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의 맛있는 음식 인문학>
한국일보 오피니언 섹션에
매달 칼럼을 연재합니다.
29번째 칼럼의 주제는 '밥'입니다.
즐겁게 읽어 주세요 :)
Q. 평소 달콤한 빵과 케이크가 삶의 낙인 65세 A씨. 식사량을 줄이는 한이 있어도 디저트는 포기 못한다. 그러나 불룩 튀어나온 뱃살과 위험한 당뇨 수치를 떠올리면 마음이 한 구석이 불편해진다. 옷차림이 가벼워진 계절을 맞아 A씨는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는 정보는 익히 알고 있는 바, 평소 먹던 쌀밥까지 과감하게 끊었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할수록 체중은 미동도 없고 오히려 몸 컨디션이 나빠지는 느낌. 갈수록 신경은 예민해져 A씨의 다이어트는 금방 중단되었다. A씨의 밥상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A. 어버이날, 스승의 날, 어린이 날 등 가정의 날을 맞이하여 좋은 음식을 찾게 되는 5월. 육해공을 넘어 각종 산해진미까지 섭렵하고 나면 마지막엔 떠오르는 음식은 하나다. 윤기 나는 하얀 쌀밥. 밥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민족에게 어쩌면 당연한 맛의 끌림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밥이 최근 억울한 신세에 처해있다. 다이어트의 적으로 여겨지며 기피 대상이 된 것. 그러나 잘 먹기만 한다면 밥만한 보약이 없다. 쌀과 채소 중심의 한국인 전통 식습관을 면밀하게 들여다 볼 시간이다.
먼저 밥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아마도 밥은 당질 덩어리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몸은 당질이 부족하면 체내 지방을 연소시킨다. 처음에는 살이 빠지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체내 대사에 균형이 무너지고 이상이 생긴다. 탄수화물을 무조건 제한하는 식단이 오래갈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세간에 알려진 무시무시한 소문과 달리 쌀밥은 우리 몸에 해롭지 않다. 식사대용으로 많이 먹는 감자, 옥수수, 식빵보다 인슐린 분비량을 천천히 증가시킨다. 또한 우리가 쌀밥만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생선, 김치, 나물 등의 반찬류를 같이 먹기 때문에 급격한 혈당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 쌀밥에 콩이나 잡곡 등을 넣어서 밥을 짓는다면 더욱 효과적이다. 또한 쌀에 들어있는 필수 아미노산, 식이섬유, 미네랄 등 기능성 성분들은 주로 쌀눈인 배아에 들어있다. 따라서 소화에 문제가 없다면 백미 대신 현미를 선택하면 더욱 높은 영양성분을 섭취할 수 있다. 결국 적당량의 밥을 제 시간에 꼬박꼬박 먹을 때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며 좋은 컨디션으로 보답한다.
이제 A씨의 다이어트 과정을 다시 살펴보자. 그는 탄수화물 중독 증상을 보였다. 탄수화물 중독증이란 단 빵이나 케이크처럼 당질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억제하지 못하는 증상을 뜻한다. 이를 피하려고 A씨처럼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끊어 버리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우리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 뇌는 에너지원으로 탄수화물만 사용하는데, 단당류인 글루코스로부터만 얻는다. 결국 우리 뇌는 당을 달라고 끊임없이 소리치며 인체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다른 간식을 찾게 된다. 스트레스는 있는 대로 받으며 살이 빠지기는커녕 체중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를 보면 탄수화물 중독증은 밥, 국, 나물(채소) 등의 건강한 식사로 풀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쌀 중심의 한식은 비타민과 무기질을 골고루 함유하고 있어 열량이나 지방질의 과다 섭취를 초래하지 않는다. 비만 억제는 물론 노년에 가장 중요한 체내 면역 기능을 유지하는데도 효과적이다. 대신 몇 가지만 기억하자.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은 채소 중심으로 구성하자. 기름을 사용하는 대신 찌거나 삶는 조리법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식사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하고 밥 한 숟가락을 30회 이상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을 들이자. 여기에 운동을 더하여 식사량과 에너지 소비의 균형을 맞추면 이보다 더 정석인 건강 관리법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향긋한 봄의 정취를 담은 취나물 솥밥
지금 이 계절 즐겨 먹기 좋은 솥밥을 소개한다. 5월 제철 막바지를 맞은 취나물을 넣은 솥밥이다. 데친 취나물 80g에 다진 마늘 1작은술, 간장 1큰술, 참기름 1큰술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려 놓는다. 다짐육 100g에 간장 0.5큰술, 다진 마늘 0.5큰술, 미림3큰술, 후추를 넣고 밑간을 한다. 솥에서 다짐육을 넣고 볶다가 불린 쌀 1컵을 넣고 볶는다. 육수나 다시마물을 붓고 부글부글 끓이다가 데친 취나물을 올린다. 뚜껑을 닫고 약불로 12분 정도 익힌다.
솥밥의 매력은 재료의 향과 맛이 하얀 쌀에 진하게 배어든다는 점이다. 뜸을 들인 후 뚜껑을 여는 순간 취나물의 쌉쌀하면서 싱그러운 향이 뜨거운 수증기와 함께 훅하고 퍼져 나온다. 억센 취나물은 숨이 죽어 밥 위에 기운 없이 허물어져 있다. 밥이 맛있게 잘 지어졌다는 신호다. 여기에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은 간장 양념장을 넣고 슥슥 비벼 보자. 봄에만 즐길 수 있는 나물 솥밥이 완성된다.
싱그러운 지중해식 토마토 솥밥
흔히 솥밥하면 한식 재료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쌀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 맛의 포용력을 지녔다. 토마토, 올리브, 올리브유, 마늘 등 지중해풍 식재료를 듬뿍 넣은 솥밥을 소개한다.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다진 양파1/3개, 다진 마늘 5큰술, 다짐육 80g을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여 볶는다. 올리브와 굵게 다진 토마토 1/2개를 함께 볶는다. 불린 쌀과 함께 섞어 솥 안에 넣는다. 쌀 위에 열십자로 칼집을 넣은 토마토, 올리브, 허브 등을 올리고 육수를 붓는다. 뚜껑을 덮고 중불에서 한 번 끓어오를 때까지 익힌 후 약불에서 10분간 마저 익혀 완성한다. 마지막에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 잘 섞어 먹는다. 은은한 허브 향과 양질의 올리브유, 싱그러운 토마토가 잘 어우러져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한국일보 사이트에서 칼럼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5.5.7 발행)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50113110002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