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가을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여러가지 내 스스로에 대한 글을 썼지만 타인이 나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는 것과 모든 것은 환경(가정환경일수도 주변인들 때문일수도 있고..)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모든 결정에 앞서 다른사람에게 물어보기 급급했다. 다른 사람과 내 의견이 다르면 뭔가 찝찝해서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물체의 단면만 봐서는 어떤 모양인지 짐작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사실 현상의 단면만 들은 사람들이 결정하는 내용은 내면을 파악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런 것들을 잘 알고 있고, 사실 나는 내가 원하는데로 할 확률이 높다는걸 안다.
나에 대한 글쓰기를 할 때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적어왔고, 친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 우울해했으며 집에 혼자 있을 때면 괜히 외롭고 아웃사이더가 된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는 그게 정말 옳은 길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랍시고 다른 사람을 과하게 의식하고 의지하려 한건 아닐까?
언스크립티드는 각본 속에서 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Chapter별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Ch 4.
어떤 규칙, 사회적 관행, 문화적 규범들을 전제로 받아들이고 이의 없이 따르는가?
그런 개념들이 당신이 꿈꾸던 인생을 가능케 해주었는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가득 채워지지 않은 빈칸에 아쉬움을 느꼈다. 내 스펙이 어떤지 마치 전시장에 전시한 것 마냥 카페에 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저마다 자격증이 아쉽네요, 어학 성적이 부족해보여요 하는 코멘터리를 보면서 나는 아직 좋은 직장에 가기는 어렵겠다 판단했다.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보면서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더 준비된 사람이라 생각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욕심냈다.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명목으로 열심히 했다. 그럼에도 남은건 자잘한 월급.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꿈꾸던 인생은 뭐였을까. 제주도에 혼자 갔었을 때 마라도에서 젤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맥주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내 모습을 찍었다. 그 때 남긴 사진들을 보면서 적어도 한 해에 한 번 씩은 자연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람멍, 물멍(?) 때릴 수 있는 그 때가 기억난다.
소소하게 모았던 돈으로 나는 뭘 할 수 있었을까. 좋은 휴대폰, 노트북을 가지게 되었고, 집에 가구들을 가득 채울 수 있었지만 지금와서는 덤덤해졌다. 물건은 곁에 있으면 소중한 지 모르게 되는 것 같다. 그냥 집에 있는 것. 그게 나를 행복하게 해줬을까? 이제는 모르겠다.
Ch 5.
누가 혹은 무엇이 당신의 '보스'가 되어버렸는가?
학자금 융자로 인한 빚더미? 직업? 자동차 할부? 주택담보대출? 가족이나 동료의 보이지 않는 기대?
필히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신용카드와 고정비용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먹고 자는데만 해도 숨쉬듯이 돈이 나간다. 돈을 벌면 스트레스를 받고, 돈 쓰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지만 다시 그 돈은 다음달의 내가 갚아야 하기에 챗바퀴를 굴리듯이 매번 같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도 마음속에는 빚처럼 자리한 것 같다. 내가 평생 책임져야 하는 식구.
Ch 7.
현재 당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파종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당신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줄 의사가 있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최선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가?
아이러니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브랜딩을 배우면서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고객 본인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이 책에서는 행복과 사회적 신분이 브랜드 소비를 통해 결정된다고 믿게 만드는 기업을 비판한다.
책에서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상태에 머물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용 가능한 의견의 스펙트럼을 엄격하게 제한하면서도 그 스펙트럼 안에서는 활발한 논쟁이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언론이라 말한다.
최근에 꼬꼬무(TV 프로그램)를 열심히 보는데 이전 정권 (특히 독재 정권) 이야기를 자주 다루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언론을 좌지우지 했던 과거의 내용들을 보며,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고하게 되었던 국민들이 떠올랐다. 나의 조부모 세대는 여전히 그때가 살만했다고 말하며, 성장을 이룩했으니 희생은 자명했다고 말한다. 이야기 속에서 무고하게 스러진 시민들의 삶이 나온다. 그걸 보고도 여전히 그때가 그립다고 말하는 그들은 얼마나 오랜시간 당연하게 사고하게 되었나 돌아보게 된다.
Ch 8.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가장현실이 지배적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지각함으로써 앞으로 가장현실을 다루는 방법이 바뀔 것인가?
