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대학 동기들이 몇 없습니다. 그 작디작은 인맥 속에 벌써 결혼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오늘은 연말, 분위기 좋을 때 결혼한다는 두 친구들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지난달, 정말 몇 년 만에 예빈이에게 청첩장을 받았습니다.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신기하고 경외롭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싶다가도 어쩌다(?) 벌써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아직도 낭만 타령 해왔던 저와는 다르게 벌써 어른 다 됐다 싶었습니다. 제게 결혼은 정서적으로 성숙한 두 사람이 적당히 오랜 기간 만나 서로의 경제적 요건과 상황이 맞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너무 먼 일 같았지만, 이 친구에게는 그런 상황에 맞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한편 신기하고 부러웠습니다. 어느 정도 사회에서 자리 잡고 와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니까요. 저는 둘 다 아직 못 가져본 것이라 문득 외로워지기도 했고요.
예빈이를 만났을 때, 전과 다르게 성숙한 모습으로 언니를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술을 즐기지만, 현실적이고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 담긴 이야기들을 해주었습니다. 몇 번의 이직과 그 안에 숨겨진 노력들. 제가 가려고 하는 길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들을 듣기도 하고요. 바쁘게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들이 모여 성숙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직 갖추지 못한 모습들입니다. 그나저나 스무 살에 만났던 우리가 각자 살아온 흔적들을 이야기하는 데에 참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결혼 잘 하구 꼭 또 만나자~)
그리고 어제는 또 다른 동기, 지민언니를 만났습니다. 언니는 제게 각별한 동기였습니다. 스물 한 두어 살쯤 함께 부산여행을 떠나 베스트웨스턴 호텔에서 창 밖에 공연을 내려다보며 저녁을 보냈던 날, 늦은 밤에 끝나는 수업에서 집에 함께 가는 길, 혜화에 있는 라이브 재즈바에서 처음으로 재즈 공연을 봤던 저녁. 그런 것들이 아주 오래전 일 같으면서도 어제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맑게 갠 미소를 짓는 언니를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 해졌습니다. 그 옆에는 곧 남편이 될 분과 함께요. 둘이서 작게 꽁냥 대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시집보내는 느낌이 들어 흐뭇하기도 했네요.
실은 결혼 소식만을 전해 들었을 때는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나와 가장 가까웠던 한 사람이 새로운 가족을 꾸린다는 것이 안 믿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접 남편 될 분을 뵙고 인사드리니 정말로 그날이 머지않았구나 싶어 졌습니다. 또 사이좋은 두 사람을 보니 일면 부러움도 느끼고요. 서로 아껴주는 모습을 보니 나에게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으로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온다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요. 참. 저는 부러움을 잘 느끼는 사람이구나 다시금 느꼈습니다.
전보다 훨씬 밝게 웃는 언니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와인바에서 이런저런 불만을 이야기했을 때도 꽤 즐겁지만 남 사랑 얘기 듣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아~ 가장 크게 싸웠던 일 물어볼걸... 재밌는 얘기를 놓쳤네요... 무튼 어떻게 만났고 어디가 좋고 이런 오글거리는 이야기도 신혼에게는 깨 볶는 에피소드들이지요. 덕분에 광대 아프게 웃고 왔습니다.
우연히 때가 맞아 기대치 못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알아가고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꾸 우리는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습니다.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 그런 사람을 만났으니 정말 기쁩니다. 두 친구들의 결혼 모두 축하하고 조만간 결혼식에서 가장 예쁜 모습들로 만날 날을 기대할게요. 지지고 볶으면서도 소소하고 평온하게 행복한 결혼 생활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