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논현 역에서, 꿈꾸는 하루
오랜만에 독서모임을 나갔습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척하다가 얼레벌레 자주 출몰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말 맛있는 책과 사랑, 죽음 그런 것들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끄적였던 기록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생각보다 의미를 잘 담은 낱말들을 골라 쓰기가 참 어렵다는 점입니다. 가끔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아주 원초적이고 단순한 낱말들로 문장들이 채워져 있어 유치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러고 보면 이렇게 공개적인 곳에 글을 쓸 때 사람들이 내 마음을 더 잘 이해해 줄 수 있도록 알맞은 단어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김소연 작가님의 <마음 사전>의 후기를 들었습니다. 다양한 단어들을 얼마큼 함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는지 알았습니다. 기쁨과 행복의 낱말의 차이, 또 허전함과 공허함의 차이를 곱씹어보는 자리였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각각의 낱말들의 해석을 듣고, 또 다른 생각을 해봅니다. 기쁨은 불꽃놀이처럼 지금, 당장, 벅차오르고 함박웃음으로 표정이 뒤바뀌는 감정이고 행복은 모닥불처럼 은은하고 잔잔하고 따뜻하게 이어지는 은은한 미소를 짓게 하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허전함은 가득 찬 곳에 빈 주머니가 하나 있는 것 같고 공허함은 빈 곳에 작게 들어차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입니다. 누가 보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냥 온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저의 생각임을 계속 이야기하는 건 이 감정이 때론 보편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저 제 마음이므로 인정받고 싶다,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직후 이어온 순서는 아니지만 제가 읽은 책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노르웨이의 숲>과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 이 두 권을 욕심내어 가져갔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원초적인 요소가 많아서 모임에서 후기를 말씀드리기 조심스럽고 부끄러워서, 추가로 자기 전 편히 읽고 있는 책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을 리뷰하기 위해 마음먹고 읽다 보니 와닿는 이야기가 더 많아 이렇게 후기를 기록하고 싶어 가지고 간 듯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고집"이라는 단어를 참 긍정적으로 봅니다. 스스로가 심지가 있고 기존의 강요와 억압에 쉬이 굽히지 않는 것을 "나"로써 잘 사는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 보편적이지 않을지라도 그저 나로서 인정받고 싶은 그 마음. 고집이라는 다소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어휘로 표현했으나, 결국은 우리 각자가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의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여기까지 한 시절이라 부르자>는 다소 젊은 작가가 쓴 단편 소설집으로 소개해주셨습니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아주 오래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톺아보며 하는 말 같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듣고보니 어린 나이인 작가분이 이 글을 썼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나이 또래가 읽는다면 더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요. 제가 사회 초년생으로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간단하게 이야기한 후여서 그랬는지, 마치 제게 해주고 싶었던 말처럼 들렸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오늘 소개된 책 중에서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소개해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이타심과 자기애를 중점으로 다룬 부분을 설명해 주셨는데요. 이타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타인으로 결핍을 채우는 것이라는 관점을 가진 철학과, 자신보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철학 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랑을 정의하려는 에리히 프롬의 글들은 각기 다른 철학들을 기반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개하는 식으로 쓰여 약간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저뿐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은 공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한참 철학서에 빠져있을 때 <사랑의 기술>을 읽어 보려 애썼지만 그래서 결국 사랑이 뭔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물론 하나의 의견으로 함축되기 어려운 것이 사랑이겠지만 그걸 어떤 분류의 어떤 의미의 사랑인지 면밀히 살펴보려는 시도가 보여, 에리히 프롬이 얼마나 진정한 사랑을 알리고 싶어 했을지 생각해 봅니다.
결론은, 사랑은 혼자서도 잘 지탱해 서있을 수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자신을 올바르게 직시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파칭코>를 소개해주신 분은 선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임신한 상황에서 그를 위해 이삭이 결혼하겠다고 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저도 그걸 들으면서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다가도,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온전히 건강한 자신이 타인을 돌볼 수 있는 상황에서 인류애적인 사랑이 발휘된 것 같다는 생각이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아직 나는 사랑하려면 멀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읽은 <노르웨이의 숲>은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들이 주고받은 건 결국 사랑인가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추모하는 방식도 사랑하는 방식도 제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기리기 위해 애썼고 살아남은 자신들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풀어쓴 다양한 경험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하고 싶습니다.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은 오늘도 내일도 살아나가야 하니까요. 제가 이해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소하지만 그것도 그 소설 속 인물의 삶이니까요. 간접적으로나마 하나의 경험을 더한 것 같아 성장한 기분입니다.
아무튼 간 이렇게 책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은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미소를 약간 머금은 상태가 됩니다. 오늘도 정말 많은 생각들을 남길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여러분도 그랬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