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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주 Oct 27. 2024

외로움에 관하여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 같다가도 문득 돌아보면 남은 것이 없는 느낌이 드는 날. 지난 한 주가 그랬습니다. 가끔은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마셨습니다. 목적 없이 떠도는 기분을 지우기가 힘이 드는 날입니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 걸까요 호르몬 때문일까요.


쥐고 있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수업도 들어야 하고, 소프트웨어 교육도 듣고 있고, 돈도 벌고 싶고, 프로젝트도 잘 해내고 싶고, 취업도 준비하고 있고, 데이트도 하고 싶고, 친구들과 놀고 싶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을 어영부영 잡으려다가 하나도 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참 외롭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느껴진 것인데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글에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같은 의미로 제 생각을 안 하고 산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소통하느라 정작 저와는 소통하지 못한 기분이 듭니다.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밤입니다. 한참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휴대폰을 붙잡고 있다가 불현듯 글을 써야겠다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왜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는 걸까요? 건강했던 제 모습은 일시적이었던 걸까요? 지금의 제 모습은 불과 며칠 전 모습과 달리 생활 루틴도 망가지고 집도 엉망입니다. 자꾸 어딘가 떠나고 싶은데 떠나갈 곳은 생각나질 않습니다. 지난 한 주의 기억들이 부채처럼 남아 머릿속을 떠돌고 있습니다. 한두 달 전쯤 혼자 캠핑을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2박 3일 동안 연고도 없는 연천에 혼자, 한 달 된 운전면허 실력을 믿고 떠났었습니다. 그때 한적한 시골에 느지막이 일어나 아무도 없는 캠핑장 의자에 앉아 <삶의 한가운데>를 읽던 그 시간들. 약간 더운 듯 한 때 그늘막에 낚시 의자 하나 깔고 앉아 바람 부는 동안 썼던 일기입니다.


2024. 9. 6. 연천 재인 폭포 캠핑장에서

낮 12시 여기엔 아무도 없다. 나 혼자, 내 차만 덩그러니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낯설기도 하다. 중간중간 휴대폰을 보는데 아무 연락들이 없다.

기다리는 연락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홀가분하면서도 외롭다.

하루가 짧으면서도 길기도 하다.... 낚시 의자에 앉아 태평하게 책을 읽다가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야. 우리 모두는 약간은 비겁하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지.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어. 내가 그리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 우리는 착하면서 동시에 악하고, 영웅적이면서 비겁하고, 인색하면서 관대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밀접하게 서로 붙어 있다는 것.

그리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한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말이야.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도 그것을 간단하게 만들려는 게 나는 싫어." - <삶의 한가운데> 166p...


이 날도 저는 외로웠습니다. 외로운 날인 오늘, 외로웠던 하루를 떠올렸던 것입니다. 기억 속 그날은 정말 행복했고 혼자인 것을 참 잘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아니죠. 책의 구절처럼 외롭기도 했지만 충만하기도 했습니다. 이 많은 감정들을 '외롭다'라는 단어 하나로 치부해 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함께 하는 날들로 가득한 요즘도 외롭고 진정 혼자 있는 시간도 외로웠습니다.


지쳤다는 이야기가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방긋 웃으면서 일해야 하는 아르바이트도, 쌓여있는 집안일도, 썰렁해진 집안 공기도 한몫을 하는 것 같고요. 잘하고 있다는 지지를 받고 싶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내 사람들에게 응원받고 싶습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생각나요. 유진님 애지님 경문님 누리님... 점심시간에 노닥거리고 근근이 저녁에 술 한잔 하면서 얘기했던 동료들. 몇 주 전 소개팅 나가기 전에 경문님은 그런 말을 해줬었던 게 기억나요. "문주를 못 알아보면 그건 걔가 안목이 없는 거야." 그런 막연한 지지들. 다시 생각해 보니 너무나 감동이네요. 제 부족한 모습들을 보셨으면서도 그냥 마냥 저를 편애해 주는 그런 이야기들이 그때의 제 버팀목이었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쌓여있는 집안일을 해치우고 집 공기도 (보일러 빵빵하게 틀어) 훈훈하게 만들어야겠습니다. 조만간 제게 막연한 지지를 남겨주신 경문님도 뵙고요. 이런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또 감사한 사람들이 하나씩 생각나네요. 역시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한 법. 오늘 외롭다 쓰여진 이 밤은 여기까지만 쓰고 보내주려고 합니다.


연천 캠핑장에서 삼겹살을 탐내는 고양이와 함께.




(241027) 경문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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