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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지 Oct 23. 2021

나 유튜버 할래!

퇴사하고 유튜버가 하고 싶어?

<(나의) 노동의 미래> #06


퇴사 후 한 달 동안은 집에서 계속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한 달이 되었을 때 반려인에게 제주에 가자고 했다. 퇴사를 했지만 나는 여전히 회사 생각뿐이었다. 회사 업무의 일환이었던 뜨개질을 계속했고 회사 동료들이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계속 회사에 대한 소식을 듣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미 퇴사했음에도 여전히 그곳의 직원인 거 같은 감각이었다. 보이지 않은 틀에 갇혀 있었다. 이것을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제주에 갔다.



막상 제주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니 한시가 급했다. 바로 떠나야만 했다. 반려인의 휴가를 조정하니 우리에게 남은 기간은 딱 일주일이었다. 그동안 숙소를 정하고 한달살이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모든 예약까지 끝내야 했다. 가장 큰 걱정은 반려묘 뚜니였다. 보통 3~4일 일정의 여행까지는 펫캠을 켜 두고 집을 비우는데 한 달은 무리였다. 임시보호를 맡겨야 하나 하는 찰나에 반려인이 뚜니도 꼭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가족이니까. 결정은 쉬웠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단 예약할 수 있는 숙소가 제한적이었다. 날을 새며 찾은 끝에 가까스로 반려묘 동반 가능한 숙소 2군데를 각 2주씩 예약했고 비행기 티켓까지 예약을 마쳤다.



제주를 가는 목적은 확고했다. 반려인과 나는 모두 본가가 시골이라 사실 고즈넉한 곳에서의 힐링을 위한 한달살이라면 고향 근처로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서핑을 배우고 싶은 로망이 있었기에 꼭 제주 남쪽으로 가고자 했다. 그리고 나는 제주에 있는 30일 동안 날마다 콘텐츠 제작을 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체력과 마음을 기르는 것. 이렇게 3가지가 제주에서 완수해야 할 미션이었다.



제주 여행 준비를 하는 와중에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바로 유튜브. 이전까지 나는 정보를 글로 흡수하는 사람이었다. 내게 영상이란 영상미만을 위한 향유 대상이었다.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영상을 감상하는 것이 영상을 보는 거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자기 계발에 대한 강박으로 오락성 예능을 보는 것에 죄책감이 있었고 드라마는 집안일을 할 때 틀어놓은 BGM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즐겨 봤던 TV 프로그램을 꼽자면 바로 연합뉴스다.

 


그런 내 앞에 영상의 현재가 펼쳐졌다. 이런 문장이 참 새삼스럽지만 세상의 모든 정보가 유튜브 안에 있었다. 아날로그적인 것을 선호한다는 문장 뒤에 숨어서 세상의 변화를 방관했다. 뒤늦게 빠진 유튜브 세상엔 재미있는 것 투성이었다. 종이 매체에서 디지털 매체로의 변화를 꿈꾸며 영상을 해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영상은 영화 같은 비장미와 영상미를 가진 어떤 것이었다. 말하자면 유튜브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제주살이 정보 검색에서 시작된 유튜브 알고리즘은 영화 같은 영상미는 아닐지라도 서사와 재미와 감동이 담긴 영상을 내게 실어 날라 주었다.

 


디지털 매체의 직무면접에서 내가 항상 하던 이야기가 있다. ‘글이나 영상은 모두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고 나는 그 안에 담긴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 그릇은 매체에 맞게 변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콘텐츠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종이 매체를 대체해 가는 영상 매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거부할 수 없다). 유튜브에는 각자 개성 있는 그릇에 담긴 제각각의 콘텐츠가 넘쳐났다.



잡지 에디터를 꿈꾸며 내가 그린 최종 그림은 색깔 있는 매체를 만들고 그 매체의 편집장이 되는 것이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아주아주 작은, 나노 입자 같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이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잡지 에디터를 꿈꿨다는 것은 내 나름의 자부심 중 하나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자그마한 로망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로망이었던 것을 실현해 나가는 사람들이 유튜브에 넘쳐났다.



1인 매체, 1인 크리에이터 등은 기사를 위한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다. 대단한 1인, 특출난 무언가를 가진 1인만이 1인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유튜브를 접해보니 대단한 1인이 아니라도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가 크리에이터에게 더 중요한 덕목인 듯했다. 그래서 덜컥 선언했다. ‘나 유튜버 할래!!’ 이렇게 나는 1인 매체의 편집장(?)이 되는 꿈을 이뤘다.



제주에 가기 전 일주일 동안 숙소와 항공권 예약과 함께 완수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유튜버 준비하기. 중고로 캐논의 콤팩트 카메라를 샀다. 12년 전 마지막 디카를 끝으로 카메라를 사는 건 처음이다. 첫 시작부터 비싼 장비를 사는 건 옳지 않다는 선대 유튜버들의 말을 잘 따랐다. 외장하드를 사고 언젠가 영상을 하겠다는 생각에 마련해 두었던 먼지 쌓인 삼각대를 끄집어냈다. 영상 촬영을 할 것까지 챙기니 제주에 챙겨갈 짐이 배가 됐다. 꽤 많은 짐을 택배로 부치고, 하나의 캐리어와 캐리어만 한 배낭 그리고 뚜니까지 매고 제주로 갔다.



결과적으로 한달살이를 성공과 실패로 나눠야 한다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있겠다. 먼저 제주에서 이루고자 했던 3가지 미션이었던 서핑, 콘텐츠 제작, 체력과 마음 회복  서핑과 콘텐츠 제작은 거의 망했다고   있다. 서핑을 위해 필요한 그것, 파도는 서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현듯 몰아치고 결정적으로 제주살이 2주가 넘어갔을  서핑을 하는  사고를 당했다. 뼈도 멀쩡하고 피부가 찢어지지도 않았지만 이마에  혹이 생겨  이상의 서핑은 무리였다. 눈 주위로 큰 피멍이 들어 서핑은커녕 외부 활동도 어려웠다. 그리고 콘텐츠 제작. 유튜버가 되겠다고 야심 차게 선언한  제주에서 한시도 빼먹지 않고 영상 촬영을 했다. 그렇게 2주가 되었을  500기가의 외장하드를 꽉꽉 채웠고,  외장하드는  부주의로 고장이 났다제주에서 편집까지 하면 너무 많은 시간을 영상에만 쓰게   같아 제주에서는 촬영만 하고 서울로 돌아와 편집을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편집해야  소스  절반 이상이 손상됐다. 그야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체력과 의욕만은 터져나갈 듯 충전했다. 실제 바다에서 서핑을 하는 시간은 하루 세 시간이었지만 아까운 파도 하나라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며 했던 지상 훈련 덕을 봤다. 코어가 튼튼해졌다기보다는 내 코어가 이 정도로 약해졌구나를 몸소 느끼며 틈틈이 운동하는 습관이 생겼다. 치솟는 렌터카 비용 때문에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선택했는데 제주의 미묘한 오르막 덕에 탈 때는 힘들었지만 허벅지 근육은 탄탄해졌다. 그리고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넘쳐났다.



미술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한계를 느낀 시점은 그리고 싶은 것이 없고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을 때였다. 영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영상으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났다. 물론 아직 가지가 무성한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무엇이 남겨야 할 가지인지도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가지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어떤 모양의 나무를 만들지에 대한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유튜브란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다니.



유튜브를 접한 후 내 이직의 행방은 완전히 다른 길 앞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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