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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Sep 14. 2021

글의 문법 영상의 문법

유튜버로 살아남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카메라를 켠다. 집 안 이것저것을 담고 그 앞에서 나름 연기도 해본다. 촬영된 영상을 확인해 볼 때면 항상 드는 마음. ‘아 이게 아닌데’ 



글을 쓰는 작업과 영상을 만드는 작업은 다르다. 구조는 물론 기획 방식과 이를 소비하는 타깃층까지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영상은 빨리 감기가 가능하다. 빨리 감기를 사용해도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데 문제가 없다. 소리와 시각 정보가 함께 있는 영상은 정보 전달이 주된 역할이고 이를 위해서 속도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빠를수록 눈은 즐겁다. 



글은 시각, 소리 정보를 모두 문자로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정보량이 영상보다 절대적으로 많다. 한정된 형식의 많은 정보. 이해를 위해서 더 많은 상상력을 써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지루할 수밖에 없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지루함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속도감을 즐기는 영상 소비자와는 대척점에 있다. 



제작 방식을 살펴보자면 서사가 필요 없는 정보성 글의 경우 정보의 수집, 재조립 이를 통한 새로운 시각으로 이뤄진다. 서사가 있는 경우 한 인물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봐야만 한다. 독자는 이미지와 소리를 상상화는 과정에서 정보를 내재화한다.



영상은 글의 제작 과정에 이미지와 소리가 덧입혀진다. 이 이미지와 소리를 덧입히는 과정은 굉장히 번거롭고 수고롭다. 내용에 딱 맞는 이미지와 소리, 그것들을 딱 맞는 타이밍에 배치하기. 영상을 보는 이는 상상해야만 하던 것이 눈앞에 펼쳐지니 그저 그 정보를 따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글과 영상의 모든 뼈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은 글과 영상 모두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표현하는 언어만 다를 뿐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영상이 유튜브를 위한 것이라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지금껏 TV를 통해 보아왔던 영상보다 훨씬 빠르고 자극적이며 유저의 손은 언제나 '뒤로 가기' 위에 놓여있다. 유튜브 영상만의 문법은 또 따로 있다. 



그렇다면 나는 글로 써왔던 내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일단 도전해 봤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일단 글을 썼다. 나와 동거인의 이야기. 비혼인 우리가 어떻게 만나 왜 동거를 하게 되었는지. 어렵지 않았다. 상황에 살을 붙여 내가 느꼈던 감정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건 재미있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걸 영상으로 옮기면 된다. 어떻게?



영상은 크게 촬영과 편집으로 이뤄진다. 여기에는 시간과 기술 그리고 꽤 많은 돈(카메라, 마이크, 조명, 삼각대, 파일의 저장 공간, 컴퓨터, 편집 프로그램, 필요한 소리와 폰트의 저작권)이 필요하다. 더불어 독자의 상상력에 기댈 수 있었던 부분을 이제는 명확한 시각 정보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도 동일하게 느껴줄까? 영상 작업에는 상상력보다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는 명확한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말하자면 ‘은은한 초콜릿 풍미의 고소한 원두커피’를 영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은은함’과 ‘초콜릿 풍미’ 그리고 ‘고소함'을 묘사해 줄 시각, 청각 정보가 필요하다. 눈앞의, 항상 봐오던 아메리카노와 다를 바 없는 모양의 커피로는 이러한 느낌을 표현할 수 없다. 호기롭게 (돈을 왕창 쓰며)영상 제작에 도전했던 내 앞에 놓인 난제다. 



물론 하나씩 차근차근 배우면 될 테지만 역시 문제는 첫 술에 배부르고 싶은 욕심이다. 노력하기보다는 타고나고 싶은 욕심. 지금까지 8개의 영상을 만들어 보았는데 아쉽게도 내게 그 타고난 재능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마음은 조급하고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가지만 이제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 볼 수밖에. 



일단 내일 아침에도 카메라를 켜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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