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을 쓰고 싶다

by 한국인 조르바

오랜만에 문학 책을 다시 잡고 읽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래 구절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하루를 시작하려는 옅은 새벽빛이 말할 수 없이 차갑고 냉랭한 잿빛의 대기 속에서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

“I drew him out into the open air. The first horizontal streaks of dawn glimmered unbelievably cold and joyless in the grey air.” <Demian>, Hermann-Hesse.


그리고 더 오래간 만에 글을 써봤다.

* * *

요즘 영상 촬영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일 말고 개인 취미 용으로 말이다.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드론도 꺼내서 며칠 연속으로 띄워도 보고 해가 뜨거나 질 무렵 혹은 안개가 자욱할 때 (우리 동네가 분지라서 그런지 안개인지 스모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끼는 편이다) 집 밖에 멀리서 보이는 산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 렌즈를 바꿔가며 녹화 버튼을 누른다.


지난 주 목요일 쯤인가 이른 저녁에 온 동네의 거리 곳곳이 주황, 빨강, 분홍으로 꽉 차 물드는 저녁 노을이 있었다. 그게 구름이 적당한 양으로 있거나 날씨가 내일 흐릴 양이면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해나 말로는 이웃집 사람들도 집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때 나는 지하 방에서 창문 블라인드를 닫아놓고 회사 일에 매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 내가 그런 노을을 봤다만 잠옷 바람에라도 카메라나 드론을 들고 뛰쳐나갔을 것을 알지만 그 당시 내가 가족들에게 내려와서 일을 방해하지 말고 용건이 있으면 문자를 보내라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이 특별한 상황에 내가 받은 알림이란 음소거 모드로 맞춰 놓은 핸드폰에 “하늘 좀 봐!” 문자 한 통이었을 뿐이었다.


해나가 휴대폰으로 몇 장 찍어놓은 하늘 사진을 나중에서야 보고 탄식을 했지만 이미 늦은 것을 어찌하랴. 그 후로 며칠 간 매일 해질녘에는 창문 블라인드를 올려놓고 계속 확인을 했다. 괜찮은 노을들이 이틀 정도 있었고 그 때 마다 카메라, 드론 촬영을 모두 했지만 해나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내가 놓친 그 날의 경관만큼은 미치치 못하는 듯 했고 나는 아쉽게 언제 올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어제도 잠깐 밖에 나갔다. 해가 뒷 산으로 완전히 떨어지기 전 어느 새 하늘에 스며든 주황과 분홍 사이의 아무리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차분한 경이의 색이, 화선지에 붓 끝으로 살짝 눌러 퍼져가는 수채색이 아스라이 옅어져 어둠으로 사라지기 전에 카메라로 담아내는 것이다.


인상 좋아보이는 청년이 기름진 머리에 헤드폰을 쓰고 다가 왔다. 허름한 검은 자켓 사이로 불쑥 나온 아랫배, 휘적거리는 팔자걸음, 약간 헤퍼보이는 그의 미소가 대충 어떤 사람인지를, 그리고 아마 나에게 말을 걸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멋진 하늘이지요!”


나는 “네”라고 미소로 응답했다.


“특히 우리같은 예술가들에게는 말이죠.” 그는 그렇게 덧붙이더니 그의 꽁무니를 아까부터 계속 쫓아오며 짖어대던 똥개에게 대화를 시도하며 개 주인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며 개를 몰고 사라졌다. 착한 심성의 사내였다.


그렇지만 예술가라니!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단지 내면의 무언가를 쏟아내고 싶을 뿐이다. 무언가로 승화하고 싶은 것이다. 가장의 무게를 어깨에 느끼고 일에 치여살다보면 마음 속에 용암처럼 뭔가 조금씩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사람 때가 없는 자연 속에 은둔하고 싶은 욕망이며 예전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나 비탄스러웠던 유소년 시절에 너무나 익숙해졌던 설움의 늪 속에 다시 깊게 가라앉고 싶은 욕망이다. 어쩌면 “정죄받은 자들의 슬퍼함”이 다시 손짓하는 유혹이다.


이런 욕망들을 분출하기 위해 축구도 다시 차보고 피아노도 배워보려하고 필름도 찍어보곤 하지만 역시 내게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내 부족한 영어 작문실력으로는 아직 이 열망을 시원하게 빈 종이 안에 쏟아내기가 쉽지 않아서 병목현상처럼 답답할 따름이고 한글로는 내가 글을 이렇게 오래 써 본적이 지난 10년간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


중학교 1학년 쯤 내가 그린 이상적인 미래상의 하나는 미출판된, 훗날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세간에 걸작으로 인정받을 작품을 한 권 써놓고 단칸방 아파트의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둔 뒤 “더블린 사람들”에서 읽었던 아일랜드의 허름한 술집에서 실컷 퍼마시다 달 빛 아래 골목길에서 하수구에 얼굴을 처박은 채 단명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지금의 내 삶의 순간을 보고 있으면 나는 이제 신앙을 차근 차근 쌓아가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는 어느 정도 자아의 성장에 필요한만큼 선과 악의 세계를, 특히 내적인 면에서 고루 경험했다고 본다. 여기서 성장이란 어느 한 쪽에 휘둘리기 보다는 삶에 내재한 충동과 감정, 그리고 이성적 인과관계들을 이제 좀 더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지켜볼 수있는 수준을 의미한다. 신앙이 좀 더 내 삶에 자리를 잡은 후, 마치 선악과를 다시 먹고 눈을 뜬 것 처럼, 기존의 종교와 철학의 한계와 오류를 벗어나 더 높게 더 멀리 삶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중학생 시절의 나의 글쓰기에 대한 이상이 이제는 데미안처럼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와, 그 허세와 가벼움을 떨쳐내고 끝내 하나의 글로 승화되어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에 영향을 준다면 그제서야 나는 뭔가를 성취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 영향이 꼭 뻔한 선으로 치장될 필요는 없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깨우는 봄비같은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