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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Veronica Nov 24. 2021

나의 마음이 닿는 기적. -환자-의사 관계

오늘도 나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별 탈 없이 보냈음에 감사하며.

오늘은 좀 덜 아픈 것에 감사하며.


아파서 잠을 설칠 때가 많은데 출근을 한 날에는 더 힘들어서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낮잠을 3~4시간씩 잔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덧 밤이 되어 다시 어떻게 자나 걱정하는 이상한 일상의 반복.


오늘은 정숭이가 오프라서 병원까지 데려다줬다. 어제도 낮잠 자고 10시에 깨는 바람에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잤는데 외래 내내 비몽사몽이었다. 무지 바쁘고 정신없는 외래였는데 이제 전공의 시절 외래도 한 번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싱숭생숭했다.


지난주에 내가 F/U 하는 환자들이 내 외래에 마지막 방문을 했다.


"제가 전문의 시험을 준비해야 돼서 다음 달은 제 외래가 없어요~내년에는 다른 병원에서 일하게 돼서 이제 환자분 뵙기가 어려울 텐데 다른 선생님들이 잘 봐주실 거예요~"


환자들이 그동안 감사했다고 아쉽다고 한 분 한 분 인사를 해주시는데 뭉클했다.


특히 6개월 전에 처음 왔던 alcoholic 환자분이 오셔서 마지막 진료를 봤다. 6개월 전부터 금주를 시작하셨는데 환자분 혈색도 검사 결과도 몰라보게 좋아지셨다.


"선생님 덕분에 다시 태어난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제가 아픈 데가 많아서 병원 다니면서 여러 의사 선생님을 만났지만 선생님이 진심으로 얘기해주셔서 제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야말로 전공의 하면서 환자분을 만나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저처럼 경험이 부족한 의사의 말을 진심 어린 조언으로 들어주시고 쉽지 않은 일인데 지금까지 잘 따라와 주셔서 이렇게 건강해지신 모습을 보니 제가 오히려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 잘 유지하세요!"


아버지뻘 되는 환자분이 수줍게 감사인사를 건네는데 나도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됐다는 말에 너무 잘 됐다고 축하한다는 말도 잊지 않으시고 병실을 떠나면서 서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온 환자분은 면담을 하시더니 "선생님 말을 들으니 몇 주 동안 계속 불안했는데 좀 괜찮아진 거 같아요.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내가 뭐라고..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참 기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이미 몸에 좋은 게, 마음에 좋은 게 어떤 건지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다만 누군가 나서서 동기부여를 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그것을 실천하기엔 너무 어렵다. 의사인 나도 바른생활을 실천하기 어려운데 환자는 오죽할까. 그래도 의사니까 내가 해주는 말은 가족들이 하는 잔소리와는 다른 공신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모든 환자에게 애정 어린 잔소리를 꼭 한다. 비록 대부분이 흘려들을지언정 한 사람이라도 그 말을 듣고 조금이라도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길 바라 서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 닿는 것은 기적과도 같다.


전공의를 하는 동안 말 한마디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적을 몇 번 체험했다. 어차피 죽을 거.. 라던 사람이 다시 살아보겠다고 했고 그냥 대충 살 거라던 사람은 자기를 좀 더 소중히 해보겠다고 했다. 그건 절대 내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다들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병원에 왔기 때문에 면식도 없는 나의 사소한 관심이 그 사람들의 마음을 찔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뜬금없는 타이밍에 갑자기 마주한 기적에 더 감사했다. 더 겸손해지라고 치료는 네가 하는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할 수 있는 거란 걸 깨달으라고 하늘이 주는 계시 같았다. 나는 그저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GP 1년, 인턴 1년, 전공의 3년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많은 분들을 위해, 많은 분들과 함께 기도했다. 오늘도 무사한 하루를 보내기를 기도하고 하루가 끝나고 감사기도를 올렸다.


오늘도 감사하다.

당신이 나와 함께 이곳에 있어서.


#감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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