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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칼럼] 임금도 돼지고기 맛 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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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푸드칼럼니스트이자 요리연구가로
활동하는 이주현입니다.

한 학기동안 단국대학교 학보인
단대신문 '맛의 멋' 코너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첫 번째 칼럼 주제는
"제육볶음" 입니다.





냉이를 곁들인 봄맞이 제육볶음 (사진.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


<단대신문 '맛과 멋'>

임금도 돼지고기 맛 보기 어려웠다

고추장 양념이 불 위에서 달궈질 때 풍기는 매콤한 향. 집게 든 손으로 붉은 양념이 골고루 밴 야들야들한 돼지고기를 이리저리 휘적인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이제 거의 다 완성됐다는 신호. 새하얀 쌀 밥 위에 윤기 나는 고기 한 점을 크게 올려 입 안 가득 넣는다. 매콤 달콤한 고추장 양념과 지방이 풍부한 돼지고기가 한 몸처럼 섞여 감칠맛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다른 반찬이 뭐가 필요할까. 돈까스와 함께 남자들의 영원한 소울 푸드로 손꼽히는 음식, 제육볶음이다.


“조선시대로 거슬러가 임금님이 된다면 무엇부터 하고 싶으세요?” 춘곤증이 불시에 습격하는 어느 봄날, 음식인문학 강의 중 내가 내놓은 임시해결책이었다. 졸음과 사투를 벌이던 수강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엉뚱하지만 상투적인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땅값이 폭주중인 곳의 논밭부터 사놓겠다고 답했다. 고만고만한 탄식 섞인 답변 속에서 단박에 귀에 들리는 답이 튀어나왔다. “저는 수라상에 삼시 세 끼 제육볶음을 올리라고 명하겠습니다” 다들 고개를 휙 돌려 답변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너도 나도 현실적인 답변을 고민하다가 모두 와락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모두 마음 한 켠으로 동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 학생의 로망을 깨뜨리는 답변을 돌려줄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좀 힘들겠네요. 아쉽게도 조선시대에는 제육볶음을 먹기 어려웠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삼겹살을 비롯해 돼지고기를 사랑하는 분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다. 과거에는 돼지고기가 정말 인기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돼지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조선시대에는 꿩 고기를 가장 많이 먹었고 그 다음으로 소, 닭, 돼지 순으로 육식을 섭취했다. 우리 민족은 고려시대 때부터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금하였기 때문에 육류 조리법 자체가 발달하지 못했다. 그나마 소는 농사에 동원되었고 닭은 알을 먹기 위해 길렀으나 돼지는 사육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또한 소가 초식동물로 풀을 먹는데 비하여 돼지는 잡식성으로 인간의 음식을 내주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돼지고기 자체를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돼지고기 요리는 더더욱 발달하지 못했던 것. 아무리 임금님이라도 당시에 제육볶음을 삼시 세끼 먹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돼지고기 요리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을까. 1960년대 현대에 들어와서부터이다. 국가에서 축산업을 부흥시켰고 이 때부터 농가에서 돼지도 사육하게 되었다. 돼지의 공급이 활발해졌고 이 때부터 돼지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제육볶음도 따지고 보면 대중화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임금님도 맛보기 어려웠던 이 마성의 맛을 현재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제육볶음이 소울푸드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데도 다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제육볶음이지만 이 계절을 맞아 봄의 향기를 입혀보자. 깨끗하게 손질한 냉이 몇 뿌리만 넣고 볶아주면 된다. 적은 양으로도 쌉싸름한 봄나물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얼마 안 가는 봄에만 누릴 수 있는 소울푸드의 맛이다. /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




http://dknews.dankook.ac.kr/news/articleView.html?idxno=2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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