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길을 따라 인생도 흘러간다(2부)
집을 나서면 제일 좋은 것은 남이 해준 밥을 먹는 것.
내 손을 움직여 만든 음식이 아니라는 것.
무엇을 먹어도 다 황홀한 만찬이다.
잠시지만 부엌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여자들에겐 최고의 휴가다.
그래선지 여행할 때 만은 마음도 바다가 된다.
일상에서도 이런 기분이라면 싸울 일이 없다.
달달한 감성으로 울진에서 강릉을 향해 가다 보니 맹방해변이 나타났다.
저 의자에 앉아서 한없이 쉬고 싶었지만 갈길은 멀다.
육백마지기도 바람의 언덕도 계획에 넣었건만 먹구름이 몰려온다.
여행할 때 비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반갑지 않다.
실내에서 볼 수 있는 태백 석탄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우리나라 석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진 곳이고 광부들의 애환이 뭉친 곳이다.
박물관이 의외로 컸고 수많은 암석이나 석탄 관련 자료들이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 자리를 서둘러 나와버려서 사진도 변변치 않다.
일부러 강릉을 직행하지 않고 찾아간 곳인데 아깝다.
삼척에서 돌아 나와 다시 숙소인 강릉을 향하는 길에 `옥계휴게소`를 만났다. 보였다.
이곳에선 화장실에서도 바다가 보인다.
화장실에서 바다를 찍어보긴 난생처음이다.
화장실도 반짝반짝, 바닷물도 반짝반짝.
사람들도 반짝반짝.
이 빛나는 봄날엔 모두가 다 반짝이는 보물들이다.
옥계휴게소 화장실 내에서 찍은 바다.
옥계휴게소 풍경.
드디어 붕붕이가 도착한 곳은 강릉.
저녁은 뭘로 먹나?
어딜 가나 어디서나 자나 깨나 그 먹거리가 문제로다.
시장을 가면 굶어 죽진 않겠지.
강릉 중앙시장엘 들어서니 웬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지.
수많은 젊은이들이 시장바닥을 빼곡하게 둘러치고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뭘 사려고 저러나 싶어 가봤더니 오징어순대를 기다리는 행렬이었다.
이곳이 강릉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오징어순대 집이다.
상호에 황금이 들어있다.
간판부터 황금이 걸려있으니 이 집은 대박 날 수밖에 없나 보다.
오면서 남편이 오징어순대 노래를 후렴구처럼 불렀던 걸 상기했다.
`그래 산 사람 소원은 반듯이 들어줘야지.`
`내가 저 줄 뒤에 서 주마.`
선 듯 줄 꽁무니에 나를 세웠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줄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중간에 포기하고 가려다 30분 기다린 것이 아까워서 끝내 그 줄을 지키고 서있었다.
대한민국에 오징어순대 못 먹어 아사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내가 그 줄에 서있으면서 이해를 못 할 지경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서 겨우 받아 들고 나오는데 여전히 뒷줄은 까마득하다.
시장을 대략 둘러보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8시다.
주차장이 만차다.
외부 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오나가나 사람들과 차들로 정신이 없다.
아침에 세인트 존스 호텔 베란다에서 바라본 바다.
이튿날 아침 우선 가까운 `경포대해수욕장`부터 찾아갔다.
오랜만에 찾은 경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물색깔 하나 변함없이 그대로다.
역시 터줏대감은 변덕이 없다.
모래 한 톨도 해풍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반겨준다.
경포대 해수욕장.
이곳을 어슬렁거리다가 `오죽헌`으로 가보자.
둘은 계획대로 착착 발길을 `오죽헌`에 들여놓았다.
거기도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강릉! 핫 플레이스 맞다.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 이이 를 알리고 추앙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화폐 관련 전시물이 유독 많다.
한 나라에서 모자간에 화폐에 등장한 예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희박하다.
그만큼 신사임당이 지닌 품성과 이율곡의 지성과 인품은 오늘날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화폐의 역사와 세계 여러 나라 화폐에 등장했던 인물들까지 자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화폐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여기서 나와 강릉 중앙시장을 다시 찾아갔다.
