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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Veronica Mar 19. 2022

300일 축하해!

너의 아내여서 행복해

#210523 #D+300 #220318

'소중한 인연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성가정을 이루는 날,

오셔서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주시면

베풀며 사는 따뜻한 부부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약속했던 부부가 300일이 지나서 부모가 되었다.


결혼이란 게 내게 너무 먼 일 같았는데 예기치 못하던 순간에 인연이 나타나 사랑에 빠지고 믿음이 쌓이고 결혼을 결심해서 무사히 관문을 통과하고 가정을 꾸린 지난 2년이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결혼을 한지 불과 1달 만에 찾아온 소중한 생명이 뱃속에서 건강하게 잘 커서 드디어 22년 3월 16일 오후 1시 8분, 우리 소중한 복덩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제 됐다" 싶었다.


수술실을 들어가기 직전에 혹시나 잘못되는 건 아닐까 너무 무섭고 걱정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 수술방으로 들어가기 전 말을 삼키고 삼키다 마지막으로 한 말은


"혹시나 일이 잘못되면 엄마한테 잘 말해줘."


였다. 세상 제밀 큰 축복이 있는 날이지만 집에서 기도하고 있을 엄마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출산은 예측불허니까.


복덩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역할, 새로운 생명을 무사히 세상에 나오게 하는 임무를 다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가장 컸다. 그리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마취에 깨서 병실로 와 첨 마주한 남편의 얼굴은 나보다 더 핼쑥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수술 들어가고 10분 정도면 아가가 나온다고 했는데 30분 정도 지체되어서 혹시나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노심초사 걱정했다고 한다. 그 불안함과 초조함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둘 중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앉고 나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심적 압박감이 컸나 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다른 공간에서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다니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마취가 풀리고 통증이 시작되면서 나는 거의 신생아가 되었다. 거동이 불가했고 혼자 물을 마실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씻을 수도 없었다.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할 수 없으니까 남편이 내 손과 발이 됐다. 정말 미안할 정도로 꼼꼼히 챙겼고 너무 감사하게 살뜰히 돌봐주었다. 표현은 크지 않지만 진심 어린 사랑이 느껴져서 참 고마웠다. 오죽하면 '나중에 이 사람이 병들고 힘이 없어지면 내가 잘 돌봐줘야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부부의 연이란 게 완전 남이 하나가 되는 건데 부모 외에 나에게 이렇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감사했다.


손을 꼭 잡고 복도를 산책하면서 '따뜻한 사람이랑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삶이어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떠올랐다.


하루가 지나고 오늘은 조금 인간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게 됐다. 한 몸으로 걷고 씻고 먹고 하면서 하루 사이에 우리 관계의 깊이가 훨씬 깊어졌다. 코로나라서 아직 복덩이를 안아보지도 못했는데 우리 둘은 벌써 고슴도치 부모가 돼서 서로의 닮은 구석을 찾으면서 깔깔대고 예쁘다고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아직 몸은 너무 아픈데 행복지수가 훨씬 높아 엔도르핀이 마구 돈다.


모두가 우려하듯이 육아는 모든 일상을 바꾸고 이제 되돌릴 수 없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것처럼 행복하게 셋이서 잘 해내리라 믿고 싶다. 지금까지 잘 해온 것처럼 평화롭게 씩씩하게 행복하게.


300일 동안 옆에 든든히 있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 300년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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