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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07. 2019

우정갈비

 출근길 신호대기하는 시간, 그녀는(1)

자동차 시동을 켰다. 내 사는 빌라의 하수관 같은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골목길에서 산복도로로 들어서면 출근길 첫 번째 신호등이 있다. 나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보행자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질 때 까지 기다린다. 이 신호등 바로 옆에는 '우정갈비'가 있다. 그 곳은 남편과 결혼하기 전 첫 데이트했던 곳이다. 갈비로 유명한 우정갈비에서 우리는 갈비 대신 돌솥 밥을 먹었다.


아마도 점심때였던 것 같다. 다리를 돌돌 말아 옆으로 앉아 있던 나에게 청년은 다리 쭉 뻗고 앉아요, 라고 했다. 나는 청년이 시키는대로 했다. 밥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청년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넣더니 쭉 뻗은 내 다리를, 내 발을 마사지 하듯 만졌다.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고, 마침 그때 돌솥 밥을 들고 종업원이 들어왔다. 돌솥 밥은 기가 차게 맛났다. 그 맛이 행복한 기분 때문이었는지 정말 맛난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날 청년은, 돌솥 밥이 맛있으니 갈비도 맛있을 거예요. 우리 다음에도 또 와요, 라고 했다.

1995년. 그해 청년은 내게 청혼을 했고 그 이듬해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 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우리는, 나는 그곳에 갈비를 먹으러 가지 않았다.


3년 전 이 빌라로 이사 온 후 첫 번째 신호등을 지날 때마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가슴이 따끔 따끔하다. 아주 세련되게 리모델링을 하고 since 1992라고 역사까지 새겨 넣은 간판을 보니 우정갈비는 우리가 처음 데이트 했던 이후로도 계속 번창한 모양이다. 내 사는 모양이 이렇게 된 것과는 정반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청소를 하고 나니 좀 개운하다. 새벽 두시 반이다. 아래층에서는 위층에 사는 여자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맨날 자정이 지나 귀가하고 그 시각에 청소까지 하느냐 여길듯하다. 하지만 가끔 아랫집에서 컹컹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미안한 맘은 그다지 없다.


며칠 전 비가 오던 날  출근길이었다. 아래층 아주머니가 비에 흠뻑 젖은 채 산 쪽으로 개와 함께 걸어가는 걸 봤다. 그 아주머니 표정은 항상 그랬다. 한 번도 행복해본 적이 없는 표정. 계단에서 마주쳐도 내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항상 그 견공이다. 


나는 지은 지 사십년 된 연립주택 맨 꼭대기 층-그래봐야 3층이다-에 살기에 담배연기가 위로 올라가도 상관없을 것 같아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며 창밖을 자주 바라보는데, 어느 새벽 그 집 아저씨가 골목길에서 담배 피우는 걸 봤다. 그 아저씨도 행복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담배 쩐 냄새가 났다.그네들의 견공도 그들만큼 우울한  낯빛이었다.



연립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의 아래층 아주머니도 자신의 불행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셨다.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래층에서는 우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그러더니 일이년쯤 뒤 무슨 사단이 난 것 같았다. 


그 집 딸들 분위기는 제 엄마를 아주 꼭 빼어 닮았었다. 우리가 이사 들어갔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딸들이 이사 나올 즈음엔 모두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었는데 이십 여 년간 아래  집에 살아도 인사 한번 먼저 할 줄 모르는 숙녀들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도 내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 집 식구 모두. 그러니깐 811호 세 명의 여자 모두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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