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꼭 가야됨
윤우가 학원을 마친 야심한 밤 9시...
나는 차에 타는 윤우에게 은밀한 신호를 보냈다.
나 : 유누야... 저녁 잘 먹었어? 배 안고파?
유누 : 응 오마뎅도 먹고 들어가서 배는 안고픈데 또 오뎅 먹고싶어. 저번에 엄마랑 간데 거기!
나 : 아 서래오뎅... 거기 좋지. 근데 혹시말야..
유누 : 어 뭐?
나 : 타코야끼는 어때... 우리 너무 오래 안먹었는데.. 먹어줄때가 되지 않았어?
유누 : 맞네! 타코야끼 못참쥐~~~!!
이렇게 빠른 의사결정으로 야식메뉴를 합의보고
차를 집 앞에 휘리릭 대놓고 끈적한 윤우 손을 달랑 달랑 붙잡고 타코야끼집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에 횡단보도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철량한 가을바람이
윤우와 나를 한바퀴 시원하게 감싸주었다.
그러자 윤우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로 어여쁜 말을 시작했다.
'엄마~ 윤우는 봄이랑 가을이 제일 좋아'
'어머 맞어 나도 봄 가을 너무 좋아해! 윤우는 봄이랑 가을이 어떤게 좋아?'
'응~ 봄은 두 가지가 있는데, 봄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데 뭔가 따뜻해.
그리고 뭔가 봄에는 연두빛인데~ 유누는 그런 연두색 느낌이 좋아.
가을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데 시원해. 그래서 좋아. 가을은 (좋은 이유가) 한개야!'
종알종알 예쁜 입으로 예쁜 눈으로
신이 나서 자기가 좋아하는 계절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아들과
그 손톱에 때가 낀 귀여운 작은 손을 꼭 붙잡고 타코야끼를 먹으러 가는 내 마음은
그야말로 연두빛이었다.
내 생애 내가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가 지금 아닐까 싶었다.
타코야끼는 7알에 5천원이다.
포장하면 14알에 9천원이지만 홀에서 먹을때는
어차피 7알에 5천원 뿐이라 우선 7알부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항시' 다이어터다.
그래서 오늘 회사에서 야근을 할 때도 미리 준비한
연어샐러드 한바가지 (한그릇이라기엔 넘치는 실한 양이라 한바자기가 맞다) 이미 먹었다.
그래서 양심상 한번에 14알 못키시고 7알만 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윤우는 14알을 시키자고 한다.
'유누야 그럼 내가 딱 2알만 먹을게 너가 5알 먹어. 그럼 되었지?'
딜을 넣으니 유누가 또롱 또롱한 눈으로 한번 고개를 갸웃하더니 알겠단다.
드디어 나온 뜨거운 타코야끼!
동그란 타코야끼들 위에 달짝지근한 데리야끼 소스와 마요네즈 위에 가쓰오부시들이 난리났다.
춤추는 가쓰오부시들을 윤우가 먼저 점령한다.
그렇다고 내가 침략 당할 수만은 없다. 재빠른 젓가락질로 일단 완벽한 한알을 사수..
(완벽한 한알은 한알 + 소스 듬뿍 + 가스오부시 360도 쳐발쳐발)
뜨겁지만 한입에 와앙!! 넣으면... 하.
이게 부드러우면서도 표면이 살짝 쩐덕하면서도 덜뜨거운 표면을 입에서 굴리다가
이빨로 살짝 깨물어주면 훨씬 더 뜨거운 안의 촉촉한 부분과 함께
아주 쫄깃쫄깃 실한 문어조각 (운 좋으면 두조각!!)을 같이 씹게 되는데
뜨거워 미칠거 같을 때 같이 주문한 생맥주를 크어어어 들이켜주면
그냥 너무 완벽한 한 입인 것이다.
한 입이 너무 빨라서 똑같이 한 입 더 먹으니
약속된 두 알이 순식간에 끝났다.
시무룩한 얼굴로 윤우한테
엄마 한알만 더 먹고 싶은데... 하고 8자 눈썹을 최대한 불쌍하게 해보이자
왠인인지 평소와 다르게 대인배처럼 한알을 척 내 그릇에 넘겨준다.
(물론 가쓰오부시는 없음...)
가쓰오부시가 없어도 타코야키 세번째 알도 완벽했고
결국 7알은 순식간에 동나서 나는 첫번째 7알이 다 나오기도 전에
"사장님~ 7알 추가로 주세요~" 해야했다.
그냥 처음부터 14알 시키면 되는데 왜 ^^
결국 나는 생맥주 반잔과
총 몇 알이었는지 모를 타코야끼를 두둑히 먹고
기분 좋게 또 가을 바람을 선선하게 마시며
윤우랑 털레 털레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물론 남편꺼, 첫째꺼 두둑히 14알 추가로 포장해왔다.
윤우가 좋아하는 봄 가을에는 무조건 한번씩 잊지말고
한입 타고야끼 먹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맹세했다.
은밀하게 초등학교 2학년이랑 즐기는
한 밤의 타코야끼 데이트는
정말 마음이 간질간질하고 달큰하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