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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Oct 26. 2019

안개꽃을 보며 번역을 떠올리다

안개꽃을 참 좋아합니다.

물론 장미, 튤립, 백합처럼 한 송이의 존재감이 큰 꽃도 예쁩니다.


안개꽃은 사실 그 자체로 주목받기보다 다른 꽃들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꽃송이가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떤 모양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작은 한 송이 한 송이가 모여 만들어내는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그 편안한 화사함을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번역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번역은 글을 옮기는 일이지만 알고 보면 출발어를 그대로 옮긴다기보다는 번역 투가 최대한 덜 느껴지도록 다듬고 또 다듬는 수고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죠. 번역가는 주인공인 원작을 빛낼 수 있도록, 대다수의 사람이 주목하지 않을지라도 혼자 열심히 꽃을 피우는 안개꽃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구슬땀 흘리며 피운 한 송이 한 송이가 모여 장미도 튤립도 백합도 예쁘게 받쳐주고, 또 아주 가끔은 자그마한 꽃이 예쁘다며 자세히 봐주는 사람도 만나고. (독자 분께서 서평에 번역이 잘 됐다는 언급을 해주시면 이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번역을 하면서 안개꽃을 좋아하게 된 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작은 꽃을 좋아했어요. 길을 걷다 이름 모를 자그마한 꽃송이를 보면 한참 동안 들여다보곤 했죠. 요렇게 쪼그만 꽃이 어쩜 이리 깜찍하고 야무지게 피었을까, 신기하네, 하면서요.


그냥 번역을 하다 잠깐 게으름 피우고 싶어져 요리조리 딴생각을 하던 차에 좋아하는 안개꽃과 좋아하는 번역의 공통점을 내키는 대로 갖다 붙여 봤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안개꽃 같은 번역가가 되기를 소망하며 일할 겁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면서도 틈틈이 딴생각도 하고 번역을 하다 말고 딴 길로 빠져 뜬금없이 글을 쓰기도 하면서 꾸준히 천천히 지치지 않고 나아갈 거예요.


모두가 그렇게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걷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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