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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Sep 12. 2021

퇴직금을 깼다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지난주 금요일 퇴직연금 통장을 해지하러 은행에 갔다. 지난주 금요일은 카드값 결제 날이었다.  



요즘 시대는 은행이 필요 없는 시대라고 외치기라도 하듯 통장을 만들었던 은행은 폐업하고 없었다. 버스를 타고 가장 가까운 다른 지점으로 가 은행원에게 퇴직금 통장을 내밀었다. 사인 몇 번으로 퇴직연금을 해지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2달 정도를 버틸 돈뿐이다.



퇴사를 할 때 잔고에 1천만 원이 넘게 있었다. 내 생에 이렇게 큰돈은 처음이다. 아니 큰돈은 커녕 잔고가 남아있는 꼴을 못 봤으니 처음으로 생긴 잔금이다.



평생 저축은 한 번도 안 해봤으니 차곡차곡 모은 돈은 아니고 이래 저래 들어올 돈이 비슷한 시기에 통장에 꽂혔다. tim겠지만 내역을 밝히자면 조기취업으로 인해 받지 못했던 실업급여와 책을 썼던 인세 그리고 퇴직금이다.



퇴사 후 4개월 동안 이중 절반이 넘는 돈을 야금야금 지출했다. 야금야금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큰 지출도 있었지만.


무슨 백수가 그렇게 돈을 많이 쓰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쓴 돈이 꽤 있다.

 

유튜브를 하기 위한 장비 300만 원 : 캐논 카메라, 아이맥 

유튜브 촬영을 위한 제주 한달살이 400만 원  



사실 대부분은 유튜브를 하겠다고 썼다.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이 지금껏 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였다면 앞으로는 영상도 그 도구가 되어야만 했다.



디지털에게 영역을 넘겨주는 것에 대한 위기감은 출판 업계 모든 관계자가 느끼는 것이겠지만 실제로 이로 인해 해고를 당하고 고용 불안에 시달려보니 그 절박함이 더 커졌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문자 언어와 함께 영상 언어로도 담아야 했다. 이를 위해 지출을 했다.



다행히 지출한 내역 중 물질적인 것은 잘 쓰고 있다. 지금도 촬영과 편집을 위해 잘 사용하고 있고 쓸모가 끝났을 땐 중고로 되팔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 한달살이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단지 외장하드가 고장나 촬영한 파일의 절반 정도를 날려버린 게 문제다. 환산하기 어렵지만 심적으로는 외장하드와 함께 200만 원을 날려버린 느낌이다.



매달 내야 할 카드값은 퇴사 후 절반 정도로 줄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지출을 크게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퇴사 후에 습관적으로 하던 카드 할부 결제를 하지 않았고 그것만으로 지출이 크게 준 것이다.



돈도 모아본 사람이 모은다고 했나. 돈을 모은 후의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는지라 30대 후반이 되었는데도 돈을 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기지 않는다. 가정을 꾸리지 않는 선택과 부양가족이 없는 행운이 동반되어 누릴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음의 안정이지만 누군가는 대책 없이 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학자금 대출은 1700만 원이 남았고 이제 정말 얼마 후면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이 프리랜서로서 영상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볼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이 없어도 책임감은 커진다.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책임감.



30대 후반인 지금이 인생에서 앞뒤 재지 않고 무언가에 도전해 볼 마지막 기회다. 철없는 것으로 가장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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