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승진 코스 따라갈 때 무급휴직을 때려버린 한 공무원의 정신승리 방법
辯
이 날은 나의 무급 휴직이 시작된 날이다.
상사스트레스는 당연히 기본값으로 있었다. 이건 뭐 나만이 겪는 일은 아니니까. 일이 많았냐? 그냥 저냥 나의 직렬 공무원 안에선 충분히 쳐낼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근데 왜 휴직했냐고? 글쎄... 남들에게는 엄청난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낸 결론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 그냥 가끔씩 생각해 오던 걸 실천했을 뿐이다.
나의 나이 36세. (고맙게도 정부에서 올해부터 나이를 깎아주셨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타이틀 덕분인지 주변엔 유부남 유부녀들이 천지이다. "왜 아직도 결혼 안하냐?"는 뭐 매일 아침 들려오는 인사처럼 듣는 말이었고, 연애도 안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 나를 외계인 취급하는 분위기도 스멀스멀 피어난다.
그러게 왜 난 결혼도 안하고 연애도 안하지? 나는 그냥 되는대로 별 생각 없이 살고 있을 뿐인데, 좋은 사람을 만나면 연애도 결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게 아닌가? 굳이 남들 발맞춰서 허겁지겁 빨리 사람을 만나 결혼은 해야하나? 아 그리고 그들은 정녕 결혼해서 행복한가?
이런 생각이 몇년 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마지막엔 하나의 의문만이 남았다.
대체 뭘 하고 싶은걸까. 그냥 무미건조하게 매일 출퇴근하는 건조한 일상을 견디며 사는거? 나는 도저히 그럴타입이 못된다. 코로나 이전에는 두 달에 한 번씩 해외를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그저 집에만 머무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번인 그 건조한 일상 자체를 완전히 박살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럼 어떻게 박살내지? 그래. 해외에서 아예 몇 달 살아버리는 거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말이 안 통하는 다른 나라에서 지금 내 일상을 다 박살내고 새로 시작해보는거야. 그러면 또 뭔가 다른 종류의 인생에 대한 욕망이 생기지 않을까? 몇 번의 반복된 생각의 결과는 해외 어학연수였다.
어학연수를 가려면 일단 휴직을 내야 하는데, 공무원은 임용 이후 근무년수가 5년이 넘어가면 "자기개발휴직"이라는 것을 쓸 수 있게 해준다. 반년 혹은 일년 동안 자신이 원하는 강의를 듣거나 연구를 하면거 말그대로 자기개발을 할 수 있는 휴직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쓰는사람은 많지않다. 무급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결혼해서 애까지 달린 경우에는 아무래도 쓸 수가 없을 것이다. 즉 미혼의 특권아닌 특권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기혼자도 쓰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이런 좋은 제도를 놓칠수없지. 통장에 모아놓은 소중한 내 돈을 거진 탈탈 털어야겠지만, 지금 나이에 이런 기회 놓칠수없다. 바로 시원하게 휴직을 질러버렸다. 부모님도 동료들도 지금 승진을 바라봐야할 판국에 어딜떠나냐고 돈은 돈대로 날리고 승진도 밀리고 너무 손해가 많은 결정이라고 말렸지만, 이미 결심은 굳힌지 오래였다.
36세. 미혼. 물론 돈이 아주 많~이 들겠지만, 직장인으로 살면서 이만한 기회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다면 질러야지. 그리고 떠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