외숙모네 자는 것도 너무 좋았어 ㅎ 나는 그런 생활방식이나 마음가짐을 우리가 윤후한테 물려주는 것도 너무 좋다고 생각해.
어느 날 내가 결심해서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헝가리에서 윤후랑 최소 한 달 길면 일 년 정도는 있고 싶어. 유승이랑 태윤이랑 고모 고모부도 가족이니 언제든지 우리가 마음먹으면 같이 놀 수 있고 같이 지낼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거든.
우리가 지내는 공간의 사이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 마음속에 집이라고 여길 수 있는 공간의 사이즈에 제한이 없었으면 좋겠어. 자기가 중국에서도 살고 캐나다도 가고 미국도 가고 그랬던 것처럼.
사랑해❤ 자기랑 결혼해서 2년 동안 매일 나의 생각이 확장되고 꿈이 커지고 그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 같아서 좋아. 좋은 남편을 만나서 좋은 가정을 꾸리고 서로에게 좋은 가족이 되고 예쁜 아이를 낳아서 사랑을 담뿍 담아 키우는 게 내 꿈이었는데 2년 만에 모든 게 다 이루어져서 아직도 매일 너무 감사하고 신기해. 평생 행복하게 살자.
#230628 ***
#230717
우리 둘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던 신혼집.
거실, 방 1개, 부엌, 베란다로 이루어진 아담한 공간은 우리의 첫 보금자리로 손색이 없었다.
2021년 3월 2일 우리는 집을 계약하고 처음으로 우리가 함께 할 공간을 마련했다. 전세대란에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고 매물은 없어서 보지도 못하고 계약금부터 걸었던 집이었지만 처음 봤을 땐 기대이상으로 괜찮았고 첫 신혼집인데 그대로 살 순 없다고 엄마가 예쁘게 집수리를 해 주신 이후엔 흠잡을 때 없는 아담하고 포근한 우리 집이었다.
짧은 신혼 후 예쁜 윤후가 우리에게 온 후로는 집 안 구석구석이 아가용품으로 채워지면서 원래 너무도 우아하고 좋았던 우리의 가구들은 마치 애물단지처럼 구석으로 밀려났고 짐짝처럼 포개어져 갔다. 마치 곧 이사 갈 집처럼 혹은 막 이사 온 집처럼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두서없이 늘어져서 온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남편은 매일 한숨지었다.
"다른 건 안 바라고 건조기랑 식기세척기 들어갈 정도의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주차공간이 없어서 찾아 헤매는 것도 너무 스트레스고..."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엄마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명백한 "친세권"이었고 내가 어릴 때부터 살아와서 익숙한 동네였고 비록 내 집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집주인 보다 더 열심히 공들여 고친 집이었다. 그래서 우린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올해 3월 계약을 연장했더랬다.
윤후가 4월 정도부터 걷기 시작하면서 집은 더 좁게 느껴졌다. 물건이 많다보니 여기저기 부딪힐 곳도 많았고 윤후가 커갈수록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도 서서히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던 찰나 하재영 작가님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라는 책을 읽게 됐다. 그 책을 읽다가 문득 내가 한 시절들을 보냈던 집들에 대해 떠올리면서 지금 우리 가족에게 특히 윤후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이른 새벽 눈이 떠진 날 그 생각을 전하려고 남편에게 쓴 글이 바로 위의 편지이다.
여전히 매일 넓은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마음으로 이곳에 머문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처음 가족이 되어 마련한 첫 보금자리이고 결혼, 임신 & 출산, 승진, 이직 등등 좋은 일이 아주 많았던 집이니까. 얼마 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널찍한 리조트에 넓은 차보다도 복닥거리고 작지만 우리 집, 우리 차가 최고라도 둘 다 외쳤다. 뭐니 뭐니 해도 "집" 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