중앙시장이 여전히 북새통이다.
호떡, 닭강정, 오징어순대, 젤라토, 순두부, 감자전, 물회.
와! 이걸 언제 다 먹어보나.
맛소문은 전국의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집합시켰다.
특히 젊은이가 압도적으로 많다.
시장구경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모든 것이 신기하다.
채소들은 어쩌면 그리 싱싱한지.
그걸 보면서 "우리 강릉으로 이사올까?"
"그러던지."
그럴 때는 반죽이 어쩜 그리 잘 맞는 거냐고.
안목해변 앞에 늘어선 커피집들도 전국의 커피마니아들이 몰려드는 장소다.
맛이든 멋이든 기획하고 시도하는 실험정신이 그 지역을 살려내는 동력일 거다.
바다가 있고 맛이 있고 인심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
그 지역이 잘되면 지자체장의 역량까지도 가늠해 보게 된다.
먹거리가 풍성한 강릉 `중앙시장`에서 배를 채우고 우리는 `바다부채길`로 이동했다.
이곳은 200~250만 년 전의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 관광지다.
정동진의 부채 끝 지명과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놓은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총 관람코스는 3.01km로 편도로만 약 60분이 소요된다.
짧지 않은 먼 길이다.
나무덱으로 길게 이어진 바닷가를 거닐며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한다면 그 길은 분명 꽃길이 될 것이다.
토라졌던 사람들도 그 길에선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다.
광활한 바다는 옹졸한 매듭을 풀어낼 수 있는 중매쟁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아직 못 가보신 독자님들 어서 보따리 준비하시라.
이제 마지막 코스인 속초로 신발코를 돌려야 한다.
속초를 향해 가다 보니 하조대 해수욕장이 보였다.
비수기라서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여름에는 이곳도 인파로 몸살을 앓는 곳이다.
드디어 포항에서 이곳 속초까지 닿았다.
바닷가 바로 앞에 근접한 숙소는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은 잠을 설칠 것만 같다.
코앞에 펼쳐진 바닷길이 앞마당이다.
라마다 호텔 앞길에 사람들이 산책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든지 가보고 싶은 사람의 호기심은 못 말린다.
숙소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속초바다.
그렇게나 노래를 불러 두 번째 샀던 오징어순대는 먹어보지도 못하고 호텔 베란다에서
보릿자루가 되었다.
조막만 한 위를 요강만 한 위로 착각한 욕심이 부른 낭비다.
여행의 끝자락에 이틀째 비가 내린다.
숙소 근처 아이대 관람차가 우릴 부른다.
아이대 관람차에서 바라본 속초 앞바다는 그저 조용하다.
세상이 시끄러워도, 사람이 많이 몰려와도 변함이 없다.
아이대 관람차 내부.
아이대 관람차는 15분 동안 우리들을 공중에서 둥가둥가 해주다가 내려놓았다.
속도가 느려 무섭지는 않다.
그저 보는 것마다 다 타고 싶은 이 해방감의 주책스러움이여.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설악산.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한산했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안 온 줄 알았더니 웬걸 설악산은 우리나라 명산답게 인기 만점이다.
이 사진을 찍으려고 한참을 다른 이들에게 밀렸다.
설악산에 갔으면 케이블카는 기본이다.
한 번에 40명이 탈 수 있지만 딱 두 대로는 어림도 없다.
비로 인해 기온이 내려가고 춥다.
근처 카페들이 성업 중이다.
케이블카 안에서 찍은 설악산 모습.
설악산을 끝으로 4박 5일간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이왕 나선 길, 최대한 기분 좋게 다녀오려고 맘먹었지만 무리였다.
속초 중앙시장에서 건오징어를 사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 지었지만,
걸었던 흔적들의 속살까진 파헤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포항에서 속초까지 달리고 걸어 본 길을 닷 새만에 축약하긴 어렵다.
다만 여행은 접혀있던 감성과 무지를 일깨우는 귀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기를 쓰고 가보고 기를 쓰고 써낸 모양새가 이렇게 나타났다.
중단 없이 글을 쓰기 위한 소리(小利)라고 본다.