소비주의. 내가 가진 것과 나는 동일하지 않다. 값어치 있는 물건을 사야한다는 말에 공감하고 어떤 브랜드의 상품을 이용하는지 보고 그를 판단했던 적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그게 행복이라고 자부했을 때도 있다. 그것은 할부금을 만들었고 신용을 좌지우지 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겠다는 명목으로 이것저것 버렸을 때도 있다. 다만 신념을 바꾸지 못한 행동은 그냥 그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오히려 비싸지 않은 물건들을 자주 소비하면서 또 버리고, 모으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요상한 행동을 하면서 내가 참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물건을 구매하는 시기와 금액이 줄고 있다. 물건을 갖는다고 내가 행복해지는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것 말고도 소비할 길은 많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돈을 쓰고, 읽고 싶은 책을 사고, 배우고 싶은 운동을 배운다. 이제는 그게 진정 나를 충만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Ch 13.
스스로 '열받으라'의 5가지 자유가 풍성한 존재라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당신은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고 있을까?
일을 하지 않을 때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히려 일 안할 때가 인생이 더 권태로워진다.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상황이 설령 각본일지라도 즐겁다. 당연히 그런 제약 없이 만나는 것이 더 행복하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진다면 나는 오히려 물건을 그만 사모을 것이다. 언제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물건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 당장에 갖고싶은 물건이 있어도 시간을 좀 보내고 나면 쓸모 없게 느껴지거나 막상 갖고, 용도를 다하게 되면 실증난다.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이것도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는 걸 잘 알게 된다. 다만 구매 버튼을 클릭하는 그 순간. 택배 박스를 열어보는 그 순간순간에 짧은 재미를 위해 오늘을 사고 내일을 팔아왔다.
책에서는 미니멀리즘과 결이 다르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동일 선상으로 느껴진다. 물건에 종속되어버리지 말고 진짜 원하는 것만 갖는 것. 적은 소유지만 많은 내적 풍요를 갖는 것. 내 가치관에 위배되지 않는 소비를 하는것.
결국 내가 5가지 자유가 넘치게 된다면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진솔하고 건강한 내면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자연 속에서 바람을 만끽하고 싶다. 건강하고 소담한 음식을 먹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부대끼며 쉬기도 하고 뛰어놀기도 하고 보드게임 같은걸 막 하다가 투닥투닥 하는 것이 좋다. 질문거리가 있는 책을 읽고싶다. 제약 없는 삶을 산다면 나는 그렇게 하루를 보낼 것이다.
Ch 18.
평범은 비범의 아버지가 아니다. 결과 vs 과정
학교에 다니면서는 팀 과제를 할 일이 많이 있다.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대해서 조사하고 발표할 일이 많이 있었는데 함께 첫 주제를 정할 때 참 많이 나오는 말이 있다.
"이 주제가 조사하기 쉬울 것 같아요." "이 기업이 정보가 많네요." "이렇게 하면 점수 잘 받을 것 같아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사실 점수에 큰 미련은 없어서 어찌 되었건 이 수업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 배워갈 수 있는 것은 다 가져가고 싶은 나에게는 너무 결과 중심적 사고다. 뭐가 되었건 점수만 잘 받으면 된다니.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띵했다. 성과, 결과에 치우친게 다수였다는 점이 그랬다. 나의 초점도 흐려지려 하는 차에 이 책을 본 것같다. 그래서 더 공감가고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새벽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쓴다. 당장의 변화는 없다. 결과로 기대하는 것도 없는 행동이다. 다만 덕분에 아침잠을 깨고 머리를 식히고, 내 편협한 관점을 돌아보고 구루들의 얘기를 활자로 접한다. 결과를 달성하면 그게 끝이지만 이 일은 끝이 없다. 게다가 쉽지도 않다.
책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모든 유의미한 것의 시작은 시시하다", "위대함은 많은 작은 것들을 매일 실천하는 데 있다." 시시한 일을 반복적으로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아래 내가 좋아하는 몇 개의 트위터 캡쳐본이 있다.
Ch 19
난 그걸 별로 잘하지 못해요. 고정 vs 성장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 중에 "나이 50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들"이라며 올라온 내용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초년 성공은 오히려 인생의 독이 된다는 것." "인생 대박은 쪽박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서도 그렇다. 재능이 뛰어나고 능력이 좋다는 고정관념이 사실 나를 발전시키기 보다 현실에 안주하고 내 잘남을 보여주는데 혈안이 된다는 거다. 아이러니하지만 맞는 말 같다.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은 결핍에서 나왔다. 나는 항상 뭐가 좀 부족하다. 100점을 맞은 경험은 거의 없고 그렇다고 뭐 하나 쉽게 얻어지지도 않았다. 항상 하는 만큼 결과가 나왔다. 확실히 이번엔 열심히 안했다 싶으면 결과도 처참했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다.
피터지는 노력을 해온 건 절대 아니다. 불같이 활활 타면 금방 식어버리는 마음 덕분에 그냥 천천히 오래 뜨끈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매일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를 달성하려고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게 어디있겠나 싶은 그런 마음이다.
Ch 21, 22
돈 vs 가치
이기적 vs 이타적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이다. "어디를 가든 나는 나의 삶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학습과 오락으로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이 예술가와 발명가와 기업가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이 모든 사람들은 부자가 될 자격이 있다."
각종 언론과 매체에서 다뤄진 부자는 다소 악한 이미지가 팽배해 있다. 그걸 보면서 자라온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가 뇌리에 남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유명인들은 하나같이 부자지만 그를 과시하지 않았고, 금전적인 것 보다 가치를 중시했던 모습이 보인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유재석님이나, 골목 상권을 부흥 시키고 농작물 구매를 권고하는 다양한 TV 프로에 나오고 있는 백종원님, 아이들의 문제행동(이라 쓰고 부모의 문제행동이라 부른다)을 교정해주는 오은영님을 좋아한다. 이 분들은 물론 부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세분이 TV에 나와서 하는 말들이 부를 창출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이기 보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가치를 우선했고, 이타적이었으며, 부는 따라온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해 인상 깊게 본 인터뷰가 있다. 아래는 소녀시대 서현의 인터뷰이다.
Ch 23
게임을 뛰지 않으면 승리도 없다. 운 vs 확률
나는 운이 좋아서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한 집에서 태어났다. 덕분에 일찍이 용돈을 벌어야 했다. 남들 다하는 서비스직보다 내가 잘 하는 사무직종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사무보조 알바 기간을 오래 유지했고 운이 좋아서 요기요 계약직 면접에서 이를 좋게 보고 입사하게 되었다. 근무하며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로 인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된 것도 참 운이 좋다. 일하는 중에는 OA 프로그램은 완벽하게 익히자는 마음으로 공부해서 어딜 가서든 해낼 수 있는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회사에서 봉사활동 열심히 하는 남자친구도 생겨서 덕분에 공백기에는 봉사활동을 다니게 되었다. 봉사활동 경험들이 쌓이니 자존감도 높아지고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멘탈도 건강해지고 몸도 건강해졌다.
운 좋게 인턴활동이나 아르바이트 면접에 번번히 떨어져서 남들보다 면접의 기회가 2배는 많았던 것 같다. 이제 그런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어딜가든 자신있게 해낼 수 있다. 인턴, 알바, 계약직으로 일해서인지 여러가지 툴을 사용해볼 일도 많았으며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 경험 외에 이론적으로도 갖출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했다.
운은 적용된 자극의 수학적 확률에 반응한다고 한다.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에 해석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선택했고 내 운을 보다 긍정적인 신호로 바꿨다. 내 운을 바꾸니 내 삶이 바뀌었다.
Ch 26
편향 : 뇌의 망상. 진정한 당신 vs 당신의 뇌
각본 탈출을 위해 알아야 하는 편향으로 7가지가 나와있다. 그 중 변화 거부와 자기 옳음에 대한 내용이 인상깊다.
언젠가 엄마와 아침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내가 자주 조언을 구하고는 기대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고 이야기 했다. 오랫동안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게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의견들을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수용하고 자기 옳음을 줄여나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 놀랐다. 여전히 나는 확고한 자기 옳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가 싶다. 근래에는 남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옳다고 여겨지면 내 생각을 전환하는 것도 쉬워졌다.
한 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타고나는 성질머리는 어떻게 해서든 바뀔 수 없다고. 열심히 노력해도 안되는건 안된다고. 그치만 내가 이렇게 변화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단언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신한다.
변화가 없다면 기대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연인과 반복해서 싸울 때 "됐다 그만하자" 하는 것도 기대가 없어서 그런게 아닐까. 그래서 그 얘기가 나에게 가장 상처였다. 나름 변화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기대를 저버린 것일까.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모든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라고 나를 의심하자. 그럼 각본 탈출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Ch 27
헛소리꾼들의 허튼소리들 : 목발, 상투어, 광신집단
이것 저것 핑계대며 할일을 미뤄온 내 뼈를 때리는 말들이었다. 나는 불편한 일을 하고싶지 않아서 피해만 다녔고, 그간 해온게 많으니 이래도 괜찮다 저래도 괜찮다며 으스댔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해낸것도 남은 것도 없는 온갖 허튼소리만 달고 살게 된 것 같다.
근래에 읽었던 자기계발서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태도를 취하라 한다. 감정적인 것도 무기라며 다른 이에게 이입을 잘하고 공감 능력이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사실 그건 방어기제였고, 도피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